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7. 21:21ㆍ一般
[주간조선] 6개 옛 명문고 베이비붐 세대 3500명 인생 추적
92% 대학진학… 현재 수도권 거주 56% 직업은 교수·교사, 의사, 공무원 順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1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베이비붐(baby boom) 세대의 이름에 붐(boom)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이 시기에 태어난 동년배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에선 매년 40만~60만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 후 9년간 이 수가 갑자기 80만~110만 명으로 급증했다. 베이비붐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하다.
1955~1963년생 현재 712만 명
1955년부터 9년간 태어났던 아이들의 수는 810만 명을 웃돌았으나 그간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100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그래서 연령대별로 70만~80만 명만이 살아남아 현재 전체 수는 712만 명에 이른다. 은퇴를 목전에 둔 베이비부머들은 이런 사회적·생물학적 위험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위대한 생존자들인 셈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살아온 지난 50여년의 세월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유년기에 ‘빈곤의 시대’를 거쳐, 청년기에 ‘군사독재 시대’를 경험했고, 중년의 시기에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으며, 장년기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대’를 겪었다.
명예퇴직 바람에 휘말려 인생의 후반전이 씁쓸하게 풀리고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평생의 꿈이었던 ‘빈곤의 극복’과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행복한 세대라고 할 만하다. 지난 55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규모(GDP)는 무려 600배나 커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65달러에서 2만 달러로 높아졌다.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성취를 이뤄낸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난 1950~1960년대는 하루 세 끼 먹기가 매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식량이 떨어져 풀이나 보리 싹을 뜯어먹던 이른바 ‘보릿고개’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궁핍을 돌파하는 방법은 농촌을 떠나 사람과 일자리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집안형편 때문에 이사를 못 간 사람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자녀들 가운데 똑똑한 아이들을 골라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 명문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엔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이상 서울), 경남고, 부산고(이상 부산), 경북고(대구), 광주일고(광주), 제물포고(인천), 대전고, 전주고 같은 명문 남자고등학교가 탄생했다. 이들 명문고에 진학한 베이비부머들은 ‘집안의 재건’이라는 임무를 띠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또 서울 유학을 갈 형편이 안 된 아이들은 등록금이 싼 지방 명문 국립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어린 시절 ‘수재’ 소리를 듣던 베이비부머들은 지금 과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경기고, 경복고,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대전고 등 6개 명문고 졸업생 3500명의 인생을 추적해 보았다. 조사는 6개 고교 동창회의 도움을 얻어 지난 2년 동안 이뤄졌다. 고등학교별 조사자 수와 졸업 연도는 <표1>과 같다.
대학 졸업한 지역에 뿌리 내린 경우 70%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온 베이비부머들의 인생을 몇 가지로 뭉뚱그려 요약할 수는 없다. 그들이 살아온 생활환경과 사고방식, 그리고 삶의 스타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현장 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필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먼저 3500명의 베이비부머들은 현재 수도권에서 56%, 지방에서 44%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어날 때는 대부분 지방에서 태어났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거의 절반이 수도권으로 이동해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지역에서 취직을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의 비율은 70%에 달했다. 이는 대학 공부를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흐름이 크게 갈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또 6개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은 92%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 8%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1970년대는 대학진학률이 30% 선에 머물렀던 시대다. 대부분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했다. 이런 사회적 트렌드와 비교해 볼 때 명문고 출신들은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해석된다.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은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실망시키지 않고 명문대학에 대거 합격했다. 각 학교마다 매년 650~750여명의 학생이 졸업하여 이 가운데 130~300명이 서울대에 합격하고 50~200여명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는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은 가문(家門)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했다. 고향 마을 어귀에 축하 플래카드가 붙고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지방대 출신 전문직 절반 이상이 서울로
고등학교 졸업한 지 33~36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저세상으로 가는 베이비부머들도 적지 않게 생기고 있다. 6개 고교 출신 3500명의 베이비부머 가운데 사망한 사람들의 비율은 학교별로 현재 4~6% 선에 이르고 있다. 사망 원인을 보면 한국 남성의 3대 사망 질환인 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확률적으로 계산하면 나머지 생존자들 가운데서도 10년 이내에 같은 수만큼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강관리를 잘하여 암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대부분 평균수명(2008년 남자 78세)을 넘어 85~88세까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지방 고교 졸업생들의 인생 유전이다.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대전고 등 지방 4개 명문고 졸업생들의 주소지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65%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도권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서울 주변에 몰려 있어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한결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4개 지방 명문고 졸업자 조사에서 나타난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50~60%가 서울권으로 이동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사람들의 씀씀이가 지방보다 크기 때문에 자영업을 하는 경우라도 서울에서 하는 게 아무래도 돈을 벌기가 더 쉽지 않았나 싶다.
