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2. 14:59ㆍ一般
억! 소리 나는 시계들 도대체 어떤 기능 있기에…
30억 원대‘파르미지아니’10억 원짜리‘율리스 나르덴’5억 원대‘예거 르쿨트르’
▲ (좌) 파르미지아니 ‘부가티’(부가티자동차와 함께 만든 시계) 3억 원대 후반 (중) 율리스 나르덴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미닛 리피터’ 10억 원대 (우) 예거 르쿨트르‘마스터 그랑 트레디션 그랑 컴플리케이션’ 5억 원대
올봄 초고가 시계 브랜드로 꼽히는 파르미지아니 플리에르(Parmigiani Fleurier)를 취급하는 서울의 한 점포에 50대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이 브랜드의 피보나치 포켓 워치(Fibonacci Pocket Watch) 모델을 찾았다. 그가 찾는 모델은 무려 30억원대.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모델이었다. 매장은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스위스 본사로 연락을 했고 스위스에서 담당자가 해당 모델의 시계를 들고 얼마 뒤 한국으로 급히 들어왔다. 이 중년 남자의 주문을 받은 파르미지아니 측은 그의 요구사항에 맞춰 제작에 들어갔다. 세계 3대 시계제작 장인인 파르미지아니가 손수 만든다고 알려진 이 시계는 주문에서부터 완성까지 2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계를 주문한 남자는 명품시계 수집이 취미인 중소기업 CEO(최고경영자)로, 자신의 신분은 물론 해당 브랜드의 시계가 일반에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의 명품 백 수집에 비하면 남성의 명품시계 수집은 단위가 다르다. 보통 억대이다. 몇억 원에서 수십억 원짜리도 손목에 차고 다닌다. 그렇다고 아무 시계나 1억원이 넘지는 않는다. 그 시계들은 특수한 기능을 가졌거나, 정말 많은 기능을 한꺼번에 보유하고 있거나,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개밖에 없는 등 보편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가격표에 ‘0’을 8개 이상 붙일 수 있다.
억! 소리 나는 시계들은 어떤 것일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원한다면 언제든 스위스나 독일 본사에서 공수해 올 수 있는 1억 원 이상의 시계를 보자.
기계식 시계의 경우 실제 매장에서 구매하는 경우보다는 소비자가 미리 선주문을 하면 본사에서 전달하는 형식이 보편화돼 있다. 뿐만 아니라 소재와 세부 디자인, 기능, 가죽줄의 컬러 등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율리스 나르덴의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미닛 리피터’ 시계는 고객을 직접 스위스 본사와 공방으로 초청해 시계 제작 과정을 보여 준 뒤 수개월 후 완성된 시계를 전달한다.
보는 순간 억 소리 나게 만드는 시계들과 함께, 처음 들으면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시계 용어도 알아보자. 외래어가 아닌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계가 스위스와 프랑스, 독일 등에서 생겨난 물건이기 때문에 아직 무리가 있다. 기계식 시계가 인기를 끌면서 처음엔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계 용어도 신문이나 잡지 등에 자주 실리는 만큼 이번 기회에 알아본다면 기계식 시계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자케 드로 ‘그랑드 스공드 미닛 리피터’ 2억7000만 원대
중력의 오차까지 줄여준다
먼저 언급해야 하는 기능은 투르비옹(Tourbillion)이다. 투르비옹은 중력으로 인해 생기는 오차를 최대한 줄여주는 특별한 장치다. 18세기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발명했다. 브레게는 ‘시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그가 설립한 시계 브랜드가 ‘브레게’이다.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이라는 뜻의 투르비옹은 세계 시계 제작자 중 일부만이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을 요한다. 당연히 고가의 시계에만 장착된다. 만약 매장이나 누군가가 찬 시계 속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가는 작은 기계 장치가 보인다면 그 시계의 가격은 기본 1억 원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 랑에 운트 죄네 ‘리처드 랑에 투르비옹 푸르 르 메리트’ 2억8000만 원대
높은 기능의 컴플리케이션 시계(투르비옹 등 정교한 부가적 기능을 탑재한 시계)를 논할 때 투르비옹과 함께 손꼽히는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는 18세기에 처음 발명된 기술로 어둠 속에서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고안된 신기술이었다. 지금까지도 최고봉에 해당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시계 브랜드 자케 드로의 ‘그랑드 스공드 미닛 리피터(Grande Seconde Minute Repeater)’는 이처럼 역사적인 탄생 배경의 기술과 아름다운 외관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춘 시계다. 두 가지 소리 톤으로 시간과 분을 알려주는데 그 소리는 흡사 교회의 맑은 종소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뒷면을 통해서 두 개의 아주 작은 해머가 링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가격은 2억7000만 원대이다.
