청령포(淸泠浦)

2009. 12. 11. 16:49旅行

청령포 애가

단종 눈물 흐르는 서강 나룻배 탄 나그네만 애달프다. 어린 단종의 한과 슬픔이 머문 영월 청령포. 이곳의 나룻배는 단종과 관광객을 잇는 유일한 다리다.

서강(西江)은 영월 청령포(淸泠浦)에 이르러 물굽이를 한 바퀴 돌려 심호흡을 한다. 물굽이 진 곳에 반달 같은 물돌이 땅이 생겨났다. 호젓한 소나무 숲 속의 은거지. 동·북·서쪽 3면이 강이고 남쪽이 절벽이다. 숨어들어 한세상 보내기 딱 좋아 보이는 저 아름다운 곳이 유배지라니, 비사(悲史)의 현장이라니. 이런 부조화가!

○ 短宗 혹은 斷宗

단종(端宗·1441~1457). 그의 짧은 생몰연도는 슬픔의 심도를 드러낸다. 자꾸만 '短宗·斷宗'으로 읽히려는 것은 어쩐 일인지.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457년(세조 3년) '천만리 머나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청령포에서 여름 두 달을 나고 늦장마에 쫓겨 영월 관풍헌(觀風軒)으로 이송된 그는 사약을 받는다.

"유배 보냈으면 됐지, 죽이긴 왜 죽여?" 세인들은 흔히 이런 의문을 품는다.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있다. 이강백의 희곡 '영월행 일기'이다. 작가는 1457년 신숙주의 하인이 영월을 오가며 썼으리라는 가상의 일기를 통해 그 원인을 찾는다. 서울~영월 400리 길을 세 번이나 왕복한 그 하인에 따르면, 유폐당한 노산군(단종을 낮춘 이름)의 얼굴은 출발할 때는 무표정이다가 슬픈 표정, 기쁜 표정으로 변주된다. 왕위를 빼앗은 세조가 참지 못하고 사약을 내린 것은 그 표정 때문이었다고 작가는 상상한다. '살고 싶다면 죽을 듯 슬퍼하든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거늘…'.

어린 임금이 감당했어야 할 통한의 무게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열여섯 사내의 무서운 외로움과 막막했을 심정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슬픔의 뿌리는 서슬 퍼런 역사에 닿아 산천으로 퍼지고 영월 땅 구석구석에 잠긴다.

○ 550년만의 국장(國葬)

단종 사후 영월 땅은 오랫동안 흉흉했다. 나그네들은 말을 삼갔고 관리들은 영월 부임을 기피했다. 제 소리를 내는 것은 산새와 강물뿐이었다. 서슬 퍼런 와중에서 영월사람들은 단종의 주검을 거두어 주었다.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는 야음을 틈타 냇가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둘러메고 을지산 기슭에 묻어 주고 통곡했다.

그것의 보답일까. 유배지였던 청령포(남면 광천리)와 그가 묻힌 장릉(영월읍 소재, 사적 제196호), 사약을 받은 관풍헌 등 단종의 자취가 머문 유적지에는 사철 관광객이 북적인다. 이 세 곳을 찾는 관광객이 한해 60여만 명이라고 한다. 영월군 인구(3월 현재 4만195명)의 열다섯 배다.

영월에서 단종은 문화이면서 영험의 화신이다. 그의 영정이 서낭당에 모셔지는 등 조상신으로 등장한 지도 오래다. 모든 백성이 잘 살기를 바란 단종의 넋이,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처럼 다음 생에도 영월 땅을 떠나지 못한 것일까. 영월을 찾는 이들에게 '단종의 영험'은 역사의 선물일 것 같다. 장릉에 그저 참배만 했다는 데도 일이 잘 풀린다는 입소문이 돈다.

영월 군민들은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단종문화제를 매년 열고 있다. 올해 41회째 단종문화제(27~29일)는 특별히 단종 국장(國葬)을 거행한다. 단종 사후 550년만의 상례이다. '임금 단종이시여 영면하소서!'라는 주제로 28일 오전 8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큰 상여인 대여(大輿)를 앞세우고 전통 상례를 시현한다.

단종의 애사를 지역사랑으로 바꾸고, 그것을 지역 이미지 고양에 적극 활용하는 영월 사람들을 보노라면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단종이 사육신을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지난 2005년 4월 4일 제 39회 단종문화제 때 이 같은 재회 장면이 연출됐다.

