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2009. 11. 22. 16:35健康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영화나 소설속의 정신질환은 하나같이 광적이고 위험하고 기괴하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는 사람의 귀를 씹어 먹고, 통조림 따듯 두개골을 따서 골을 후라이팬에 지져먹는 등 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거장(巨匠)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나 에드워드 노튼이 열연(熱演)한 ‘프라이멀 피어’ 등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에선 자기도 모르는 또 다른 자기가 원래 자기를 위해 살인 등 악행을 일삼곤 한다. ‘엑소시스트’와 같은 심령-공포 영화에선 아예 정신질환자를 귀신 들린 사람과 동일시한다. 정신질환이라고 할 때 살인, 환각, 악마, 초자아(超自我)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이 같은 영화적 충격 영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는 무관한,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나 존재하는 병으로 정신질환을 인식한다.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가장 흔한 질환 중 하나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대명사격인 정신분열병만을 정신질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손거울을 보며 노래를 부르거나,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거나, 산발한 채 끊임없이 혼자 중얼 거리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분열증은 감추려야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자살의 중요한 원인인 우울증 환자는 전 인구의 약 10%나 되지만, 환자나 가족들은 “기분이 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것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내 또는 남편의 부정을 의심하거나,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폭음이나 도박을 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나만 ‘왕따’시킨다고 생각하거나, 가스레인지 불 끈 것을 여러번 확인하는 사람은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 중 상당수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성격적으로 조금 별날 뿐 그럴 수 있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특히 습관성 음주에 대해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용인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병은 점점 더 깊어가고,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나락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때를 놓쳤기가 십상이다.

인류는 지금도 정신질환을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가치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돼 외톨이로 지내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충격-스트레스를 받거나, 아니면 귀신이 들려서 정신이 나가는 것, 즉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정신과 치료는 상담-심리치료가 중심이었고, 때로는 무당이나 성직자가 치료를 맡았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정신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는 것이다.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세르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게 분비돼 초래된다는 설명이다. 즉, 인체의 병이 어떤 장기에 이상이 있어 생기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뇌라는 장기에 이상이 있어 생긴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자들의 뇌기능을 조사해 보면, 뇌를 구성하는 수많은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정보전달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들의 균형이 깨져 있다. 따라서 그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보충 또는 차단함으로써 얼마든지 증상의 조절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무당이나 교회, 절을 찾기에 앞서 흰 가운 입은 의사를 먼저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질환은 우울증이다. 분자화되고 기계화된 산업사회는 사람의 사람다운 따뜻함이 사라진 사회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게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울증과 우울한 기분은 구분돼야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하려는 일이 좌절됐을 때, 또는 도무지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때는 누구나 심하게 우울해 질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해 지고, 만사가 귀찮아 진다면, 이것은 기분을 조절하는 뇌 신경전달물질(세르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활성도가 떨어져서 생기는 병으로 인식해야 한다. 전 국민의 5% 정도가 현재 치료를 받아야 할 우울증 환자며, 20% 정도는 살아가면서 한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만 우울한 게 아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 의욕 등 네 가지 욕심이 없어지고, 이 때문에 불면증, 소화불량, 변비, 기력저하, 기억력 감퇴 등의 신체증상이 나타난다. 심해지면 피해망상, 환청, 환각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발병 이유가 뚜렷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공포증, 알코올중독, 약물의존 등 여러 정신질환이 원인이 돼 초래될 수도 있다. 또 뇌 질환(뇌종양·뇌졸중·치매), 소화기질환(간경화·과민성대장증후군), 심장질환(심근경색·협심증), 내분비계 질환(갑상선 질환) 등 신체 다른 부위의 병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출산이나 폐경 이후 호르몬 체계가 변하거나 일조량이 적어지는 가을이나 겨울철에도 일시적으로 우울증이 잘 생긴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 부른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치료받으면 감기처럼 쉽게 낫는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니 숨기거나 주저하지 말고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으라는 것이다. 단순히 우울한 기분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으로서의 우울증은 자력으로 이길 수 없다.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명심할 점은 감기도 깊어지면 폐렴을 비롯한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고, 그것이 원인이 돼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둘씩 셋씩 데리고 고층아파트서 뛰어내리는 진짜 이유도 사실은 우울증 때문이다.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제 정신이라면 제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자살은 우울증 환자가 생각해 낸 가장 손쉬운 해법인지 모른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15~20% 정도는 자살을 시도하며, 3% 정도는 자살에 성공하고 있다. 증상이 심한 ‘주요 우울증’ 환자만을 따지면 자살률이 10%에 육박한다. 일반적으로 여자 환자가 자살을 더 많이 시도하지만, 동맥절단 시도 등과 같은 ‘소극적 방법’을 사용하므로 성공률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남자는 투신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 방법’을 사용하므로 자살률은 여자보다 2배 정도 높은 실정이다. 퓰리처상과 아메리칸 북 어워드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런은 자신의 우울증 투병기 ‘보이는 어둠(Visibile Darkness)’을 통해 우울증을 ‘자살에 이르는 샛길 없는 통로’라고 묘사했다. 병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쓸모없음에 대한 확신도 깊어지고, 자살이 가장 달콤하고 손쉬운 탈출구로 여겨졌다고 그는 고백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해법은 병원 치료뿐이다. 병원에선 1차적으로 약물(항우울제) 치료를 한다. 현재 사용되는 우울증 약들은 부작용이나 습관성이 없고, 약효도 뛰어나 80~90%의 환자에게서 증상이 호전된다. 이 같은 효과는 대개 약 복용 2~4주 이후부터 나타나는데, 환자들은 증상이 좋아진 뒤에도 최소 6개월간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의사의 지시 없이 증상이 좋아졌다고 약을 끊으면 대부분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 된 경우엔 적절한 상담 치료를, 망상 등이 동반되는 심한 우울증엔 전기충격요법을 쓰기도 한다. 또 뇌종양 등의 병 때문에 우울증이 유발된 경우엔 ‘원인질환’에 대한 치료도 받아야 한다.