직장생존율 50~70%… 이미 은퇴 시작
이런 전문직 종사자의 인구 이동을 고려하면, 4개 지방 명문고의 경우 졸업생의 55%가량이 현재 수도권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태어나기는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절반 이상이 ‘서울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4개 고교가 각각 영남·호남·충청 지방을 대표하는 명문고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의 인재 유출이 지난 30년 동안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중년의 나이에 맞이한 IMF(국제통화기금) 환란(換亂) 쇼크는,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의 인생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명문고 출신들은 좋은 대학을 졸업한 덕분에 대부분 삼성·현대·LG·SK·한진 같은 재벌기업과, 한국은행·산업은행·한일은행·제일은행·조흥은행·외환은행 등 일류 금융기관에 취업을 했다.
그러나 당시 부모들의 기쁨이 됐던 이러한 진로 선택은 1997년 말 IMF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전혀 뜻밖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재벌기업일수록 인사 관리가 살벌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동년배 베이비부머들에 비해 더 빨리 회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재벌 기업들은 간부사원들이 50세를 넘어설 때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곧바로 명예퇴직을 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이런 인사 관행 때문에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은 벌써 4~5년 전부터 직장에서 줄줄이 밀려나고 있다. 소수(少數)이긴 하지만 아주 빠른 사람은 IMF 쇼크 때 해고를 당했다. 이 때문에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의 직장 생존율은 현재 50~70% 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연령대별로 살려보면 1955~1957년생은 50% 선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으며 1958~1960년생은 70% 선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된다.’는 언론 보도는 명문고 출신들의 입장에선 보면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기사인 셈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베이비부머들의 운명이 크게 엇갈렸다는 점이다. 대학졸업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직업군은 의사와 교사, 공무원이다. <표2>는 6개 명문고 졸업생들의 2008년 현재 직업 분포(회사원 제외)를 나타낸 것이다. 아직 가장 많은 사람이 취업해 있는 직종은 회사원이었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이라는 점에서 랭킹에서는 제외했다. 고교별 직업 분포를 보면 경북고 1977년 졸업생 가운데서는 교직 종사자가 101명(교수 84명, 교사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의료 94명(의사 91명, 약사 3명), 공무원 53명, 판·검사와 변호사 39명 순으로 나타났다. 경북고 직업분포에서 공무원과 판·검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은 역대 TK(대구 경북) 정권에서 경북고 인맥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 출신일수록 전문직 선호
광주일고(1977년 졸업생)도 비슷한 추세를 보여 교직 종사자가 106명(교수 74명, 교사 3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의료 105명(의사 100명, 약사 5명), 공무원 45명 순으로 나타났다. 광주일고 졸업자들의 특징은 의사가 단일 직업 기준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 출신들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낮은 공직보다는 생계 걱정 없는 전문 직업 분야에서 인생 승부를 걸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고(1978년 졸업생)는 아직 직업을 가지고 있는 졸업생 가운데 교직 종사자가 113명(교수 53명, 교사 6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의료 71명(의사 63명, 약사 8명), 공무원 33명, 언론사 12명 등으로 나타났다. 대전고의 특징은 교사와 언론인이 다른 고등학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이던 경기고는 우리나라 수재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1975년 졸업생의 직업 분포를 보면 교수가 무려 143명에 달했고 다음이 의사 66명, 판·검사와 변호사 36명 등으로 나타났다. ‘공부 잘하면 선생님 된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경기고 사례를 볼 때 딱 맞아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첫 주자인 경남고 1974년 졸업생(1955년생)들은 이미 절반가량이 현역에서 물러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인 직업 분포를 보면 사업·자영업이 118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교직 종사자 62명(교수 50명, 교사 12명), 의료 52명(의사 49명, 약사 3명), 공무원 15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명문고 졸업생들이 의사와 교직, 공무원에 대거 진출한 데는 부모세대가 겪은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녀들의 대학 진학과 학과 선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쪽은 부모들이다. 1920~193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부모 세대들은 젊어서 6·25전쟁을 겪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취직자리가 부족해 크게 고생을 했다.
