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2012. 9. 3. 09:36文化

글자를 전위적 형태·색으로 표현, "한글은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문자", "글자도 웃고, 울고, 화낸다."

타이포그래피 선구자, 그래픽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 LG 등 한국 기업과 제품 작업 유럽에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죠.

"글자는 단순히 글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감정적인 언어이고, 디자인의 한 형태죠. 기쁠 때, 슬플 때, 화났을 때 우리가 쓰는 글자가 매번 같던가요?"

글자에 디자인의 숨결을 불어넣어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영국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55·Brody·사진)는 20세기 후반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급격히 성장한 이 시각예술의 '선구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감각적인 글자 디자인으로 '글자를 갖고 무슨 예술을 하느냐'는 대중의 선입견을 한꺼번에 바꿔놓은 세계적 그래픽 디자이너다.

2013년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타이포잔치'(주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국제 조직위원 자격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1994년 디자인 전문회사 '리서치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20여 년째 세계를 무대로 제품·잡지·기업이미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그는 지난해부터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커뮤니케이션대학 학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글자는 예술(Art)"이라고 거듭 말하며 "독창적인 문자인 한글을 가진 한국은 여러모로 아주 흥미롭고 놀라운 가능성을 지닌 지역"이라고 했다.

영국 런던 인쇄대학을 졸업하고 음반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디딘 브로디는 1980년대 초반 영국 잡지 '더 페이스'의 아트디렉터로 단박에 스타 디자이너로 발돋움했다. '글자 디자인'이라고 해봐야 몇몇 컴퓨터 서체(폰트)가 전부였던 당시 그는 전위적인 글자 디자인과 과감한 색상 채택, 기발한 상상력, 불규칙한 글자 배열 등으로 세계 디자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후 '아레나' '퓨즈' 등의 잡지 작업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으며 BBC 웹사이트 로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더 타임스 등의 기업 CI(이미지)도 그의 작품이다.

"합당한 규칙은 존중한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기 위한 규칙은 일단 깨고 보는 게 맞다"는 그는 "글자를 가독성(可讀性)이 아닌 예술의 대상으로 본 것이 내 첫 번째 실험이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발명된 뒤 사실을 기록하는 매체로서의 그림은 그 목적성을 잃었어요. 하지만 그림의 설 자리는 오히려 더 넓어졌죠. 더 추상적이고 다양한 장르로 분화한 겁니다." 그는 "글자도 마찬가지"라며 "나의 몇몇 타이포그래피는 매우 읽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감정을 압축하는 기능은 좀 더 강해지고 그 형태도 다양해졌다."고 했다.

① 영국 일간지‘더 타임스’CI 및 서체(2007) ② 영국‘빅토리아 앤 알버트’박물관 전시회 포스터 커버(2011) ③ 영국 비영리 음악교육단체‘뮤직 포 유스’홍보 카드(2010) ④ 잡지‘퓨즈’의 포스터‘인벤션’(1991) ⑤ 샴페인 브랜드 돔 페리뇽 패키지 디자인(2007) ⑥애플리케이션 이미지‘더블 딥’(2010) / Reserch Studio 제공

타이포그래피는 실제 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할까? 그는 '셰익스피어와 맥도널드의 사례'를 들었다. "셰익스피어 문학집에 쓰이는 글자(색·레이아웃·폰트 등)를 맥도널드 메뉴판에 쓰고, 거꾸로 맥도널드 메뉴판에 쓰는 글자를 셰익스피어 소설집에 쓴다고 생각해봅시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가벼운 대중소설처럼 느껴질 거고, 맥도널드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처럼 보일 겁니다." 그는 "이처럼 타이포그래피는 의사소통을 보다 깔끔하게 하고, 동시에 기업의 부정적인 면도 속이기 때문에 패스트푸드, 담배회사 등 일명 '배드 컴퍼니'가 유달리 타이포그래피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나쁜 점을 정교하게 잘 속이는 것은 디자이너의 숙명"이라고도 했다.

브로디는 LG전자, 한국타이어 등 한국 기업과도 여러 차례 협업했다. 그는 "한국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잘 융합돼 있지만 내겐 문화적 차이도 무척 컸다"고 했다. "한 냉장고 디자인은 정말, (웃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아주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사실 유럽에선 그런 제품 표면 디자인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 기업은 10년, 최소 6~7년은 걸릴 작업을 '당장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특이했어요. "

스스로 '비주얼 커뮤니케이터'로 불러달라는 그는 "미래 디자인계의 가장 큰 이슈는 디지털 미디어가 될 것"이라며 "디자이너가 음성과 시각, 촉각, 미각 등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젠 컴퓨터만 좀 다룰 줄 알면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 프로는 자신의 영역과 한계를 더 넓혀야 하죠. 하지만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가 기존의 유명 디자이너 작업 스타일을 모방하려고만 하는 건 무척 실망스러운 현상이에요. 그런 면에서 '브로디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역시 (디자인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가장 큰 실수이자 실패인 셈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31/2012083100018.html 김지호 runa@chosun.com 박세미 기자 객원기자 yaho@chosun.com 입력 : 2012.08.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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