한편 우울증과 구분해야 할 질환으로 조울증이 있다. 기분이 극단적으로 좋았다 극단적으로 나빴다를 반복하므로 의사들은 ‘양극성 정동(기분)장애’라고 부른다. 조증기엔 너무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넘치고, 일이나 사업에 강한 의욕과 집착을 보이게 된다. 주위가 산만해 지며, 수면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특징이다. 이때는 낭비벽이 심해지거나, 무모한 투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싼 값에 팔아 치우는 등 재산상을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이 전지전능자가 되는 환상에 빠지거나, 자신을 칭찬하는 환청을 듣는 등 정신분열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같은 조증은 우울증과 교대로,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데,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보통의 우울증보다 증상이 훨씬 심한 게 특징이다.

조울증은 인구 100명에 1명꼴로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이혼자, 독신자,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더 흔하게 나타난다. 환자들은 병원 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살률이 10% 정도로 높으므로 반드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물론 치료를 해도 자살할 사람은 어떡해서든 자살을 한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 않으면 치료를 한 경우보다 자살률이 8배나 높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증기엔 항정신병약물이나 항경련제를, 우울증기엔 항우울증제를 사용한다. 심하면 전기충격요법을 쓰기도 한다. 비교적 치료효과가 좋지만, 재발도 잦은 편이므로 가족 등 주변 사람의 끊임없는 관찰이 필요하다.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또 다른 ‘주요 정신질환’은 정신분열병이다. 이 병은 평생유병률(평생 살 동안 한번 이상 병에 걸릴 확률)이 인구 100명 중 1명꼴인 비교적 흔한 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아주 드문 병으로 인식한다. 주변에서 환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일상의 대화에서 화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누구나 이 병에 걸린 환자의 얼굴 한둘 쯤 떠올릴 수 있다. 학창시절, 필자에게도 그런 친구가 두 명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빨리 ‘무대’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정신을 자기가 지배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극적이고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정신분열병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병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가족들은 부끄러워 병을 자꾸 숨기려 든다. 설상가상으로 이 병은 치료도 쉽지 않다. 환시, 환청, 혼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심한 정신분열병은 약물 치료를 해도 70% 정도만 증상이 완화되며, 나머지에겐 효과가 없다.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에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결과적으로 전체 환자의 30% 정도만이 완치돼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나머지는 병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든지, 혹은 서서히 인지기능이 나빠져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거나, 심하면 자살을 한다. 자살하는 환자는 전체의 15~20%나 된다.

