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2. 06:47ㆍ試驗
사법시험은 로스쿨 도입 이전에 유일한 법조인 양성·배출 시험이었다. 법조계는 1947년부터 3년간 치러진 조선변호사시험을 사시 시초로 꼽는다. 이후 1950년 고등고시(고시) 사법과로 명칭이 바뀐 뒤 1963년까지 총 16회에 걸쳐 시험이 치러졌다.
1963년 5월 사법시험령이 공포되면서 현재 이름인 사법시험으로 변경됐고 1969년까지는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하는 절대점수제로 시행됐다.
이후 1970년 5월 법조인력 확대를 위해 사법시험령을 전면 개정, 절대점수제가 아닌 정원제를 도입했다. 2002년 이전까지 당시 행정자치부가 주관했지만, 2001년 3월 사법시험법이 공포·시행되면서 2002년부터 법무부가 맡아 왔다.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신분상승 사다리’ 사법시험
노무현 정부 때 폐지 추진… 문재인 정부서 완료
사법시험의 연원은 1947년 시작된 ‘조선변호사 시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험은 1950년부터 ‘고등고시 사법과’로 이름을 바꿨다. 사법시험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 대통령령으로 ‘사법시험령’이 공포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합격자 정원이 없는 상태에서 절대평가 방식으로 선발된 합격자 전원이 판사, 검사로 임용됐다.
그러나 합격자가 10명 미만에 불과해 ‘바늘구멍’이라는 비판이 일자 1970년부터 합격 정원제가 도입돼 매년 60∼80명을 뽑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제24회 시험 때부터 합격자 수를 300명으로 늘렸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논의가 시작된 뒤 정부는 2001년 제43회 시험부터 합격자를 1000명가량으로 증원했다. 지난해까지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모두 2만765명이다.
그동안 사법시험에 대해 법전을 달달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으로 법조인의 사고를 획일화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합격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법연수원의 기수 문화가 전관예우 등 법조 비리의 근원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우수한 인력을 고시 낭인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법시험을 대체하는 로스쿨 도입 논의는 법조계의 강한 반발로 진전이 더뎠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전국 40개 대학이 로스쿨 시설에 약 4000억 원을 투자한 뒤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열었다. 2015년 법무부는 사법시험 폐지를 2017년에서 2021년까지 유예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로스쿨 등의 반발로 취소됐다. 결국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사법시험 폐지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완료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마지막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시작된 21일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누구든 실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사법시험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622/85000867/1 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입력 2017-06-22 03:00수정 2017-06-22 03:26
71만 명 중 2만 명만 통과한… '苦試 막차'마저 떠났다
[수많은 이의 '개천용 꿈' 뒤로하고… 司試, 역사 속으로]
- 낙방 부담 더 컸던 마지막 고사장
"결혼 미뤄가며 도전했는데…" "집에 로스쿨까지 부탁하기엔…"
- 67년 동안 시험 75번
첫 고시 16명·2001년 1000명 합격… 浪人 늘린다는 부정적 평가도
21일 오전 8시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서울 연세대 백양관 앞. 두꺼운 참고서를 팔에 낀 김정훈(51·가명)씨가 시험장에 들어섰다. 12년째 사시(司試)를 보고 있는 김씨에게 이번 시험은 '마지막 도전'이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시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59회 사시는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186명이 응시한 2차 시험과 오는 11월 마지막 3차 면접시험 관문을 넘은 50여 명이 최종 합격자로 결정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김씨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젊을 때는 집안 책임지느라 바빴고, 서른아홉부터 12년간은 사시 공부하느라 결혼을 못 했다."며 "결혼은 사시 합격의 꿈을 이룬 뒤 하려고 미뤘다"고 했다. 김씨는 동생 가족과 함께 살면서 서울 신림동 독서실에서 하루 13~14시간씩 법률 서적과 씨름했다고 한다. 그는 "고시 낭인(浪人)이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도 꼭 변호사가 돼서 사건도 파헤치고 승소도 하고 싶었는데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라니 섭섭하다."고 했다.
이날 시험장 앞엔 고시생 자녀를 둔 60·70대 부모들의 합격 기원 발길도 이어졌다. 전남 순천시에서 올라온 노주연(64)씨 부부는 시험장 건물로 향하는 아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노씨의 아들은 8년간 사시를 쳤다고 한다. 노씨는 "사시가 이제 없어진다니 착잡하다. 우리 같은 서민이 자식 대학 4년 뒷바라지하고 로스쿨을 또 보내는 건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응시생들은 점심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이모(27)씨는 "더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오늘로 마지막"이라며 "로스쿨 학비 부담을 부모님에게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꼭 붙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서울 연세대 백양관으로 응시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2차 시험은 24일까지 나흘간 실시된다. /고운호 기자
이날 돌아본 신림동 고시촌(考試村)의 모습도 을씨년스러웠다. 한때는 고시생 2만 명이 북적거렸다는 고시촌의 규모는 확 쪼그라들었다. 하루 수백 명이 들르던 복사(複寫) 전문점 손님은 하루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고시 관련 서적을 팔며 고시생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 역할도 했던 전문 서점들도 폐업하거나 공무원 시험(공시) 서적 판매로 전환한 지 오래다. 10년간 사시 공부를 하다 작년 1차 시험에 낙방한 뒤 취업한 전모(36)씨는 "작년 9월만 해도 사시가 존치될 거란 희망을 품고 공부했다."며 "이제는 다들 공시(公試) 준비 등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주민 이모(66)씨는 "사시 합격자가 1000명씩 되던 때엔 고시생들로 거리가 왁자지껄했다."며 "꿈을 품고 지방에서 올라와 사시에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사법고시'는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가 출발이다. 고등고시 체제로 16번 치렀고 1963년부터는 지금의 사법시험으로 전환됐다. 사법시험만 따지면 70만8276명이 문을 두드렸고, 그 가운데 2.9%인 2만718명이 문턱을 넘어 법조인의 꿈을 이뤘다.
