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1. 12:51ㆍ經濟
골드먼삭스·도요타 모두 내부 경고에 둔감했다
스페셜 리포트 - 닮고도 다른 두 거인의 위기
뉴욕 금융계의 심장 골드먼삭스. 일본 경제의 자존심 도요타자동차. 두 회사가 위기에 몰렸다. 골드먼삭스는 혐의부터 고약하다. 투자자의 신뢰가 생명인 금융업에 ‘사기’는 치욕적이다. 당장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골드먼삭스에 대한 조사를 벼르고 있다.
도요타는 만신창이가 됐다. 대량 리콜 파장은 넉 달째 지속되고 있다. 추가 리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은폐 혐의로 사상 최고액의 과징금(1640만 달러) 처분도 받았다. 두 회사의 위기엔 닮은 점이 많다. 처음 리콜 파장이 커졌을 때 도요타는 부품업체 탓부터 했다. 골드먼삭스도 자신들은 헤지펀드의 피해자라며 항변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파장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미 교통부는 차량 결함을 바로 확인했으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치열한 법정 다툼을 해야 한다. 도요타 사태는 부분적인 제도 보완으로 이어졌지만, 골드먼삭스는 금융 규제 전반의 변화를 부를 수 있다.
이것이 닮았다
“우리도 이 거래 때문에 돈을 잃었다.”
19일 영국 런던의 골드먼삭스 빌딩 앞에서 경비원이 사진촬영을 제지하고 있다. 하루 앞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골드먼삭스를 조사하라고 금융감독청에 지시했다. [런던 AFP=연합뉴스]
지난 16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소 이후 골드먼삭스가 내놓은 해명의 첫머리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도요타도 그랬다. 도요타는 1월 말 리콜 문제가 불거지자 부품업체 CTS의 책임론부터 꺼내들었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들의 불만과 분노는 더 커졌다.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손해를 본 투자자, 경기 침체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도요타 차를 타는 운전자보다 훨씬 많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도덕적 파산”이라며 골드먼삭스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두 회사 모두 이상 신호는 내부에서 나왔다. 헤지펀드인 폴슨앤드컴퍼니가 문제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골드먼삭스에선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골드먼삭스에 집값 거품에 대한 우려보다 눈앞의 수수료 수입이 더 커보였다. SEC 발표에 따르면 골드먼삭스는 ACA라는 금융사를 끌어들여, 폴슨앤드컴퍼니가 관련된 상품이라는 사실을 가리기까지 했다. 도요타 리콜에 대해서도 외신들은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2년여 전부터 차량 결함에 대한 내부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방심했을 수도 있다. 두 회사 모두 탄탄한 로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존 코자인 전 뉴저지 주지사 등이 모두 골드먼삭스 출신이다. 현직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도 루빈 사단으로 분류된다. 도요타의 로비력도 외국 기업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5년간 2500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사용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활동한 도요타의 로비스트는 전직 고속도로교통안전국 직원 등 31명에 이른다.
문제가 커지고 나면 로비력은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조사 결과가 나와도 로비 때문에 물렁하게 조사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상·하원에서 모두 청문회를 하고도 도요타에 대한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민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위기가 터지면 반사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기 마련”이라며 “이런 초기 반응 때문에 정작 중요한 대응이 늦어지고 불신의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다르다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도요타가 렉서스 GX460 모델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뒤인 15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도요타 매장에서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고 있다. [타이베이 로이터=연합뉴스]
20일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이다. 골드먼삭스 소송에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낙승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블룸버그는 SEC 내부에서도 골드먼삭스 제소가 3대 2로 가까스로 통과됐다고 전했다.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많았다는 얘기다. 브레이크와 바닥 매트의 결함이 바로 입증됐던 도요타보다는 훨씬 치열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SEC가 이기면 파장은 도요타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도요타 사태의 피해자는 개별 운전자다. 소송도 주로 보험사 등 민간이 주도한다. 반면 골드먼삭스에 투자해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각국 정부와 연관이 있다. 미국의 AIG,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독일의 IKB 등은 모두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사들이다. 국민 세금 문제가 걸린 만큼 소송과 처벌의 강도가 도요타보다 훨씬 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독일이 별도의 조사를 벼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도요타가 자동차 시장에 미친 영향보다 크다. 도요타는 갓 세계 1위가 된 회사다. 도요타의 추락이 자동차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진 않았다. 리콜 사태에도 미국의 3월 신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4% 늘었다.
그러나 골드먼삭스는 월가를 이끌어 온 전통의 톱 플레이어다. 이 회사가 흔들리면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19일 아시아 증시는 ‘골드먼 쇼크’로 일제히 주가가 내렸다.
골드먼삭스 사태가 몰고 올 가장 큰 파장은 금융 규제의 강화다. 자동차 안전 규정처럼 적당히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다. 은행세도 도입하고, 은행의 사모펀드 투자를 제한하고, 은행 규모에 대한 규제까지 포함하는 대대적인 변화다.
물론 공화당의 반대가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주범은 금융사라는 대중적 반감이 더 크다. 올해 초 대형 투자은행들이 보너스를 확 줄인 것도 이런 대중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골드먼삭스 제소 사건은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 추진에 불을 붙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339/4121339.html?ctg=1100&cloc=home|list|list2 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2010.04.21 00:02 입력 / 2010.04.21 00:0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