그러나 포기해선 안 된다. 이 병의 치료효과가 그토록 낮은 이유는 자꾸 병을 숨기기 때문이다. 이 병도 빨리 발견해 증상을 조절해 나가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 즉 환시, 환청, 혼란 등의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다시 말해 불안이나 우울, 짜증 등과 같은 경미한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면 대부분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정신분열병의 초기엔 세수·머리감기·옷갈아입기 등을 싫어하거나, 철학이나 종교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면서 목적 없는 행동을 자주하거나,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해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표정을 짓거나, 분노 등을 표출하기 위해 TV 채널을 마구 돌리거나, 음식을 마루에 쏟아버리거나, 자위행위에 몰두하는 등의 행동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이때는 즉시 정신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약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또 이 병은 재발 가능성이 높으므로 증상이 좋아져도 2~3년간 약물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재발되기 전엔 첫 발병 초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므로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다시 재빨리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신분열병은 남자는 10대와 20대 초반에, 여자는 그보다 10년쯤 뒤에 시작한다. 그리고 30대 후반 이후엔 증상이 안정화 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주의 깊은 관찰과 약물치료로 이 기간을 슬기롭게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깝지만 많은 정신분열병 환자들이 이 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자살한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이 열연했던 강박증은 영화 속의 멜빌의 행동 그대로다. 걸을 때 보도블록의 모서리도 밟지 않고, 식당에선 항상 같은 자리에만 앉고,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를 갖고 다닌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나 환자는 손 씻기, 문 잠그기, 물건 똑 바로 정렬하기 등을 수백 번 반복하게 된다. 그런 행동들이 모두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게 이 병의 특징이다. 영화 속 잭 니콜슨은 사랑의 힘으로 강박증을 극복했지만, 현실에선 그리 쉽지 않다. 환자는 반드시 병원에서 약물치료와 행동치료를 동시에 받아야 하며, 그 경우 80~90%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10~20%는 수년씩 약물-행동치료를 계속해도 잘 낫지 않는다. 최근엔 이 같은 난치성 강박증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의 뇌 신경회로 일부를 끊어주는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 병은 100명 중 1~2명에게 나타나며, 주로 사춘기에 발병한다. 유전적 요인과 스트레스가 위험요인으로 평가된다.

폐쇄된 공간이나 높은 빌딩 위, 거미 등과 같이 특정한 물체나 활동, 상황에 비정상적인 공포감을 갖는 공포증도 전 인구의 10% 정도에게 나타난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단일한 가 복합적인 가에 따라 단일공포증(폐쇄공포증, 고소공포증, 거미공포증 등)과 복합공포증(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으로 구분한다.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접하면 불안한 느낌,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땀이 남, 구역질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광장공포증에 걸리면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회피하게 되므로 자연히 활동이 제한되며, 그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단순 공포증은 어린 시절 좁은 공간에 갇혔던 기억 등과 같은 경험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나, 광장공포증 등 복합공포증은 원인이 불명확하다. 이같은 공포증은 환자를 인위적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물체나 상황에 점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환자가 스스로 그것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탈 감작 행동 치료’로 비교적 손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단순공포증은 치료를 받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서 없어지나 복합공포증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극심한 불안이 엄습하는 불안장애도 매우 흔한데, 대표적인 게 공황장애다. 불안장애 환자는 이상하게 불안한 예감이 들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고, 잠도 잘 못 자게 된다. 때로는 두통, 복통, 구토, 땀 흘림, 숨이 참, 어지러움 등의 신체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같은 증상이 한꺼번에 갑자기 나타나는 공황발작을 한두 차례 겪게 되면 환자는 사람을 피하게 되는 등 정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를 찾아 불안장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인지-행동치료를 받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우울증 치료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은 그 밖에도 수도 없이 많다. 비교적 흔한 알코올중독 환자는 불안, 우울, 망상 등의 정신과적 증상을 보이며 자살률도 높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해망상이나 질투망상 등 망상장애 환자는 자신의 망상이 망상이란 걸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게 특징이다. 이때는 항정신병약물을 써야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등 혹독한 경험을 한 뒤 우울-불안해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도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강박성 도박증, 의사가 병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건강염려증, 거식증, 폭식증, 도벽, 방화벽 등도 모두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들이다.

