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攝理)의 눈(Eye of Providence)

2012. 7. 6. 22:56文化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9] 진실을 찾아 메마른 땅 위를 방황하노라

미화(美貨) 1달러짜리 지폐의 뒤쪽에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눈 하나가 붙어있는 문양이 있다. 세상 만물을 꿰뚫어보는 절대자의 눈을 상징하는 이 '섭리(攝理)의 눈(Eye of Providence)'은 고대 문명으로부터 전해오는 진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징주의 미술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1840~1916)의 어두운 그림 속에서 이 눈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천상(天上)의 신(神)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 메마른 땅 위를 방황하는 우울한 인간의 눈이다. 눈구멍에서 빠져나와 속눈썹만 남기고 꺼풀을 벗은 채 연약하기 그지없는 각막을 다 드러낸 동그란 눈알이 허공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떠다닌다.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한 그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어딘가 안쓰럽고 애달프다.

르동 '무한을 향해 떠오르는 이상한 풍선 같은 눈'… 1878년, 종이에 목탄과 분필, 42.2×33.3㎝,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주로 목탄과 석판화를 이용해서 검은 색조로 마치 악몽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르동은 이 그림을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에게 바쳤다. 포는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갈까마귀' 등의 작품을 통해 엽기적 살인, 광기 어린 복수, 분열된 자아가 얽힌 무섭고도 침울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였다. 사실 포의 실제 삶은 그의 소설보다 더 잔인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평생을 빈곤과 우울, 마약과 음주벽에 시달렸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부인마저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고통 받다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포는 그 5년 후, 마흔이 되던 해에 길거리에서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채 발견된 후 병원으로 실려가 외롭게 죽었다.

르동은 포의 작품을 그대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생(生)의 의미를 찾아 홀로 분투하는 쓸쓸한 눈은 살아생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저주받은 천재' 포에게 르동이 바치는 상징적 초상화였던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5/2012070502893.html 입력 : 2012.07.0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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