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7. 12:34ㆍ經濟
[조선데스크] 은행은 금융회사가 아니다
박종세 경제부 차장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 은행 전략 및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기자들을 만나면 "제발 은행을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회사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면서 공익성의 잣대로 묶어놓으면 사기업인 은행들이 맘껏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미국 월가가 주도하는 금융혁명이 세계의 표준이었다. 은행들은 짭짤한 수익을 내고, 직원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 것이 당연시됐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예대금리 차이를 먹는 이자 비즈니스를 벗어나겠다며 각종 수수료를 올리고 돈이 안 되는 고지서 대납 업무를 기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은행이 영원히 금융회사로 불릴 것 같던 이 흐름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바뀌었다. 냉정한 시장의 논리로 매몰차게 대출을 회수하고, 기울어가는 회사는 가차 없이 쓰러뜨렸던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스스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이 투입돼 은행들을 살렸고, 이 돈은 국민들의 직간접 부담으로 전가됐다. 금융위기에서 조금 벗어나자마자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다시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고, 분노한 시위대는 월가를 점령했다. 이들은 필요할 때만 금융회사라고 주장하는 은행의 계산법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익은 사유화(私有化)하고, 손실은 국유화(國有化)하는 은행의 이중 잣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당시 허리띠를 졸라매어 조성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은 은행이었지만, 위기에서 벗어나자 은행들은 시장원리와 수익성을 내세워 곳간을 불리고 보너스로 지갑을 두툼하게 채웠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국내 은행들은 다시 정부에 손을 내밀어 부족한 자본금을 보충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은행을 번번이 살려내는 이유는 은행이 공적 기능이 강한 금융기관이기 때문이다. 은행을 금융기관으로 보면 은행 경영을 보는 근본적인 잣대가 달라진다. 은행이 금융기관이라면 비 올 때 기업의 우산을 뺏는 식의 경영은 곤란하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불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기업 대출 중 기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고 말한다. 이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으면 불황이고, 내려가면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은행들이 경기가 안 좋으면 대출을 더 줄이기 때문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등만 대출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불황일 때 대출을 늘려 침체의 간격을 좁히고, 호황일 때 대출심사를 빡빡하게 해서 거품을 줄이는 경기조절적인 기능은 이익만 추구하는 '금융회사' 은행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감사원이 최근 금융감독당국 감사에서 은행의 수익성만 높이도록 되어 있는 감독당국의 평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금융기관으로서 은행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은행에서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차원 높은 논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CD 금리 스캔들과 대출서류 조작, 전결금리를 이용한 바가지 대출금리 등은 금융기관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보통 기업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은행들은 우선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26/2012072602813.html 박종세 경제부 차장 jspark@chosun.com 입력 : 2012.07.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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