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6. 22:52ㆍ法律
[조선데스크] 무의미한 '헌법 119조' 논란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받아들여지는 헌법 119조 2항을 둘러싸고 재계와 정치권의 논란이 뜨겁다. 최근 전경련 일각에서 이 조항의 삭제를 주장했다가 정치권으로부터 십자포화를 얻어맞았다. 민주통합당은 '수구(守舊) 회귀' '오만한 발상'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 경선 캠프의 정책을 총괄하게 될 김종인 전 의원도 "전경련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소리를 계속하면 존재할 필요가 과연 있겠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1항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한 것이고, 2항은 그로 인한 부(富)의 편중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부수적 조항이라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의 견해다. 경제 질서에 대한 국가 목표를 선언한 상징적 조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재계나 정치권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119조 1항만 유지하고 싶은 재계는 "2항은 해석상 혼란을 가중시키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재벌 규제를 위해 2항에 무게를 두는 정치권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재계를 비난하고 있다. 이 논란의 밑바탕엔 119조 2항으로 인해 재벌 개혁 논의가 거세지고 각종 규제 법률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깔려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야당은 이 조항을 재벌 개혁의 '면허증'으로 여기는 듯하다. "한국엔 소방서 119와 헌법 119가 있다. 서민 중산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작동해야 하는 게 헌법 119이다"라는 정동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말이 이런 인식을 잘 대변한다.
이처럼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있지만 사실 헌법이나 현실의 관점에서 이 논쟁은 무의미하다. 헌법 119조 2항이 있다고 해서 재벌 규제 법률의 정당성이 저절로 부여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근거해 재벌 규제 법률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법률이 합헌(合憲)인지를 가리려면 헌법의 기본 원칙인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이 조항이 있다고 해서 현실에서 달라질 건 없는 것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조항을 없애도 규제 법률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37조 2항에 근거해서 얼마든지 규제 법률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헌법 119조 논쟁은 현실에 별 영향도 없으면서 자칫 이념 갈등만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벌써 정치권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종인 전 의원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 민주화를 놓고 벌이는 설전(舌戰)도 그중의 하나다. 재계나 정치권은 소모적인 헌법 논쟁에서 벗어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5/2012070501626.html?bridge_editorial 최원규 산업부 차장 wkchoi@chosun.com 입력 : 2012.07.05 23:06
[이슈 점검]정치권 달구는 ‘경제민주화’의 두 얼굴
“모두 잘살자”는 방향성엔 공감… ‘규제 전봇대’만 늘어날 우려도
최근 ‘경제민주화’ 논쟁은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 헌법 119조 2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조항 바로 앞의 1항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1, 2항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헌법을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학자나 전문가들마저 이 말의 정확한 뜻이나 유래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체 없는 소모적인 공방(攻防)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여야 대선후보들이 모두 경제민주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차기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을 향한 ‘규제의 칼날’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의 연원(淵源)은 명확하지 않다. 경제 분야의 학자, 전문가들도 확인되지 않는 추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선전) 용어” “‘재벌’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주장”이라는 해석도 내린다.
○ 시대 따라 의미 달라진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1948년 제헌국회 때부터 등장했다. 당시 의원들의 발언록을 찾아보면 ‘근로대중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용어가 일부 쓰였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과도정부에서도 ‘경제 민주화를 위해 중소기업 융자를 활발히 한다.’는 안건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비록 지금처럼 정계의 핵심 이슈는 아니었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말의 뜻은 근로자,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후 1970, 80년대에 대기업 위주의 경제 발전이 본격화되면서 경제민주화의 의미도 진화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일부 기업에 국가적 자본이 몰리고, 근로자의 임금인상은 억제돼 ‘경제력 집중’ 문제가 나타나자 모든 경제주체가 고르게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등장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공산당이 1973년 ‘경제 민주주의’를 당의 강령 중 하나로 확정하면서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 경제민주화의 초기 타깃은 ‘관치정부’
결국 1987년 개헌헌법에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 2항)는 조항이 들어가면서 경제민주화는 한국에서 처음 공식 의제로 떠올랐다.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 총재)은 경제민주화를 언급하면서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돼온 독점과 특혜, 정경유착과 부패구조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에는 경제민주화의 주요 타깃이 대기업보다는 정부였던 점이 지금과 달랐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슬로건도 지금의 ‘재벌규제’보다는 ‘관치경제 타파’ ‘금융 자율화’가 대세를 이뤘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선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벌어진 소액주주 운동이 경제민주화의 대표적인 어젠다로 부상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경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1990년대 이후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어찌 보면 좌파보다는 우파의 이데올로기에 가까웠다”고 해석했다.
현재는 경제민주화의 표적이 ‘재벌’로 집중되는 형국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1987년 이후 정치권력은 정권 교체 등의 과정을 거쳐 분산되기 시작했지만 대기업의 경제 권력은 훨씬 막강해짐에 따라 경제민주화 논의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 큰 정부, 강한 규제로 회귀하나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쟁이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 같은 본래의 의도와 달리 ‘규제 확대’로 이어질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정부 경제부처의 고위 공무원은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로 등장한 경제민주화 논의는 정부와 관료들에게 시장을 상대로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칼자루를 쥐어 주는 방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치권이 쏟아내는 규제 공약이 차기 정부에서 현실화되면 결과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규제조직의 힘만 부쩍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경제민주화가 알고 보면 ‘국민 모두 다 잘살자’는 것인데 이걸 위한다며 과잉 규제만 쏟아내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계는 경제민주화 논란을 계기로 노조의 경영권 간섭이 심해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근로자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는 ‘독일식 노사 공동결정 제도’의 도입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척도로 보고 있다. http://news.donga.com/Economy_List/3/01/20120714/47760200/1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기사입력 2012-07-14 03:00:00 기사수정 2012-07-14 10: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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