미국 정신질환자 지지모임에서 제작한 액자를 본 적이 있다. 액자엔 링컨, 베토벤, 도니제티, 고호, 미켈란젤로, 톨스토이, 뉴튼, 헤밍웨이, 처칠 등 20여명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액자엔 그 보다 작은 글씨로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며, 그보다 더 작은 깨알 같은 글씨로 ‘이들은 모두 정신분열증 또는 심한 우울증을 경험했던 환자’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정신질환을 앓는 수많은 링컨과 베토벤과 미켈란젤로가 ‘미친 놈’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폐인이 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이제 더 이상 미친 사람이 아니다. 당뇨병 환자나 심장병 환자처럼 치료가 필요한 병자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세상의 시각은 너무나 닫혀 있어 마음이 무겁다.

■ 이홍식 교수에게선 정신과 의사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는 여느 정신과 의사처럼 남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듣거나, 사람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이 많은 편이다.

약간 건덩건덩하는 말투로 속사포처럼 자기 얘기를 쏟아 놓는다.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얘기하는 주제도 동(東)에서 서(西)로 마구 널뛰기 한다. “아 요즘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며 먼저 엄살을 떨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자기 아들-딸 얘기도 쏟아내기도 한다. 동네 호프집에서 맞닥뜨린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한 후배 의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로 환자의 경계심을 풀어놓는 게 이 원장의 특기”라고 말했다.

2001년 3월, 연세의대 광주세브란스정신병원 원장에 취임한 이 교수는 취임과 동시에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으로 바꾸었다. 낡고 칙칙하고 기괴한 정신병원의 이미지를 정신건강이란 밝고 산뜻한 단어로 포장한 것이다. 동시에 권위적, 폐쇄적인 치료 모델을 개방적, 환자 중심적으로 바꿨고, 병원 건물과 주변 환경도 ‘정신건강’이란 단어와 걸맞게 단장시켰다. 또 ‘감성치료’의 개념을 도입했다. 정신질환자는 기본적으로 약물치료가 중심이지만 ‘감성’이 가미돼야 비로소 완벽해 진다는 게 이 원장의 지론이다.

1951년생인 이 교수는 연세의대를 졸업했고, 미국 UCLA병원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스병원에서 정신분열병을 집중 연구했다. 귀국해선 개원가에서 의뢰된 중증 정신분열병 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정신분열병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젊은 시절, 이론대로, 원칙대로 진료했을 땐 차라리 치료효과가 좋았는데, 약물 치료에 감성(感性)을 접목시키려다보니 더 어렵다는 것이다. 엄격하고 때로는 모질게 치료해야 하는데, 환자의 아픔과 상처가 가끔씩 그의 감성을 터치해 그것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그는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은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대한정신약물학회 회장,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 아시아위원장, 세계정신분열병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1995년 발간한 ‘정신분열병, 극복할 수 있다’는 정신분열병 환자와 가족들의 필독서다. ‘완전한 부부’ ‘스트레스 프리웨이’ ‘병 주는 스트레스 약되는 스트레스’ 등의 저서가 있다.