○ 서강의 사공들

- 단종이 유배되어 청령포로 들어갈 때 어떤 배를 탔을까요?

"나무로 만든 쪽배라고 해요. 서너 명이 탈까 말까하는 작은 배겠죠. 야사에는 삿대를 저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 몇 년 전 단종과 사육신과의 재회가 있었다고 하던데.

"제39회 단종문화제 때 그런 행사가 있었지요. 사육신이 황포돛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가 청령포 단종 어소에서 가슴 저릿한 역사적 재회를 했지요."

- 영월군민에게 단종은 무엇입니까?

"신격화된 존재죠. 태백산 산신령으로 환생했다고 믿기도 해요. 영월에 부임하는 주요 공직자들은 들어오고 나갈 때 장릉에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어요. 참배하고 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해요."

영월군청 문화재 관리담당 안백운(41) 계장과 나눈 얘기다. 청령포 나룻배를 그가 관리한다. 그 역시 단종 팬이다. 지난 1998~1999년 청령포의 단종 어소를 발굴할 때 와편과 그릇조각 등이 나오자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라고 했다.

청령포 나룻배는 관광객과 단종을 이어주는 '다리'다. 나룻배는 3대로 모두 동력선이다. 청령1호와 2호가 번갈아 움직이고 목선 한 척은 행사 때 쓴다. 배에는 단종의 한과 아픔이 함께 실린다.

뱃사공은 2명인데 모두 젊다. 배본 지 8년 됐다는 전장호(37) 씨는 "처음에는 줄 배였는데 지금은 70마력짜리 동력선(50인승)이 다닌다."면서 "이 배가 보기와 달리 휘발유를 펑펑 먹는다."고 말했다.

신참 뱃사공인 문덕기(31) 씨는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난해 수해 때 큰물이 졌어요. 매표소까지 물이 차올랐지요. 청령포 아름드리 소나무가 잠기고 '어가'도 위태위태했어요. 그 바람에 반달처럼 예쁜 청령포 백사장이 한쪽으로 쏠렸어요. 보기에도 삐뚜름하잖아요."

문 씨는 이렇게 된 게 매표소 앞의 인위적인 석축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석축이 천연의 물 흐름을 방해해 강 건너편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곳 역시 나루터의 경사가 문제였다. 매표소 앞에서 청령포까지는 직선거리로 80m 정도인데, 배 댈 곳이 마땅치 않아 아래쪽으로 내려가 200m 거리를 운행하고 있다는 것. 관광객들이 한 줄로 승선하지 않고 가끔씩 우르르 몰려 타기 때문에 배가 곧잘 뭍에 얹혀 애를 먹는다고 뱃사공들은 투덜댔다.

○ 금표비 생각

◀ 영조 때 세워진 청령포 금표비

청령포로 통하는 다리는 없다. 꼭 걸어가려면 기찻길을 이용해야 한다. 태백선을 타면 연당역을 지나 영월역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 수려한 청령포 후미를 잠깐 볼 수 있다. 세상이 좋아하는 다리가 없는 것이 청령포로선 자랑이다. 다리가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금지구역으로 남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만져지지 않는 슬픔은 강 건너 멀찍이서 보아야 느낌이 더 짙어질 테니까.

이곳은 원래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영조 2년(1726)에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그걸 말해준다. 비석 뒷면에는 '동서 삼백 척, 남북 사백구십 척'이라 적혀 있다. 유배지 보호를 위해 백성들의 출입을 금한 비석이지만, 단종에게 허용된 행동반경으로도 읽힌다. 다시 '금표'에 영을 세운다면 뱃사공들이 데모할지 모르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금표'의 뜻을 살렸어야 했다. 여름철 피서객들이 청령포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런 생각이 한층 간절해진다.

배를 타고 돌아 나와 낙조 속에서 청령포를 본다. 청령포 속을 봐서 그런지 더 이상 슬픔이 돋아나지 않는다. 발길을 돌리다 청령포 나루에 선 시비 하나를 발견한다. 단종을 영월에 모셔다 두고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떠나기 전날 밤에 지었다는 시조가 적혀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

서강도 '내 안 같아' 이제 나룻배 뱃길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어떨 땐 힘겨운 일을 하는 뱃사공들이 고맙기도 하다. 다만, 역사의 슬픔을 헤아리는 길을, 저 뱃길에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박창희 기자 국제신문 문화부장 chpark@kookje.co.kr 입력: 2007.04.26 18:08 / 수정: 2007.04.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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