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4. 23:07ㆍ經濟
미국식 자본주의, 스스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이남규 옮김|기파랑 |382쪽|1만3000원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 평생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해온 일본을 대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다. 호소카와 내각에서 경제개혁연구회의 위원, 오부치 내각에선 경제전략회의 의장대리를 맡는 등 일본의 후진적 경제사회 구조를 미국식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해 왔다. 그의 구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오른팔이었던 경제학자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에게 그대로 계승됨으로써 이른바 '55년 체제'(전후 일본의 기득권 체제)를 깨부순 '고이즈미 개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가 작년 말 느닷없이 전향(轉向)을 선언했다. 참회록 형식의 책에서 "이제까지의 내 주장은 잘못됐다"고 털어놨다. 미국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의미의 '반미(反美)'를 넘어서 경제학의 기본토대인 시장주의와 자유경쟁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래서 엄청난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경제서적으론 이례적으로 한 달 만에 13만부나 팔려나갔다.
그러면 그는 왜 '40년 소신'과 결별한 것일까. '변절자'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책 앞부분 80쪽 가까이를 '전향의 변(辯)'으로 채웠다. "1960~70년대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에게 미국 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관대함은 미국이야말로 유토피아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거기에 비하면 정(政)·관(官)·업(業)의 삼각 유착 구조에 얽매인 폐쇄적 일본 사회는 시장원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전근대적 사회로 보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가 풍요롭고 건전한 중류계급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적 의미의 시장원리가 미국 사회에 관철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나 전후의 케인스적 정책, 소득평등화를 위한 세제나 사회복지 정책의 덕택이었다."
그래픽=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요약하면 '풍요한 미국'이 '이 산'(신자유주의)인 줄 알고 올랐더니 사실은 '저 산'(적절한 정부 개입)이더라는 얘기다. 고이즈미 개혁에 대해서도 "일본을 '프리터'와 '넷카페 난민' '의료 난민'의 나라로 후퇴시켰다"고 혹평했다. 31세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고 귀국한 뒤 평생 경제 연구를 업으로 해온 67세의 원로 학자로서 여간해선 하기 힘든 '전면적 자기부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풍요한 미국'이 변질된 건 레이건 시대부터다. 1930년대 대공황을 전후한 미국은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1927년)를 차지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컸다. 그 후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오일쇼크 직후인 1975년까지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정권 아래서 그 비율은 8%까지 떨어진다. 폴 크루그먼은 이 기간을 '대압축의 시대'라고 불렀다. 나카타니를 압도한 '풍요한 미국'은 바로 이 시기다.
그러나 1981년 레이거노믹스로 명명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작은 정부' '시장 자율' '기업·부자에 대한 감세' 같은 레이건 정부의 정책들이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그 후 30년 미국 사회는 소득격차가 확대되면서 중류 계급이 사라지고 의료복지가 붕괴되는 더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컨대 2005년 현재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7%를 차지한다. 거의 대공황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또 미국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와 직원들의 급여 격차가 1970년대 40배에서 2000년 367배로 불어났다. 1980년 이후 미국 노동자의 평균소득은 매년 2~3%씩 올라갔지만 중위(中位) 소득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내려갔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앞날에 대해 나카타니는 "큰 수정이 불가피하고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스스로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못 박는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내재된 본질적 결함 때문에 현재의 경제위기에 머물지 않고 전 지구적 환경파괴, 유해오염 식품의 유통, 세계적 소득격차의 확대재생산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미국식 글로벌 자본주의를 '날뛰다가 자신을 상처 입히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비유했다.
이 책뿐 아니라 미국 월가(街)발(發)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식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가 잇따르고 있다. 《슈퍼자본주의》(로버트 B. 라이시·김영사),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조지프 E. 스티글리츠·21세기북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칼 폴라니·책세상), 《신자유주의:하이에크·프리드먼·뷰캐넌》(이근식·기파랑) 등도 사회적 화합, 공동체의 품위, 환경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퇴색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해온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해부한 책들이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3/2009052300159.html 이준 논설위원 junlee@chosun.com 입력 : 2009.05.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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