이런 경험을 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확실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의사와 약사, 교사가 되도록 권유한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는 대목이다. 또 오랫동안 공무원 텃세에 시달렸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권력을 쥘 수 있는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보도록 독려했고 이런 자극에 힘입어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법대와 상대를 나와 공무원으로 입신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권해준 직업들은 대학 졸업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난다. 공대와 자연대·사회대·인문대 출신들은 요즘 정년을 맞거나 구조조정을 당해 속속 집으로 돌아가는 신세에 몰리고 있다. 반면 의대와 사대, 법대 출신들은 여전히 직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한 베이비부머들이 자녀를 의대와 법대, 사범대로 보내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겠다.
3500명의 조사 대상 베이비부머 가운데 눈에 띄는 정치인은 정두언(한나라당 최고위원·1975년 경기고 졸업), 경제인은 박현주(미래에셋 회장·1977년 광주일고 졸업), 권영수(LG디스플레이 사장·1975년 경기고 졸업), 김상균(삼성그룹 법무실장 사장·1977년 경북고 졸업), 최광해(삼성그룹 전략지원팀장 부사장·1974년 경남고 졸업) 등 소수에 불과했다. 정치계와 경제계의 경우 해방둥이 세대(1940~1949년생)와 경제개발 세대(1950~1954년생)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베이비붐 세대가 뚫고 들어가기가 아직 힘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법부와 행정부 등 공무원 사회에서는 핵심적인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병현(부산지법원장·1974년 경남고 졸업), 이성보(청주지법원장·1975년 경기고 졸업), 안영률(광주지법원장·1975년 경기고 졸업), 이동명(의정부지법원장·1975년 경기고 졸업), 김학의(인천지검장·1975년 경기고 졸업), 정진영(전 인천지검장·1977년 경북고 졸업), 김현웅(춘천지검장·1977년 광주일고 졸업)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행정부 쪽에서는 최중경(경제수석·1975년 경기고 졸업), 진영곤(사회정책수석·1975년 경기고 졸업), 김대기(문화체육관광부 차관·1975년 경기고 졸업) 등 경기고 인맥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경북고와 광주일고 1977년 졸업자는 아직 차관급까지 승진하지 못했으나 정부 부처 국장과 실장 등 고위직급에 오른 인물이 약간 명씩 있었다. 경복고 1975년 졸업자 가운데서는 배국환 감사위원(차관급 전 기획재정부 차관), 경남고 1974년 졸업자 가운데서는 박석환 주 베트남대사와 임광수 농림수산부 수산정책실장이 가장 고위직급까지 승진한 사람이다.
10명중 7명 부모생활비 지원
6개 명문고 졸업자 조사에서는 자료 축적의 부족으로 실지 조사는 하지 못했지만 통계청 자료를 뒤져보면 올해 47~55세가 된 베이비부머들의 특징이 몇 가지 더 드러난다. 자녀수는 평균 2.3명이고, 월수입은 평균 445만원(대졸 남자), 240만원(고졸 남자)으로 나타난다. 또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가구당 평균 3억260만원(부채 4943만원 포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부동산이 2억2600만원으로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부모 봉양에 대한 의무감을 가진 ‘마지막 세대’라 불린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베이비부머 10명 가운데 7명은 월급을 쪼개 부모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베이비부머의 12%는 자녀들을 해외 고등학교와 대학에 보내고 자신은 한국에서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을 위한 투자는 정작 소홀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이비부머 10명 가운데 5명은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뛰다보니 최근 1~2년간 공연장과 스포츠 경기장에 한 번도 간 일이 없으며 책도 읽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의 삶이 앞으로 매우 팍팍해질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양민 가천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27/2010072701840.html?Dep1=news&Dep2=top&Dep3=top 입력 : 2010.07.27 20:21 / 수정 : 2010.07.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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