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9. 10:25ㆍ文化
간송미술관 明淸시대 회화展
'연구하는 미술관' 취지 맞게 이번엔 학술적 가치에 중점
추사 '세한도'에 영감 준 그림이 있었으니… 淸代 화가 장경의 '소림모옥' 추사에 영향 줬던 그림 눈길
'이벤트는 이제 그만'.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제83회 정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세운 목표다. 1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명청시대회화전(明淸時代繪畵展)'. 명말인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청대 회화 60여점이 소개된다.
◇ 대중적 인기 피로감에 따른 '숨 고르기'
'왜 갑자기 중국 회화 전시인가.' 최근 몇 년 새 매년 봄·가을 각각 2주씩만 열리는 간송미술관 정기전을 꾸준히 찾았던 관객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 최근 몇 년간 간송미술관이 '대중 친화적 전시'를 잇따라 개최했기 때문이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을 여자로 설정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었던 2008년 가을 전시 땐 혜원의 대표작 '미인도(美人圖)'를 내세워 2주간 7만여명 관객몰이를 했다. 지난해 가을 열린 '풍속인물화대전(風俗人物畵大展)'에도 혜원의 '미인도'와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덕에 5만7000명이 몰렸다.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50주기를 맞아 열렸던 올해 봄 전시에도 7만 명이 왔다.
간송미술관이 이번에 대중에게 낯선 명·청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대중적 인기에 따른 피로감' 때문. 2~3시간 줄 서 기다린 관객이 낡고 비좁은 전시장에서 작품에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가 되자 미술관 측도 난감해졌다. 이번 전시는 한 박자 쉬어가며 '숨 고르기'를 하겠다는 의도.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은 "최근 몇년간 이벤트성 전시를 많이 열어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신경을 쏟았다. 그러나 원래 우리 미술관의 취지는 '미술사 연구'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어렵더라도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적인 전시로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정희의‘세한도’(그림③)의 모델이 된 중국 그림들. 그림①은 간송미술관 전시에 나오는 청대 화가 장경의‘소림모옥’, 그림②는 장경이 모델로 삼은 원나라 화가 예찬의 1372년작‘용슬재도’(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헐벗은 나무와 외로이 떨어진 집이 있는 풍경이 서로 닮았다. 김정희는‘소림모옥’이 포함된 화첩을 평생 애지중지했다. / 간송미술관 제공·조선일보
◇ 秋史가 영향 받은 중국 화가들
이번 전시의 목표는 '화가 추사(秋史)'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글씨뿐 아니라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을 그린 빼어난 화가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명·청대 화가들은 대부분 중국 미술사에서 엄청난 비중의 화가도 아니고, 경매 시장에서 인기 있는 작가도 아니지만 추사 및 그 학파와 관련된 사연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추사는 1809년 청나라 연경(燕京)에 가 이름난 수장가이자 금석학자인 옹방강(翁方綱·1733~1818)에게 금석학과 실학을 배우며 안목을 높이고 귀국했다. 청나라 서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나온 청대 중기 화가 장경(張庚·1685~1760)의 '소림모옥(疏林茅屋)'은 추사 대표작 '세한도'를 이해하기 위해 꼭 참고해야만 하는 그림. 잎 떨어진 큰 고목, 초가 한 채가 외롭게 서 있는 쓸쓸한 풍경이 '세한도'를 떠올리게 한다. 추사는 이 그림이 실린 화첩 '장포산진적첩(張浦山眞蹟帖)'을 옹방강의 막내아들로부터 얻어, 평생 보물처럼 아끼며 끼고 살았다. 제주도 귀양지에서 예산 고향집으로 이 화첩을 보내며 겉면에 "이 화첩을 함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당부의 글을 남길 정도. 추사 연구자 박철상씨는 "추사 화론의 핵심은 장경이라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장경의 화첩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문인화풍 관념 산수를 연구할 수 있었다.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반가운 전시"라고 했다. '원말사대가'란 원말기 명성을 떨친 네 사람의 화가. 이들의 화풍은 명·청 시대 화가들에게 전범(典範)이 됐다. 장경의 '소림모옥'도 원말사대가 중 한 사람인 예찬(倪瓚·1301~1374)의 '용슬재도(容膝齋圖)'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시에는 이 밖에 추사의 난죽(蘭竹) 그림에 영향을 준 청대의 사군자(四君子) 대가 정섭(鄭燮·1693~ 1765)의 '현애총란(懸崖叢蘭)', 추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승 옹방강 초상화 등도 나왔다. 어려우나 의미 있는 전시. 단, 간송미술관에 '고사소요도(高士逍遙圖)' 등 추사 작품이 70여점 이상 소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 한 점도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관람료 없음. (02)762-044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7/2012100701677.html 곽아람 기자 aramu@chosun.com 입력 : 2012.10.07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