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壇法席

2012. 9. 28. 09:44佛敎

고우·도법 스님, 깨달음 놓고 '야단법석'

도법 스님(사진 왼쪽), 고우 스님. 때로는 웃음이 터지고, 때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문답은 허공에서 칼날처럼 매섭게 부딪쳤다. 26일 저녁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 주최로 열린 '야단법석(野壇法席)' 자리. 200여 불자가 두 스님의 대화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주제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두 스님은 원로의원 고우(古愚·75) 스님과 결사추진본부장 도법(道法·63)스님이다. 고우 스님은 근래 종단 안팎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승(禪僧)에 속한다. 도법 스님은 저잣거리를 선방 삼아 종단 개혁과 생명평화운동에 매진해왔다. 살아온 길이 달랐다. 도법은 "한국 불교에서 깨달음이 지나치게 신비화돼있으며, 사회와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고, 고우는 "중도(中道)·연기(緣起)의 불교 원리야말로 개인과 사회가 지혜를 얻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맞받았다. 질문은 스승을 넘어서려는 제자의 그것처럼 공격적이었지만, 대답은 물 흐르듯 예봉(銳鋒)을 받아내며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 깨달음만이 인생의 해답인가

도법 "깨달음만이 인생의 해답이라 믿었다. 20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참선에 골몰했지만 깨닫지 못해 절망했다. 피눈물이 났다. 스님께서는 깨달음의 문제로 좌절하신 적 없나?"

고우 "20~30대 때 신문에서 본 얘기를 하겠다. 장개석이 모택동을 피해 대만으로 갔던 때, 청년들이 많이 피폐해 있었다. 장개석은 첫 1년 동안 대만을 바꿔보려 애썼지만 잘 안 됐다. 2년차에는 이런저런 방법을 쓰며 고민과 모색을 했다. 3년차에는 '그냥 같이 살자'고 생각했다(웃음). 스님은 지금 2년차다. 저도 2년차다(웃음). 도통(道通)해보겠다고 이리저리 애쓰지만, 옛 큰스님들이 보시면 불호령을 내리실 거다."

◇ 한국 불교, 깨달음을 신비화했나

도법 "팔리어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중도(中道)'이고,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대화를 하면서 중도가 해탈의 진리임을 확신·이해한다. 여기엔 어떤 신비체험도 없었다. 한국 불교의 깨달음은 지나치게 신비화돼 있다."

고우 "실제로 경전 속에 나타난 깨달음은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이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 할 때 그 깨달음은 존재의 원리가 중도(中道)인 것을 깨닫는 것. '가는 길'보다 '목적지'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있다'는 전제를 깨야 한다. 짚으로 만든 물건은 새끼줄도 있고 짚신도 있고 가마니도 있지 않은가. 모양도 쓰임새도 다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 그걸 알아채는 게 견성(見性)이다. 교만함도 열등의식도 버리고, 내가 본래 위대한 존재이며 부처임을 알게 된다. 또 나 자신과 남을 학대하지 않게 된다. 갈등과 대립을 넘어 평화로 이르는 길이다."

◇ 참선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가

도법 "나무꾼이던 육조 혜능이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마음이 열렸듯, 깨달음의 내용이 연기와 중도라면 법문과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고우 "깨달음의 과정 역시 사람마다 다양하다. 고층 건물 꼭대기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박에 올라가는 길도 있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가는 길도 있다. 힘들면 쉬었다 갈 수도 있고. 다만, 내가 행복하려면 계단이 수천 수만개라도 올라야 한다. 이것이 어렵고 피곤하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보다 더한 괴로움 속에 고작 몇 십 년 생을 살다 마치는 거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계단을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지혜가 열리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 아닌가. 중도를 이해하고 깨달으려 수행하면서, 열심히 자기를 존중하며 행복하게 사시길 부탁드린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7/2012092703005.html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입력 : 2012.09.2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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