누구에겐 성공, 누구에겐 좌절… 司試, 67년 만에 마지막 시험 - 1962년에 열린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 풍경. 전후(戰後) 국가 재건의 시기였던 당시의 고학생들에겐 사법고시 합격이 성공의 사다리이자 ‘인생역전’ 기회였다. 사법고시라는 '등용문(登龍門)'을 통과한 많은 인사가 법조계뿐 아니라 정·관계 등 다양한 길로 진출해 사회 지도층 역할을 했다. 21일엔 1950년 시작된 사법고시의 마지막 시험이 치러졌다. 올해 시험엔 50여 명이 최종 합격한다. 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시의‘마지막 증인’이 된다. /국가기록원
초창기 합격 인원은 적었다. 고등고시 사법과 1회는 16명, 사시 1회는 41명이 합격했다. 합격 인원을 정해둔 시험이 아니라 평균 60점을 넘고 과락(科落)이 없어야 합격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합격 인원은 1981년 23회 때 300명을 넘어섰고 2001년부터 '1000명 시대'를 맞았다가 2007년 로스쿨 도입과 사시 점진적 폐지 결정으로 순차적으로 줄어들었다. 1952년 고(故) 이태영 변호사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합격할 때만 해도 드물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10년부터 4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사시는 어렵게 공부한 고학생들에겐 '성공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른바 '고시 낭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원의 편중 현상 등 부작용도 작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로스쿨 도입이 결정된 이유였다. 2009년 전국 25군데 로스쿨(3년제)이 문을 열면서 올해 6번째를 맞은 변호사 시험이 앞으로 사시를 대체하게 된다. 하지만 법률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값비싼 로스쿨 학비로 인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사시를 폐지하지 말고 로스쿨과 병행(竝行)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2/2017062200293.html 김민정 기자, 신수지 기자, 김지연 기자 입력 : 2017.06.22 03:04
마흔둘 막둥이의 마지막 사법시험
“우리야 시험이라도 봤지만, 기회 아예 사라져 안타까워”
시험장서 눈 못 떼고… 쪼그려 앉은 칠순의 어머니가 마흔두 살 막내아들이 ‘마지막 사법시험’을 보고 있는 시험장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는 21일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연세대 백양관 앞에서 시험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꼬박 자리를 지켰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머니는 20년간 도시락을 쌌다. 10년은 아들의 학창시절을 위해, 다음 10년은 아들의 사법시험을 위해서다. 21일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도시락’을 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열렸다. 전날 어머니와 아들은 강원 강릉시의 집을 떠났다.
연세대 근처 모텔에서 하루를 지내고 아들을 먼저 시험장에 보낸 뒤 어머니는 시험장 앞을 찾았다. 한 손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이 든 가방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사법시험일마다 늘 하던 일이다. 점심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칠순의 어머니는 마흔두 살 막내아들이 혼자 밥을 먹게 놔둘 수 없었다. 이어 차가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굽혔다 폈다. 식당일을 40년이나 하면서 무릎이 상한 탓이다. 애가 타는 듯 계속 구형 휴대전화를 열고 닫으며 시간을 확인하던 어머니는 시험장을 바라보며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똑똑했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재수 끝에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사시 패스’를 목표로 삼은 아들은 군대를 다녀와 오로지 책만 들여다봤다. 20대 후반에 사법시험 1차 시험에 붙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서울에서 공부하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서 지낼 생활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공부만 할 순 없어 어머니 식당일과 밭일을 도왔다.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합격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1차 시험에 3차례나 붙었지만 최종 합격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름 탓인가 싶어 개명(改名)까지 했다. 가정형편 탓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뒷바라지 능력이 안 돼 로스쿨을 못 보내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들의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영영 사라진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자주 밤잠을 설쳤다.
오전 시험이 끝났다. 아들이 나오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김밥을 입에 넣는 아들에게 물을 건네며 “이렇게 밥을 먹여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제 괜찮다.”며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어머니는 천천히 숙소로 발걸음을 뗐다.
이날 시험장 주변에 모인 다른 응시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초조해 보였다. 정모씨(64)는 “서른 살 딸을 뒷바라지하려고 아내와 함께 강원 원주시에서 올라왔다.”며 “딸이 집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해서 근처 숙소에서 밥까지 해 먹였다.”고 말했다.
장수생이나 초심자나 마지막 시험이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한 응시자는 “나야 이렇게 시험이라도 봤지만 후배들은 아예 기회조차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오래 공부한 탓인지 솔직히 시험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2차 시험은 나흘에 걸쳐 치러진다. 10월 12일 응시자 186명 중에서 약 50명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들은 3차 시험인 마지막 면접만 무사히 통과하면 마지막 ‘사시 패스’의 주인공이 된다. http://news.donga.com/3/all/20170622/85000825/1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입력 2017-06-22 03:00수정 2017-06-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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