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끼리 의사끼리, '그들만의 웨딩'… 고소득 고학력 '동질혼' 확산

2017. 6. 24. 16:04一般

고소득 고학력 '동질혼' 확산

의사끼리 변호사끼리 ‘그들만의 웨딩’

#1 불확실한 ‘낭만적 사랑’보다 같은 직업, 계층 배우자 선택

남녀 평생고용 관행 무너지고 여성 경제활동 확대도 ‘한 몫’

#2 조건 비슷하고 이해도 잘 돼 동질혼, 결혼생활 만족도 높아

남성 77% “맞벌이 필수” 주장 “가사에 전념”은 6.6% 불과

직업, 소득, 학력이 비슷한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동질혼'이 늘고 있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한눈에 반하는 그런 낭만적 사랑은 이제 멸종하는 것일까. 일러스트 신동준 기자

#1. 개인병원 원장인 최상민(가명·48)씨는 아내도 의사다. 같은 의과대학 후배인 아내와 본과 2학년 때 연애를 시작해 남편은 성형외과, 아내는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며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다.

“사업가로 불황 때 어려움을 겪었던 아버지께서 평소 ‘결혼할 때는 여자도 능력이 있는 게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 영향인지 같은 의사면 평생 함께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평생 함께하기 좋다’는 추상적 표현 속에 담긴 구체적 세목들은 다음과 같다. “의사 부부면 애들도 머리는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어디 가서 기죽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부부가 함께 억대로 벌면 먹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요.”

최씨는 많이 벌 때는 연 10억원, 덜 벌 때는 3억 원 정도를 번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며 풀타임으로 일하기 어려워 다른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며 연 1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성격 좋은 걸로 유명했던 아내는 무엇 때문에 힘든지 긴 말 없이도 이해해 주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최상의 격려를 해준다. 결혼생활의 만족도가 당연히 높다. “다른 의사 친구들을 보면 배우자가 병원 일을 잘 이해 못 하더라고요. 우리는 서로 자문하고 격려해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죠.”

#2. 올 연말 결혼 예정인 변호사 김다빈(가명·34)씨의 예비신랑은 서울 서초동 소재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40)다. 김씨는 5년 전 같은 법대 친구 소개로 이미 변호사였던 남자친구를 만났다. “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남자친구가 실무를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먼저 시험을 치러본 입장에서 조언을 많이 해줬죠. 변호사가 된 뒤로도 사건 진행에 관한 전반적인 궁금증은 물론이고, 변호사들끼리도 잘 알려주지 않는 노하우를 많이 알려줘 의지가 돼요. 의뢰인들에게서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 응대하는 요령 같은 것도 배웠고요.”

과거 연애상대가 대체로 같이 공부하다가 사귄 경우가 많았다는 김씨는 “결혼 상대의 최우선 기준까지는 아니지만, 직업이 같은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했다”고 말했다. “주변 변호사 중 30% 정도는 변호사나 판ㆍ검사와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 같아요. 다른 영역에 있어서 위로나 의지가 되지 않는 분들과 힘겹게 만나며 연애할 바에는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다는 생각도 많고요.”

고학력·고소득일수록 동질혼 대세

당신이 영화나 드라마의 작가라고 상상해보자. 주인공인 남자 변호사는 같은 사무실의 여비서와 사랑에 빠지고, 의사라면 가난한 불치병 환자와 결혼하는 게 일반적 서사 패턴이다. ‘실장님’은 여전히 말단 여직원의 천생배필이다. 하지만, 현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변호사는 변호사와 사랑에 빠지고, 의사는 의사와 결혼하며, 실장님도 다른 회사 실장님과 로맨스를 맺는다. ‘억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억만장자가 되라’가 동질혼의 세계적 추세를 분석한 외신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학력,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homogamy)이 혼인 문화의 대세가 되고 있으며, 고소득ㆍ고학력일수록 이런 추세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처음 작성, 발표한 ‘2015년 기준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2010년 11월1일부터 2015년 10월31일까지 혼인 신고한 초혼 부부 117만9,006쌍 중 남편과 아내 모두 대졸인 부부가 53.9%로 가장 많았다. 이 비중은 매년 조금씩 높아져 2011년 53.1%였던 것이 2015년에는 54.4%로 증가했다.<표 참조>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결합이라면 대졸 부부가 늘어난 것도 전반적인 대졸 인구 증가의 결과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남편과 아내 모두 고졸인 부부다. 전체 신혼부부의 11.3%를 차지했다. 대졸자는 대졸자끼리, 고졸자는 고졸자끼리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유형은 네 번째에야 등장한다.

