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眞際) 대선사

2012. 10. 29. 09:51佛敎

[최보식이 만난 사람] "宗正이라 밥을 더 먹지도, 我慢(아만)이 탱천하지도, 허세가 높아지지도 않아"

조계종 종정(宗正) 첫 단독인터뷰… 진제(眞際) 대선사

"여기 앉은 저는 '참나'입니까? - 하하하, '참나'와 거리가 멀지요

가짜와 인터뷰하고 있습니까? - 그렇지요"

"삶은 한바탕 꿈과 같습니까? - 산다 죽는다 집착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은? - 죽음은 환화(幻花)와 같은 것"

이날 바람이 불었으나, 팔공산 동화사 경내는 햇살이 따뜻했다.

염화실에 진제(眞際) 종정이 앉아있었다. 3년 반 전 그를 인터뷰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먼 길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소."하는 인사도 같았다. 올 초 그는 조계종 종정(宗正)에 취임했다.

― 종정이 되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고여시금여시(古如是今如是·옛날도 이 같고 지금도 이 같다)요."

― 옛날 성철 스님께서는 종정으로 계시면서 "그런 자리는 비워놓아도 괜찮은 자리다"고 했다는데요.

"귀찮은 일은 많지요. 허튼 명언(名言)에 떨어져 많이들 찾아오니까요."

― 종정 취임 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에 "아프다"며 일절 안 만나주셨는데, 그때 진짜 편찮으셨습니까?

"그냥 회피했습니다."

― '승려 도박 파문' 직후라 그랬던 겁니까?

"부끄러워 할 말이 없고, 만나본들 그 소리가 그 소리고 해서 회피했습니다."

― 술과 육식에 구애받지 않는 승려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병든 비구(比丘)에게는 더러 허락을 했습니다."

― 그렇게 하는 승려들을 보면 대부분 신체 건강합니다.

"건강하면 구태여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진에 몰두하는 수행자는 모든 것에 초연해야 하거든요.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에 떨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 인도에서 온 계율이 요즘 승려 생활에는 안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계율이 수행의 근본입니다. 그래야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게 됩니다. 많은 생(生)의 습기(習氣)가 전신을 감고 있기에, 계율이 아니면 흐트러지고 물듭니다."

― 종정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새벽 2시 반쯤 일어납니다. 3시가 되면 법당에 올라가 예불을 모시고, 나와서는 두세 시간 참선을 하지요. 아침 식사를 하고, 또 7시부터 11시까지 참선 정진을 합니다. 그런 생활을 시종일관 일여(一如)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생활이 흐트러지지 않고 정진 분위기가 조성이 됩니다. "

― 종정께서는 연세도 있고 굳이 그렇게까지야….

"하하하. 대중 생활은 일거일동 같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후학이 따르지, '에헴' 하고 앉아있어서 되는 게 아니오."

― 이달 초 미국 뉴욕에 있었던 '유엔 세계종교지도자 모임'에서 법문을 하셨다지요?

"작년 9월부터 이번까지 세 번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세계 평화와 건강한 생태 환경을 위한 법문을 해달라고 했어요. 전쟁도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고 평화도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인간과 자연이 또한 불이(不二)하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냐?'하는 참 의심을 계속 하면 답을 얻습니다."

―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어떻게 법문을 했습니까?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지금 이 몸뚱이를 '나'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몸뚱이는 백 년 이내에 썩어 없어져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니 진정한 '참나'라고 할 수 없어요. 그러니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하며 간절히 의심하라고 한 것이지요."

― 종정께서는 오로지 '참나'만 말씀하시는군요. 3년 반 전 인터뷰 때도 똑같이 '참나'를 말씀하셨지요. 종교 담당 기자들은 "종정 스님은 늘 같은 말씀이시니 안 만나도 원고지 넉 장은 그냥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아직 '참나'의 진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조계종 종정(宗正) 첫 단독인터뷰‐ 진제(眞際) 대선사

― 우리도 모르는 법문을 미국 사람들은 잘 알아듣습니까?

"한 여성 참석자가 '제가 참나(true self)를 알았습니다'라고 하기에 답을 한번 해보라고 하니까, 내게 다가와 손을 꼭 붙잡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건 아니다. 바른 진리의 답을 해도 삼십 방망이를 맞고, 답을 못 해도 삼십 방망이를 맞는다. 일러 보라"고 하니, '그러면 모르겠습니다.'고 했거든. 그 사람들이 한국 참선에 매료됐어요. 수행은 지금의 '나'에 대해 진짜 의심을 시작해 '참나'를 찾는 것이지요."

― 여기 앉아 있는 저는 '참나'입니까, 아닙니까?

"하하하, '참나'와는 거리가 멀지요."

― 종정께서는 가짜 최모(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 지금 내가 내가 아니라면,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하는 화두(話頭)와 씨름하며, 하루에 천(千) 의심 만(萬) 의심을 하다 보면, 한결같이 화두 한 생각만으로 물과 같이 흘러갑니다. 시간 가는 줄도, 밤낮이 지나가는 줄도 모릅니다. 이렇게 몇 년이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흐르다가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납니다. 그러면 억만년 전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 가운데 진리가 다 있습니다."

― 몸을 받고 태어나서 죽고 썩는 것은 생물의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우주가 생기기 전 '참나'를 알면 거기에는 그런 변천이 없습니다. 허공은 억만년이 되도록 일여(一如)하거든. 그런 독특한 살림살이가 있기 때문에 만(萬)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것이지요."