계절성 우울증

여름날의 짙푸른 잎사귀가 찬바람 맞고 떨어져 스산하게 나뒹굴면 우울증 환자가 부쩍 늘어난다. 전체 우울증 환자의 10~20%가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이 악화되며, 환자의 5% 정도는 다른 원인 없이 가을과 겨울철에만 우울증에 빠져든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 한다. 스산한 가을바람 때문에 우울해 지는 게 아니라 줄어든 일조량 때문에 뇌신경 전달 물질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 생기는 현상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에 따라 1년을 주기로 가을에 우울증이 시작돼 겨울을 거치며 악화됐다가 봄이 되면 회복이 된다. 식욕저하나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나는 일반적 우울증과는 달리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을 과식해 체중이 늘어나는 게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남반구보다 북반구에 살수록, 남자보다 여자가 계절성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겨울과 밤이 유난히 긴 북유럽 국가 사람에게 유난히 발생률이 높으며, 미국 시카고처럼 안개가 많고 햇빛을 보기 힘든 지역에도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많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계절성 우울증도 증상이 심한 경우엔 약물치료를 하지만, 5000룩스 정도의 밝은 빛을 쬐게 하는 광선치료의 효과도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야외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며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우울해 지려 할 때는 가급적 커튼을 걷어 집이나 사무실을 밝게 하고, 자주 창가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기억을 떠 올리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또 우울한 기분이 빈틈을 찾아 헤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요리나 청소, 운동 등 가급적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일거리를 찾고, 화가 나려 할 때는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거나 고함을 질러 버리는 것도 좋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되고, 경우에 따라 알코올 중독의 위험성도 높아지므로 술에 의존하려 해선 안 된다. 과일, 야채, 해조류를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시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ttp://health.chosun.com/healthyLife/column_view.jsp?idx=330&cidx=26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입력 : 2004.07.14 09:22 46'

우울증

가을, 우울증이 온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글루미(gloomy)’하고 ‘멜랑콜리(melancholy)’한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에 혼자 앉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고 싶다. 씁쓸한 커피 맛이 내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다. 비가 내리는 창문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는 감수성이 뛰어난 가을 남자(여자)야….’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 역의 히스 레저가 생각난다. 그는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

‘혹시 초기 우울증 아닐까….’

누구나 가끔 우울하고 울적하다. 보통 이런 기분은 심하지 않고 저절로 없어지거나 기분전환으로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울적하고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는 상태가 몇 주, 몇 달, 몇 년간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우울증은 사회에서 예측되는 수준 이상의 우울한 기분이 일정기간 이상 지속돼 개인의 사회적·직업적 기능에 부정적 양향을 미치는 정신질환이다. 우울증은 △유전적 요인 △뇌 신경전달물질 체계의 이상 △생활 속 스트레스 △대인관계 문제 △사물을 보는 부정적 시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물학적, 유전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이 모두 작용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 ‘또 긴 하루가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졸리지도 않은데 기력이 없고, 자신이 무능력하고 열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실패하면 모두 자기 책임으로 돌려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주요 우울증’은 가장 대표적인 형태의 우울증이다. 심한 경우 망상, 환각 등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며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

‘기분부전증(만성우울증)’은 2년 이상 우울증이 지속되는 것이다.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 상태와 기분이 가라앉고 자신감이 없는 우울증 상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 밖에 월경 전 발생하는 우울증, 산후 발생하는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계절성 우울장애 등이 있다. 간혹 암, 갑상샘기능저하증 등 신체질환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거나 약물이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주로 남성은 사회경제적 위치 상실에 따른 자존감 상실이, 여성은 기존에 부여된 역할 상실에 따른 공허함이 우울증을 야기한다.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성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의존적이고 강박적인 성격, 반사회적이거나 성격스트레스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으며 성인 10명중 1명은 일생에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우울증 등 기분장애환자는 2001년 43만1507명에서 2006년 63만8115명으로 47.6% 증가했다.

대다수의 우울증 환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전체 우울증 환자 중 10∼25%만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다.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팀이 지난해 우울증 환자 1425명을 조사한 결과 우울증 환자의 64.4%는 ‘우울증인지 몰랐다’ 고 답했다.

우울증은 개인은 물론 가족과 사회에 큰 손실을 가져다주는 사회적인 질병이다. 언제 나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우울증을 미리 예방하고 조기에 치료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9170113&top20=1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기사입력 2008-09-17 03:02

강박장애

강박증은 대개 갑자기 발병하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유발되는 경우도 많다. 강박증은 한국에서 100명 중 2~3명꼴로 발병하며 미국에서는 공포증, 물질관련장애, 우울증 다음으로 많은 질환이다. 이 병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주된 증상이다.