이 같은 동질혼 추세는 남성 가장을 받쳐주던 평생고용 관행이 무너져 내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늘어난, 노동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과거에는 여성이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남성과 결혼하는 앙혼(仰婚ㆍ상향혼)이 일반적이었다. 가부장제적 문화가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남성과 결혼하는 강혼(降婚ㆍ하향혼)은 드물었다. 이런 문화에서 2000년대 급증한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은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하고 ‘골드 미스 세대’를 양산했다. 한편으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외벌이만으로는 생계유지나 부의 축적이 어려운 데다 정년 보장마저 불확실한 환경이 되면서, 남성들이 여성의 직업과 소득을 중요한 혼인 조건으로 꼽는 방향으로 급격히 인식이 변화했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 등이 전국 미혼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배우자의 조건에 대해 남성의 76.8%가 ‘맞벌이 필수’를 주장했고 ‘본인 의사에 맡긴다.’는 16.6%, ‘가사에 전념’은 6.6%에 불과했다.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이 등장하고, 남성들이 이들을 앙망(仰望)하면서 고소득층의 동질혼이 대세로 떠올랐고, 결과적으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학력과 소득이 높은 층에서 혼인율이 높아졌다. 통계청의 2016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ㆍ30대 여성 임금노동자 중 박사학위 소지자(76.1%)와 중졸 이하(77.6%)가 기혼율이 가장 높고, 최고 소득인 10분위(76.7%)에서 가장 기혼율이 높다. <표 참조>


“결혼조건 따질수록 합리적 선택”

평균 혼인연령이 높아진 것도 동질혼 추세에 영향을 끼쳤다. 고교시절 첫사랑과 결혼하는 낭만적 서사의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사회구조로 바뀌었다. 서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결혼이라는 모험에 뛰어드는 대신 이미 구축한 조건들이 짝을 맺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성의 화폐자본과 여성의 매력자본이 등가교환 되던 과거의 가치체계는 급속도로 붕괴 중이다. 이제는 화폐자본과 화폐자본의 성별 구분 없는 합산이 동질혼을 통해 새로운 짝짓기의 룰로 자리 잡고 있다.

“의사들은 20대에 레지던트, 전문의 따려고 정신없는 시간을 거치잖아요. 그러고 나면 서른이 훌쩍 넘어 있는데, 그때 낭만을 가지고 누굴 만난다는 게 힘든 면이 있어요.” 의사 최상민씨는 “낭만적 연애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에 90% 정도는 동의한다”며 “젊은 후배들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사들도 경쟁이 치열해지니까요. 젊은 의사들은 모두 직업 있는 배우자들을 원하거든요.”

변호사 김다빈씨는 “사람 하나 보고 좋아서 결혼했다가 경제적 이유나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며 “그런 간접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확률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을 선택들은 애초에 배제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남들 보기에 제 연애가 낭만적 연애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나머지 다른 요인들을 모두 뛰어넘는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제가 이혼 사건을 많이 다루는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헤어지는 이유는 모두 현실적인 것들이더라고요.”

동질혼, 결혼의 질은 더 높아

동질혼은 결혼의 질이 매우 높은 최상의 결혼 형태 중 하나다. 양성평등도 보다 잘 구현된다. 통계청의 2015년 교육수준별 이혼율 자료에 따르면, 학력이 높을수록 이혼비율도 급격히 낮아진다. 고졸 남성의 이혼율은 대졸 이상 남성의 1.5배였으며, 여성은 고졸이 대졸 이상보다 1.7배 더 많이 이혼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빠른 감정이입은 동질혼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5년차 변호사 이하준(가명ㆍ35)씨는 로스쿨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와 결혼해 22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부부 변호사다. 살면서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특별히 해본 적은 없었지만, 함께 공부하고 진로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된 케이스다. “대형로펌이다 보니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직업이 달랐다면 설명이나 양해를 구할 일이 많았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어 좋죠.”

