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7. 12:32ㆍ文化
[조선데스크] 도종환의 詩만 흔들렸나
김태훈 국제부 차장 많은 시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얼마 전 새삼 주목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이 지난 9일 자신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라고 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권고에 항의해 "내 시를 학생이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국회에서 이 시를 낭송한 것이다. 덕분에 이 시는 이전보다 더 유명해졌다.
'흔들리며 피는 꽃'은 온갖 시련을 이겨낸 뒤 얻는 삶의 성취를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꽃에 빗대 노래한 작품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라는 시행(詩行)들은 교과서에서 쫓겨날 뻔한 시련을 이겨낸 뒤 더욱 높아진 이 시의 위상과도 어울려 보인다.
도 시인으로부터 "시를 살리고 시가 사랑받도록 하는 일에 좌우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의 그의 행동과 그가 쓴 작품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전교조 교사였고 진보 성향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대통령 후보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그룹에 속해서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냈지만 작품이 정치성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지 않도록 결정한 것을 계기로, 향후 우리 문학이 이룬 성취를 우리 사회가 스스로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도 시인은 '꽃'이란 시로 사랑받는 김춘수 시인이 1980년대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일을 언급하며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시 '꽃'도 교과서에서 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정치적 입장과는 별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는 시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번 사태 내내 좌우를 막론하고 문단(文壇)이 대거 도종환 시인 편에 서서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문학 외부의 논리로 작품을 재단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었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문학을 옭아맸던 친일(親日)의 굴레가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새 논의도 필요하다. 미당의 절창(絶唱) 중 많은 작품이 친일 이전에 쓰였지만 그의 행적을 문제 삼아 미당의 작품 모두를 한국문학사에서 지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문단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19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나치에 협력했던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트 함순(1859~1952)을 노르웨이가 어떻게 대우했는지 알려주고 싶다. 함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에서 이룬 모든 업적을 부정당하고 쓸쓸히 죽었다. 그러나 2009년 그의 탄생 150주년을 계기로 노르웨이는 그의 초상과 작품을 새긴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그의 생일인 8월 4일에 맞춰 고향에 크누트함순센터를 건립하는 등 함순의 문학을 대대적으로 복권했다. 함순의 작품을 제쳐놓고 노르웨이 문학을 논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사장(死藏)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대승적 판단도 있었다. 우리라고 다를 게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25/2012072503012.html 김태훈 국제부 차장 이메일scoop87@chosun.com 입력 : 2012.07.25 22:35
'文化'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관은? (0) | 2012.08.02 |
---|---|
현대예술의 특징 (0) | 2012.07.31 |
1인 창무극… 공옥진 여사 (0) | 2012.07.10 |
섭리(攝理)의 눈(Eye of Providence) (0) | 2012.07.06 |
음악사 3대 추남 (0) | 2012.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