앞에서 언급한 율리스 나르덴의 시계는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미닛 리피터’라는 이름의 이 시계는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 모습을 시계의 문자반에 묘사했다. 버튼을 누르면 각각의 병사들이 움직이며 칼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로 시간을 알려준다. 네 개의 해머가 서로 다른 음을 내는데, 그 소리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벽시계 소리와 같아 ‘웨스트민스터 카리옹 리피터(Westminster Carillon Repeater)’라고도 한다. 가격은 10억 원대이다.
예술작품보다 정교한 한정 생산품
현존하는 시계 브랜드 중 미닛 리피터로 웨스트민스터 종소리를 구현한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는 파르미지아니와 예거 르쿨트르, 오데마 피게 그리고 율리스 나르덴 등으로 그 수가 많지 않다. 이는 최고 실력의 장인만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복잡한 기능뿐 아니라 예술 작품에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정교한 수작업으로 승부를 건 시계도 있다. 한정 생산되는 이 시계들도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원시 예술 박물관 중 하나인 ‘바비에 뮐러’ 박물관 측과 “원작과 최대한 유사하게 제작할 것”을 약속하고 원시시대의 마스크를 시계 다이얼에 옮겨 놓았다. ‘메티에 다르 레 마스크(Metiers d’Art Les Masques)’라고 이름 붙인 이 시계는 총 12개가 만들어졌는데 4개가 한 세트로 현재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 있는 바쉐론 콘스탄틴 매장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에 처음 입고된 이 시계의 한 세트 가격은 5억6900만 원대다.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은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각종 보석들을 시계에 세팅하는 것으로 수억 원대의 시계를 완성한다. 소설 ‘천일야화’에서 등장하는 세헤라자데에서 영감을 받은 ‘크레이지 세헤라자데(Crazy Sherazade)’ 시계에는 문자반과 베젤, 러그 등에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각종 보석들을 세팅했는데 그 가격은 1억 원대 초반이다.
윤년까지 구별해 시간 자동 보정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기능은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이다. 큰달(31일)과 작은달(30일)뿐 아니라 윤년의 29일까지 자동으로 구별하는 캘린더 기능을 말하는데 매달 시간을 맞춰야 하는 수동식 캘린더 시계의 번거로움을 해결해 준다. 현재 나오는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는 2100년까지 날짜나 연도를 보정할 필요가 없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기술뿐 아니라 윤년까지 계산해 자동으로 알려주는 퍼페추얼 캘린더는 시계 제작자들이 단지 기술자가 아닌 수학과 천문학 등에도 능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퍼페추얼 캘린더 이외에 태양계 천체의 일주를 비롯한 별자리를 표시한 조디악(ZODIAC) 캘린더도 있는데 예거 르쿨트르에는 ‘미닛 리피터’ ‘투르비옹’ ‘조디악 캘린더’ 등 손목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복잡한 기능을 무려 세 가지 이상 구현한 ‘마스터 그랑 트레디션 그랑 컴플리케이션(Master Grande Tradition Grande Complication)’ 시계를 보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밤 하늘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이 시계의 가격은 5억 원대이다.
트위터에 ‘남자가 고급시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집 대들보가 무너진다는데…’라는 글을 올린 걸 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앞서 설명한 시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은경 프리랜서·전 에비뉴엘 패션디렉터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73100018&ctcd=C05 주간조선 2173호 201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