변호사 김다빈씨도 “리걸 마인드를 가진 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소통이 잘 안 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법률용어로 농담도 많이 하고 하는데, 남들 눈에는 얼마나 비호감이겠어요. 사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잖아요. 거기다 결혼 후 아이 낳고 키우려면 가사노동, 육아노동의 부담도 상당히 큰데, 이 영역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동질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함께 헤쳐나갈 용기를 갖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동질혼이 부여하는 이 유대감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아슬아슬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열쇠 3개’를 들고 오는 부잣집 아들ㆍ딸들의 이점마저 능가한다. 의사 최상민씨는 “한 동기 여학생이 소위 2세 경영인과 결혼했는데 전문의 딴 후 병원에 매여 일만 하는 걸 남편이 도저히 이해를 안 하려 들어 결국 이혼했다.”며 “의사 배우자들이 ‘고생했어’ ‘힘들지’하며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과 완전히 딴판”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돈만 많은 경우에는 의사 신랑을 돈으로 산 듯 행동하다 싸우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이혼한 사람들이 주위에 제법 많아요. 부잣집 사위가 되는 것보다 같은 직업인 배우자 만나 맞벌이 하며 사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여자 동기들의 경우 50% 이상이 같은 의사와 결혼했다.”며 “여자 동기 비율이 전체 정원의 30% 정도밖에 안 돼서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유연애시장에서 개인들의 자유로운 짝짓기를 특정 방향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 당사자들로서는 양질의 결혼생활에 이르게 하는 합리적 선택이다. 부의 재분배는 조세제도와 사회복지를 통해 달성해야 할 과제이지, 아니꼽다는 이유로 ‘동질혼 결사반대 시위’를 벌일 수도 없다.

“우리 둘째가 과학고를 다니거든요. 참 똑똑한 아이죠. 생화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의사 자격증까지 가지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제가 조언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의사 최상민씨는 결혼 조건으로 “첫째 똑똑한 머리, 둘째 경제력, 셋째 외모”를 꼽았다. 부부가 똑똑한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운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정을 꾸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를 실현한 현재의 부부생활에 그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공교육도, 복지제도도, 사회안전망도 믿을 수 없는 황무지 같은 조국에 가정이라는 튼튼하고 화려한 성채를 세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http://www.hankookilbo.com/v/7aa31ed6624b426c91deb9e1c08278cc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등록 : 2017.06.24 04:40 수정 : 2017.06.24 04:40

동질혼 이유? “ 의사 아내 만나 맞벌이” 계산적 속내도

#1 전문직 중 의사ㆍ약사 동질혼 남자 28% 여자 44%로 가장 많아

대졸부부ㆍ고졸부부 유형 1ㆍ2위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 3위 ‘눈길’

#2 사랑만으로 살아남기 어렵고 사랑 없는 결혼도 견딜 수 없어 끼리끼리 동질혼 ‘합리적 선택’

학력,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은 고학력, 고소득 직종일수록 뚜렷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제가 서울 강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해도 주거 환경이 바뀌는 건 원치 않거든요. 부모님 모두 교육자로 퇴직하셨는데, 연금과 재테크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계세요. 제 아내 될 사람도 어머니처럼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소신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페이닥터로 일하는 의사 임준성(가명ㆍ37)씨는 맞벌이 하며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여의사를 배우자로 원한다. 일이 정신없이 몰릴 때마다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의사 아내를 만나 개원하고 싶다는 욕심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한다. “부부가 함께 벌면서 부모님처럼 도란도란 사는 모습을 꿈꿔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같은 직업인 배우자를 만나는 게 좋겠죠.”

의사ㆍ약사가 전문직 중 동질혼 가장 선호

학력과 직업, 소득, 재산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은 고학력ㆍ고소득 직종일수록 또렷한 양상을 보인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자유로운 연애 상대를 만나 관계를 지속하기엔 학업과 직무에 얽매여 있는 시간이 너무 긴 탓도 있다. 비단 의사, 변호사만이 아니다. 교수는 교수와 결혼하고, 기자도 기자와 결혼하며, 공무원도 공무원과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2014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결혼이 성사된 회원 3,000명(1,500쌍)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동질혼 부부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종은 일반사무직이었다. 남성은 32.1%, 여성은 44.1%가 같은 사무직과 결혼해 성혼 커플 중 가장 많은 총 188쌍의 사무직 부부가 배출됐다. 일반사무직의 범위가 넓고, 회원 수가 많은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뚜렷한 동질혼 트렌드를 보여준다.