강박장애는 불안을 일으키는 통제할 수 없는 생각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질환으로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특징이다. 강박 사고는 원하지 않는 불쾌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으로 본인이 생각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강박적 행동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강박사고가 일으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강박적인 행동으로는 반복적인 손 씻기, 창문이나 문이 닫혔는데도 계속 확인하는 행위, 물건이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물건을 항상 반듯하게 놓는 일 등이 있다. 강박 장애는 이런 행동이 수백 번 반복되어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원인

강박 장애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선천적, 환경적, 정신적 요인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강박 장애의 가장 중요한 발병 원인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에 있다. 또한 스트레스도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강박장애를 유발시키는 요인은 된다.

증상

가장 흔한 증상으로 자신의 손이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게 자주 손을 씻는 행동, 가스 불이나 대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의심스러워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행동, 성적이거나 폭력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쓸데없는 걱정을 되풀이 하는 것 등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자신만의 특정한 말이나 숫자를 세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상태가 진행되면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며 이런 이유로 일이나 공부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가지 생각이나 느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강박사고’(obsession)에 해당하며, 무의미한 숫자 세기를 반복하거나, 무엇인가를 확인하거나, 무엇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것 등은 ‘강박행동’(compulsion)에 해당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그 같은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어쩔 수 없어 괴로워한다.

치료

주로 약물 치료와 행동 치료가 이루어진다. 항우울제를 처방하기도 하는데 약물과 정신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에 가장 효과가 좋다. 약물 치료로는 선택적인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특정한 삼환계 항우울제가 치료에 이용된다. 이들 약물의 효과로 증상의 상당한 호전을 볼 수 있으나 약물을 중단하는 경우 재발 위험이 아주 높아 장기적인 약물 투여가 필요하다. 최근에 나온 신약들은 효과가 좋아 증상의 조절이 훨씬 쉬워졌다. 심한 경우엔 전기충격요법이나 정신외과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등이 용기를 북돋아 주고 환자는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환자 모임 등에 가입하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90% 이상이 치료 후 1년 내에 증상이 호전된다.

결벽증

주부 김희애(40세)씨는 지나치게 깔끔한 남편 때문에 괴롭다. 조금이라도 정리가 흐트러지거나 어지럽혀지는 걸 못 보는 남편의 성격 때문. 며칠 전에는 자신을 쫓아다니며 해대는 잔소리가 지겨워 결벽증이 아니냐고 했다가 괜히 부부싸움까지 했다. 병적으로 심한 결벽증, 고칠 수 있을까?

결벽증은 일종의 강박장애로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강박장애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이 계속 반복되는 증상을 말한다. 뇌의 한 회로에 문제가 생겨 마치 레코드판이 튀는 것처럼 한 가지 생각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증은 정신분열증, 알코올 중독증 등과 마찬가지로 유전성이 높은 편이다.

강박장애는 크게 4가지 타입이 있다.

첫째, 깨끗함이나 위생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결벽증과 같은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비누를 한번만 쓰고 버린다던지(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손에 주부습진이 생길 정도로 자주 씻어야 한다.

둘째, 뭔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 있다. 문이나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며 심지어는 외출한 후에도 되돌아올 정도다.

셋째, 물건이 있을 곳에 있어야 하는 경우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 하나하나가 제 자리에 반드시 줄지어 있어야 하는 등 정돈된 상태를 추구한다.

