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 받고 팔아선 안 되는 것들

2012. 8. 2. 11:59文化

[한현우의 팝 컬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 받고 팔아선 안 되는 것들

삶의 모든 것이 '장사꾼' 영역으로 市場에 내놓아선 안 될 가치 지켜야

예치금 내야만 誤審 바로잡는다니 '광고 각축장' 올림픽의 또 다른 쓴맛, 스포츠 이어 인문학도 좌판 위에 연예인 '몸매 뉴스' 인터넷 도배

신아람 선수가 올림픽 펜싱 준결승에서 ‘가장 길었던 1초’ 때문에 분루(憤淚)를 삼키던 화요일 새벽, 재심(再審) 결과를 기다리는 1시간도 무척 길었다. 그 와중에 아나운서의 한마디가 잠을 싹 달아나게 했다. “이의제기 예치금 300달러 납입이 늦어져 재심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의제기 남발을 막으려고 예치금 제도가 마련됐고, 이의가 받아들여지면 돌려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유독 한국팀 경기에서 오심(誤審)이 잇따르는 와중에 ‘돈 이야기’를 듣는 맛은 몹시 썼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 각축장이 돼버린 올림픽에서 오심조차 돈을 내야 뒤집을 수 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결국 신아람은 결승 진출권을 빼앗겼으니, 국민 세금으로 냈을 그 300달러 역시 돌려받지 못하는 건지 무척 궁금하다.

야구팬들에겐 우습게 들리겠지만, 프로야구 중계에서 ‘팔도 프로야구’라는 타이틀을 처음 봤을 때 ‘웬 팔도(八道) 타령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네이밍 스폰서(naming sponsor)’인 라면회사 이름이라는 사실을, 다행히 누구에게 물어보기 전에 알았다. 작년까지 프로야구 이름은 ‘CJ마구마구 프로야구’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올해 올스타전에 처음 도입된 번트 대결이 ‘남자라면 번트왕’일 때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왜 ‘남자라면’을 ‘홈런왕’에 붙이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내년엔 ‘남자라면 포볼왕’이 생기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최근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이렇게 시장화되고 상업화되는 것을 경고한다. 시장(市場)은 이제 더 이상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가치이며 목적이다. 생활의 모든 것들이 사고 팔리며, ‘시장 가치(market value)’가 ‘덕목(virtue)’을 제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 책에서 읽은 ‘희한한 상품’들을 잘 추려서 자신의 칼럼으로 소개했다. 지난 2000년 러시아 로켓은 거대한 피자헛 로고를 붙인 채 우주로 날아갔다. 영국 소설가 페이 웰든은 2001년 보석회사 불가리로부터 돈을 받고 ‘차기작에서 불가리라는 이름을 최소 12번 언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책의 이름조차 ‘불가리 커넥션’이다). 보험회사 ‘뉴욕생명’은 10개 메이저리그 구단과 이런 계약을 맺었다. 주자가 홈에서 세이프될 때마다 TV 화면에 ‘뉴욕생명’ 로고가 뜨고, 아나운서는 (그것이 설령 끝내기 홈스틸이라 해도) 침착하게 말해야만 한다. “홈에서 세이프입니다. 안전하고 든든합니다(Safe and secure). 뉴욕생명.” 프리드먼의 이 칼럼 제목은 ‘이 칼럼에는 어떤 스폰서도 붙지 않았습니다.’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에서는 효과만 좋다면 간접광고·가상(假想)광고·중간광고·PPL(Product Placement·소품광고) 등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광고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는 광고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의 범주가 점점 더 넓어지다 못해 ‘장사꾼’의 영역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곳까지 확장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들이 TV 드라마에 돈과 책을 대주고 나서 재미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주인공은 대본에 따라 책을 읽고 카메라는 표지를 비춘다. 그토록 위기라던 인문학 책도 불티나게 팔린다. 벼랑 끝에 있던 인문학이 결국 떨어졌는데 그 바닥에 TV 시청률이란 매트리스가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든 책을 많이 읽으면 좋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책을 팔고 싶으냐?”고 되묻는 사람도 적지 않다. 출판사는 “기를 쓰고 책을 팔아야 좋은 책을 더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사적(私的)인 자리에서나 듣게 된다. 출판사는 드라마에 돈을 대고 ‘대박’을 기원한다. 한 건 크게 터지면 ‘주인공이 선택한 책’이라며 모르는 척 광고한다. 자기 꼬리를 삼켜 허기를 채우는 뱀을 보는 것 같다.

‘시장경제’가 아니라 ‘시장사회’가 돼버렸다는 샌델의 진단은 정확하다. 이제 팔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 연예인들의 ‘몸매’를 파는 보도자료가 부쩍 늘었다. 아무런 내용 없이 ‘아찔한 각선미’ ‘숨 막히는 뒤태’만 보도해달라는 이메일들이다. 오로지 몸매가 드러나게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이런 자료엔 ‘기사제목 후보’도 너덧 개씩 붙어있다. 자료가 뿌려지고 몇 분 뒤 어김없이 똑같은 제목의 ‘몸매 뉴스’가 인터넷 포털에 오른다. 기자란 직업이 똥밭에 떨어진 지 오래다.

샌델은 말했다. “시장은 세계에 번영을 가져온 소중한 수단이다. 하지만 대학교육과 의료혜택, 정치참여, 개인의 신체는 그것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그가 꼽은 것들은 좌판에 올라와서는 안 되는, 정말 최소한의 것들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1/2012080102941.html 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입력 : 2012.08.0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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