전문직 중에서 동질혼 경향이 가장 강한 직종은 의사 및 약사들이었다. 의사나 약사는 남녀 모두 의사나 약사와 가장 많이 결혼했다. 남성은 27.9%가, 여성은 40.4%가 같은 직종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비율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성별간 차이가 난다. 의사나 약사인 남성은 2006년 23.6%에서 2016년 27.9%로 동질혼 비율이 증가한 반면 여성 의사ㆍ약사는 2006년 52.7%에서 2016년 40.4%로 그 비율이 감소했다. 듀오 관계자는 “요즘 고학력 전문직 여성 중에는 돈은 내가 충분히 버니 예술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외모를 중시한다는 분들도 있죠. 동질혼이 강력한 추세이긴 하지만, 여성들의 선호는 다양해지고 있어요. 고소득 여성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라고 말했다.


남성, 동질혼에 눈뜨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처음 작성한 ‘2015 신혼부부 통계’는 대졸자는 대졸자끼리, 고졸자는 고졸자끼리 결혼하는 동질혼 경향을 보여준다. 대졸자가 많아진 만큼 대졸 부부가 53.9%(2011~2015년 평균)로 가장 많았고, 고졸 부부가 11.3%로 그 뒤를 이었다. 특이한 것은 세 번째로 많았던 부부 유형인데,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가 더 많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가 전체 신혼부부의 10.3%로 3순위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11년 9.8에서 2015년 10.6%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비중은 8.5%에 불과했다.

대졸 아내와 고졸 남편의 부부 유형이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보다 더 많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학력이라는 결혼 조건의 영향을 덜 받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인통계를 담당하는 통계청 인구동향과 오경조 주무관은 “수치 차이가 큰 것은 아니지만 통상 아내보다 남편의 학력이 더 높다는 사회적 통념이 깨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집을 소유한 15년차 회사원 김모(41ㆍ여)씨는 “나이 들수록 결혼하는 데 중요한 건 조건보다 성격이나 취미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고졸이어도 마음만 맞으면 결혼하는 데 아무 관계없다.”고 말했다. “내가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그런 조건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요. 남들 시선 의식하는 거지. 전 외롭고 심심할 때 같이 취미 즐기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파트너십을 원하지, 남들이 보는 화려한 결혼 같은 거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요.”

전통적으로 한국 남성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 여겼던 현모양처형 외모나 성격, 가치관 등은 ‘맞벌이 필수’에 밀려난 지 오래다. 동종업계 종사자와 결혼한 회사원 정모(42)씨는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하겠다는 아내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맞벌이를 생각했고, 제가 생각하는 미래의 ‘스위트 홈’은 언제나 일하는 아내와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었어요. 아내는 퇴사를 막는 저를 원망했지만, 저한테만 부양의 짐을 지우는 아내가 오히려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더라고요.”

학력보다 재산, 박사보다 빌딩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가 그 반대 경우보다 더 많다는 것을, 여성이 더 조건 안 따지는 결혼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학력 외에도 다양한 다른 조건은 많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감동적인 바른 품성, 쉴 새 없이 웃게 하는 탁월한 유머감각이 학력 조건을 상쇄할 수도 있다. 연예인을 방불케 하는 빼어난 외모나 시댁이 건물주인 막강한 재력일 수도 있다. 특히 소득과 재산이 학력의 차이를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양모(38ㆍ여)씨는 건축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과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학력은 전문대 중퇴로 자신보다 낮았지만, 사람이 착하고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양씨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결혼을 가장 잘한 친구로 꼽히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이미 작은 건물 하나가 부부 명의로 돼 있어 임대소득까지 올리고 있다. “박사와 결혼한 친구, 대기업 직원과 결혼한 친구, 다양하죠. 그런데 사는 건 다들 팍팍한 것 같더라고요.”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에만 집중하고 있는 양씨는 본인의 선택에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시대다. 높아진 취업 연령과 주거비용 등으로 결혼이라는 것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역대 최저치의 혼인율은 웨딩산업의 쇠퇴를 불러왔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중이다. 결혼 자체는 덜 하지만,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정확한 조건과 정보에 기반해 하겠다는 것이다. 듀오의 현재 회원 수는 3만3,000여명으로 10년 전 1만6,800명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