넷째, 뭘 버리지 못하는 타입도 일종의 강박장애다. 버릴 경우 문제가 생길까봐 불안해서 못 버리다 보면 집안이 쓰레기장같이 변하기도 한다.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과 전덕인 교수는 “결벽증이나 정리벽 같은 경우 사회적으로 필요한 행동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병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로 인해 사회생활이 힘들거나, 효율이 떨어지거나,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외출하기가 힘들 정도라면 치료를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약물치료는 항강박약물(항우울제)을 투여한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약보다 2~3배 고용량을 써야 하고 효과가 발현되는 기간도 우울증 치료보다 훨씬 더 길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치료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행동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쓰레기통 같은 더러운 물건을 만지게 한 뒤 손을 씻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치료는 전문가가 강제로 시켜야 하고, 격려도 필요한 만큼 병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회피하는 성격이거나 본인이 협조하지 않으면 성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영동세브란스 정신과 김찬형 교수는 “용수철도 자꾸 늘리면 복원이 안 되듯이 강박장애가 5년 이상 만성화될 경우는 약물·행동 치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16/2008101600452.html 김우정 헬스조선 기자 kwj@chosun.com 2008.10.16 10:13 입력

의외로 많은 공포증 환자

'나의 두려움이 기우(杞憂)란 걸 나도 안다. 이성적으로 쓸데없는 공포심에 떨지 말자고 다짐해도 막상 공포 상황에 직면하면 죽을 것 같이 두렵다. 너무나 두려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생활은 엉망이 된다.'

'공포증'의 족쇄에 묶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성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공포를 피하려다 죽음에 직면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최근 폐쇄공포증을 앓던 50대 주부가 출입문 수리 중 문이 잠기자 열린 베란다로 투신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정신건강의 날(4월4일)을 맞아 공포증의 정체와 극복법을 알아본다.

◆ 의외로 많다 = 외국 통계는 평생 유병률(평생 동안 병에 걸릴 확률)이 11%선.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많다. 국내에선 1년 유병률(1년 동안 병에 걸릴 확률)이 4.1%, 평생 유병률은 4.8%로 외국보다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 추적의 어려움 때문에 더 많은 공포증 환자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공포증은 노인이 될 때까진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줄어든다. 실제 국내 공포증 환자도 20대가 가장 많으며 50대까지는 감소한다. 그러다 신체 기능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결여되는 60대가 되면 또다시 환자가 증가한다.

◆ 개인의 경험도 원인 중 하나 =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개인의 타고난 성향이 관여된 것으로 본다. 실제 같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도 겁에 질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기는 이도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공포증 환자는 불안, 공포를 관장하는 뇌 부위(첨반)가 위기상황에 닥칠 때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공포증은 공포심을 잘 느끼는 사람이 만성적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개인의 경험도 중요하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개를 마당에서 키우던 우리나라에선 개에 물리는 경우가 흔해 개 공포증 환자가 많다. 반면 독거미의 피해가 잦은 미국에선 거미 공포증 환자가 많다.

◆ 다양한 공포 대상 = 공포심을 유발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공포 대상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개, 쥐, 고양이 등을 접할 때 나타나는 동물형과 높은 곳, 폭풍, 물 등 자연에 노출됐을 때 생기는 환경형과 비행기, 승강기, 개방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상황형과 혈액검사나 주사 맞는 일 등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혈액 주사 상처형 그리고 소리, 질식, 구토를 할 때 보이는 기타형 등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대상도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공포 유발 대상이 500종류 이상일 것으로 본다.

공포 대상이 같더라도 이유는 다를 수 있다. 비행기 공포증의 경우 추락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밀폐된 공간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도 있다.

◆ 인지행동 치료가 해결책 = 공포증 환자는 이성적으로 '내가 두려움에 떠는 것이 근거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인정을 해도 막상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에 직면하면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예컨대 어릴 때 개에 물리는 것을 계기로 개 공포증이 생긴 환자는 주인에게 안겨 있는 애완견만 봐도 온몸이 굳고 파랗게 공포에 질린다. 오 교수는 "공포증에서 벗어나려면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확' 바꾸는 인지행동 치료를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탈감각 치료다. 공포심이 불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공포자극에 조금씩 노출시키는 것이다. 환자는 '괜찮다'는 경험을 쌓으며 자신감을 갖는다.예컨대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라면 일단 개는 위험한 동물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때 아이가 믿지 않으면 치료자는 개와 같이 노는 것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 익숙해지면 치료자는 아이와 함께 개와 어울린다. 차츰 개에 노출을 증가시켜 궁극적으로 아이가 혼자 개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중앙일보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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