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大入)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대학교육에 쏟았으면

2010. 4. 24. 16:43敎育

[아침논단] 대입(大入)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대학교육에 쏟았으면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화인류학

특정기술과 지식습득만을 강조한 맞춤형 교육은 빠른 변화에 적응 못한다

미래는 경계를 뛰어넘는 젊은이들을 기다린다

이것이 입시제도 개선보다 몇 배 더 중요하다

오는 2학기 〈전쟁과 평화〉 주제탐구세미나 수업을 준비하다가 알게 된 일이다. 2차대전 초 서부전선에서 전격전의 선봉장으로, 이후 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로 신출귀몰하던 롬멜 장군이 원래는 보병 장교였다나? 탱크부대는커녕 그 어떤 기동부대 근무 경험조차 없었지만 롬멜은 기갑사단의 지휘를 간청했다. 탱크를 "오래 탔다"거나 "세부사실을 많이 안다"는 것보다 전투의 "원리를 터득"했고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롬멜은 병과의 경계를 빠르게 넘어섰고, 탱크를 발명하고 기동전 개념을 개발한 영국군과 우수한 기계 성능을 자랑하던 프랑스군을 몇 달 후 격파했다.

사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 또한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는 전문화보다는 생존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일반적 적응능력을 진화과정에서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특수한 생존환경에 아주 잘 적응하게 진화해버린 생물종은 그 환경이 사라지면 생존마저 어렵게 된다. 반면에 다양성이 크거나 학습능력이 뛰어난 경우에는 변화에 대처하며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진전으로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많은 새로운 일과 산업이 나타나고 있는 한편, 수많은 '좋은' 직장과 직업이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이렇게 환경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어른들은 여전히 "누가 어떻게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들어가느냐" 하는 입시제도 개선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대학에 들어간 다음의 문제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단순한 기존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을 학습할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 이런 것이 사실 더 중요한데….

심지어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경계를 넘기를 권장하기는커녕 특정한 지식과 기술 습득을 강조하는 맞춤형 교육이 대학교육의 개혁방법처럼 둔갑하기도 하고, 또한 학과별 모집으로의 환원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맞춤형 교육을 받으면 첫 취직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이들은 얼마 안 가 혹시 폐기처분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식의 습득도 좋지만 학습능력을 확실히 키워야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사회나 직장에도 기여하고 자존심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아닌지?

며칠 전 대통령은 지방 고등학생들에게 논술도 없고 시험도 없이 100% 면담만으로 대학에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 했다. 그분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한다고 알려진 교과부 차관은 속도조절이 필요하며 100%라는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는 말라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해명에 대해 청와대 측이 진노했다 한다. 기자간담회를 또 열게 될 수도…. 이런 보도를 읽으며 '대학입시에 쏟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대학교육에 쏟았으면' 하고 탄식하는데, 놀랍고 슬픈 소식이 들린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을 맡아온 철학과 김영정 교수가 한창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나. 아까운 인재를 그렇게 거두어가는 하늘의 뜻을 인간이 어찌 헤아리랴마는, 그래도 논술고사,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지역균형선발제, 입학사정관제 도입…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혹시… 하고 안타까워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제자의 애도의 글이 가슴을 친다. "선생님 그곳에선 입학관련 일 하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얼마 전, LA 폭동 이후 재미 한인들의 다문화 노력에 대한 현지 조사를 하는 가운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인들이 미국을 찾는 중요한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이라지만, 그저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나? 아이들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많은 부모는 좋은 학교에 들어갔으니 잘 될 것이라고만 믿고 있고…. 한편 온갖 노력과 희생 끝에 드디어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응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한인 학생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미국이건 한국이건 '좋은 학교' 또는 '좋은 학과'에 입학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만큼 순진하고 위험한 생각도 없다. 입학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더구나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세상에서 좋다는 것이 과연 내게도 좋을까?

미래는 기존의 세부지식을 잔뜩 습득하거나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르기보다는 마음이 열려있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사람, 그리하여 필요하면 새로운 것을 빨리 배우며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인재들이 개척하게 될 것이다. 입시제도 개선도 중요하겠지만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좀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학 20~30개 정도를 어느 곳에 들어가더라도 나름대로 아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하고 육성하면 어떨까? 입시지옥이나 사교육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국가적으로 가장 값싼 교육정책이 아닐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9/2009072901491.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7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입력 : 2009.07.30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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