“회원들이 만나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평균 연애기간이 10.8개월이에요. 각자의 선호 조건이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건만 맞아서는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요.” 듀오 관계자는 “조건이 맞는 상대를 만난 후 연애감정이 생겨나야 결혼이 가능한 것”이라며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질혼의 강력한 부상은 미혼 남녀들이 격차연애에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의이기도 하다. 이 정글 같은 대한민국에서 사랑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도 견딜 수 없다. 조건 맞는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하겠다는 동질혼은 이렇게 이들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된다. http://www.hankookilbo.com/v/134b201cf06c461499f5841dcdb832b0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등록 : 2017.06.24 14:50 수정 : 2017.06.24 14:50

계층이동 사다리 닫힌 사회일수록 동질혼 강화

97년 IMF이후 계층 양극화 심화로 개인 노력 통한 신분상승엔 한계

믿을 건 결혼으로 구축한 가정뿐 부부의 부와 학력, 자녀에게 대물림

낭만적 사랑과 동질혼이 꼭 반대 개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낭만적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교환가치의 성공적 거래'를 암묵적 대전제로 삼고 있다. 조건 없는 사랑과 결혼은 멸종해 가는 것일까. 게티이미지 뱅크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동질혼이 대세가 되어가는 데에는 사회구조적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닫혀있는 사회일수록 동질혼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취업난, 저임금, 저금리, 평생직장의 실종, 주거비의 급격한 상승, 극단적 양극화가 계속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올라설 수 있는 계층이동에는 한계가 있다. 기회가 적고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할수록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는 오직 가족뿐이고, 그렇기에 결혼의 양상이 달라진다. 미국 법학자인 준 카르본 미네소타대 교수와 나오미 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저서 ‘결혼시장’(시대의 창)에서 “(2008~2010년) 소득 상위 1%가 미국 소득의 약 24%를 가져가고, 하위 90%의 임금은 계속 떨어지는 엄청난 소득 격차로 인해 남녀가 배우자를 만나는 방식이 변화했다.”며 “어느 때보다 미국 남녀가 상대의 소득을 중요한 매력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격차가 극단적으로 커진 만큼 개인에게 소득이 의미하는 바는 더 커졌고, 이런 환경에서 남녀 모두, 특히 고소득 남녀가 합리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결론은 동질혼이 되는 것이다. 두 저자는 “소득이 계속 상층에 집중되고 고용불안이 커질수록 일부를 제외한 미국 가족 대부분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수저론’이 공고한 한국의 상황도 다를 게 없다.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예비 배우자의 학력이나 소득 등의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청년들은 많지 않다. 정지민 칼럼니스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층 양극화가 심화되고 노력을 통한 계층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정서이다 보니 ‘결혼을 하더라도 내 현재 위치는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동한다. 예비 배우자의 직업, 소득, 학력, 지위 등이 연애에서 획득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한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고소득자는 고소득자와 가정을 꾸리고, 저소득자는 자신보다 더 잘 버는 상대를 끊임없이 찾거나 둘이 돼 더 힘들어질 바에야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독신으로 남는다.

이렇게 결성한 가정은 기댈 곳 없는 이 사회에서 나의 생계와 지위를 유지해 줄 유일한 감정적 유대 집단이자 이익 공동체가 된다. 부부의 부와 학력, 결혼의 기회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대학 등록금은 비싸고, 공교육은 부실한 상황에서 자녀 교육이란 가족 스스로 해내야 할 과업으로서 각 가족이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지위 경쟁의 각축장이 된다.

단지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값비싼 학원이나 과외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학력 부모에게서 숨쉬듯 공기처럼 흡수하는 문화자본 역시 막대하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혁신가들이 모두 이 그룹에서 배출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어머니는 정신과의사,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아버지는 컴퓨터공학이라는 분야를 기초한 미시건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어머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였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아버지가 메릴랜드대 수학과 교수, 어머니가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다. 공교육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메울 수 없는 우주적 간극이다. 별자리에 관심을 갖는 아들에게 NASA 어린이체험 프로그램이 즉각 제공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딸에게 즉석 코딩 강의가 펼쳐지는 세계다. 동질혼을 가장 합리적 전략으로 일컫는 이유다. http://www.hankookilbo.com/v/976c067325094eeca1f8982da883d250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등록 : 2017.06.24 04:40 수정 : 2017.06.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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