― 종정께서 본 '참나'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는 굴리던 굵은 염주를 들어보였다.

― 염주 모습이었습니까?

"염주를 보면 안 되지. 하하하."

― 언어의 유희 같군요.

"그건 진리의 세계를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우리는 물질의 풍요에만 진미가 있는 줄 알지, 정신세계를 등지고 있습니다."

― '참나'를 얻으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세계가 나와 더불어 한 집입니다. 나와 더불어 한 몸뚱이인데, 내가 더 가질 필요가 없단 말이거든. 생명이 있는 유정(有情)한 것이나 산과 돌 같은 무정(無情)한 것도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이 항시 평온하고, 시기와 질투, 허세가 다 없어집니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다툼과 지배도 있을 수 없습니다. "

― 혹자는 '깨달은 부처도 외로웠고 슬픔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건 무지한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지요."

― 깨달은 입장에서는 지금 사는 것은 다 한바탕 꿈과 비슷한 겁니까?

"산다 죽는다 하는 집착이 없습니다."

―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하루도 더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 아니겠습니까?

"죽음은 '환화(幻花)'입니다. 그건 실제 있는 게 아니거든. 도를 알면 한결같지요. 초연하게 하루 일과를 보내지요."

 

진제 종정은“세계가 나와 더불어 한 몸임을 깨달으면 더 갖겠다고 다툴 일이 없다”고 말했다. / 남강호 기자

― 초연해서 하루 일과를 보내면 삶의 재미가 있겠습니까? 오늘과 내일이 좀 달라야 사는 묘미가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건 중생심에서 하는 말씀이고. 진리를 깨닫고 보면 그 이상 더 낙이 없지요. 그 가운데 편안히 여여하게 지내는 것이지요."

― 저는 가끔 사람들을 관찰하면 불쌍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종정께서는 어떠신지요?

"다 호인(好人)으로 보입니다. 다 개개 장부(丈夫)고, 개개 부처입니다."

― 사람들이 다 좋게만 보인다는 뜻이지요?

"예, 그래요."

― 중생에 대한 슬픔에서 자비심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호인으로 보는 데도 큰 뜻이 있습니다."

― 이제 인생 상담을 하겠습니다.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취(取)함이 있는 이는 그렇게 느끼지요. 취하고 버림이 없으면 그게 없습니다. 진리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항시 변함없이 일여하기 때문에 진리라 하는 것이지요."

― 세속적 욕망은 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부귀공명도 지혜가 밝은 사람이 누리지, 어리석은 사람은 얻지 못합니다. 옛말에 '사람들이 빈한하게 사는 것은 지혜가 짧아 그렇다'고 그랬어요. 밝은 지혜를 좇아야 부귀도 자연 오는 겁니다."

― 현실에서 그걸 누리는 사람들은 지혜가 밝은 현자(賢者)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전생에는 이미 복을 닦은 사람들이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그 높은 자리에 앉을 수가 없지요. 이 세상은 지은 대로 받고 닦은 대로 거두지, 우연히 오는 게 없습니다."

― 가령 협잡을 잘하고, 아래를 짓밟고, 불의한 방법으로 출세한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요?

"그렇게 올라간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누릴 뿐 오래 보전을 못 합니다. 대중의 신망을 못 받기 때문이지요."

― 부와 자리, 권세가 삶의 가장 큰 가치일까요?

"세상에서는 그것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오. 잘살려고 돈 많이 가지려 하고 허세 부리려 하고, 그게 중생계입니다. 출세간에서 보면 그건 콧구멍 속의 때지, 콧구멍 속의 먼지지."

― 그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대중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인정하는 가치가 바른 가치입니다. 돈을 벌어도 대중을 위한 돈을 벌어야지요. 자기의 가족만 사치를 누릴 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보살피면서 돈을 벌면 아주 돈을 잘 벌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심을 하라는 그 말이지요."

―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지난번 박근혜 후보가 한 번 내려왔지요. 왜 세속 정치와 무관한 종정을 찾아오는 걸까요?

"그이뿐만 아니라 야당 후보들도 많이 지나갔습니다."

― 후보들이 종정께 잘 보이면 불교도 표가 그쪽으로 가고 그럽니까?

"그건 각자의 소견에 맡기지요. 하하하. 대선에 승리를 하려면 '나'라는 허상을 다 놓아야 한다. 모든 국민을 부모 형제같이 아끼고 사랑하고, 그러한 용심으로 다 안고 가야 한다는 말만 해주지요."

― 어떤 종정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종정이라고 밥을 더 먹는 것도, 아만(我慢)이 탱천하는 것도, '나'라는 허세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전이나 후나 항시 일여하지요."

― 제가 쭉 질문했지만 눈앞이 환해지는 답을 얻었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참선을 잘해서 한번 깨달아보세요. 단맛과 신맛은 씹어 맛을 보지 않으면 모르듯이 이것도 증득해야 그 세계를 이해합니다. 언어로는 항시 태산이 가려서 안 통하지요. 참나를 찾는 수행을 돌아가실 때까지 열심히 하세요."

배석한 동화사 선원장 스님이 "서울로 가지 마시고 금당 선방(禪房)으로 가시죠"라고 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정확한 질문을 못 한 게 아닌지, 정말 해야 할 질문을 남겨놓은 것이 아닌지, 자신에 대해 많은 의심을 하면서 말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8/2012102801704.html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 2012.10.29 03:04 | 수정 : 2012.10.2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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