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5. 17:25ㆍ常識
사이시옷의 용례(동아일보 기사 인용) 6월 14일자 동아일보 A30면에 '하굣길 초등생 유괴 잇따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전과 경기 남양주시에서 두 어린이가 한날 유괴를 당한 사건을 보도한 기사입니다. 두 어린이 모두 부모의 품에 무사히 돌아왔다니 다행스럽기만 합니다.
이 기사를 보고 무려 17명의 독자가 제목에 오자가 있다며 동아일보 독자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어 항의했습니다. 오자에 대한 항의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수입니다. 그동안은 웬만한 오자에도 항의 전화가 통상 5건을 넘기지 않았으니 정말 대단한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이 바른 글쓰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무려 17명의 독자가 항의한 대목은 바로 '하굣길'이었습니다. '하굣길'이 아니라 '하교길'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17명 외에도 많은 독자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화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굣길'이 바른 표기입니다. '下校길'은 [하교낄] 또는 [하굗낄]로 소리 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굣길'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굣'이라는 글자의 생김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자의 생김새와 바르게 적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14일자 신문을 만들던 13일 밤 동아일보 편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담당 편집기자는 문제의 제목을 '하교길 초등생…'이라고 달았습니다. 마지막 제작 과정에서 잘못을 발견하고 '하굣길'로 바로잡았습니다. 그러자 편집기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굣길'이 정말 맞느냐고 두 번 세 번 물으면서 역시 '굣'자의 생김새를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하굣길'이라고 하면 독자들은 우리가 오자를 냈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17명이나 오자라며 전화를 한 것이죠. 수백만 명의 독자 가운데 수십만 명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굣길'이 맞는 표기라는 것을 전화한 독자 17명에게 설명하였으니 최소한 그들은 이제 '하굣길'을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고 그 외의 상당수 독자도 사전 등을 통하여 어느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동아일보에서 제목에 오자를 냈다'라고 생각할 것 같아 두렵긴 하지만 말입니다.
마침 같은 사건을 보도하면서 K신문은 '하교길'이라고 적었습니다. 동아일보와 K신문을 모두 본 독자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듯합니다. '하교길'은 적어도 생김새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니까요. 정작 오자를 낸 K신문에는 항의 전화가 몇 통이나 걸려 왔을지 궁금합니다.
우리글을 바로 적는 데 정말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이시옷'입니다. 저도 이 사이시옷은 늘 헷갈려서 일일이 사전을 확인해야만 할 정도입니다.
이 사이시옷에 대해 아주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사이시옷은 두 개의 명사가 합쳐진 말 가운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귓병, 냇가, 나뭇가지, 바닷가 등)나 뒷말의 첫소리가 'ㄴ, ㅁ'이거나 모음인 경우 이들 앞에서 'ㄴ'소리가 덧날 때(콧날, 뱃머리, 댓잎 등) 적습니다. 한자어끼리 합쳐졌거나 외래어와 고유어가 합쳐진 말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다. 다만, 2002년 11월 올린 글 '한심스러운 대학 광고'에서도 밝힌 적이 있습니다만 한자어일지라도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의 여섯 낱말은 사이시옷을 넣어 적습니다. 좀 복잡하죠?
사이시옷 때문에 자주 헷갈리는 말 몇 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굣길'처럼 '등굣길'에도 사이시옷이 있습니다.
이제 곧 장마가 닥칠 텐데 장마 때 오는 비는 사이시옷을 받쳐 '장맛비'라고 적습니다.
우리 밥상에 빠지면 섭섭한 것이 국입니다. 이 국이란 것이 주재료에 따라 이름도 참 많습니다. 주재료 이름의 마지막 음절에 받침이 없으면 모두 사이시옷을 받쳐 적습니다. 김칫국, 냉잇국, 북엇국, 순댓국, 명탯국, 고깃국, 뭇국, 배춧국, 시래깃국처럼 적습니다.
또 동식물을 분류할 때 쓰는 '과(科)'앞에도 사이시옷을 넣습니다. 고양잇과, 갯과, 잉엇과, 멸칫과, 잠자릿과, 참샛과, 참나뭇과처럼 씁니다.
빛깔과 관련된 말에도 사이시옷을 적습니다. 연둣빛, 장밋빛, 무지갯빛, 보랏빛, 핏빛, 우윳빛처럼 적습니다.
아무튼 이 사이시옷이라는 게 넣을 때가 있고 넣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지 글자 생김새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이 꼭 알았으면 합니다. 생김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역시 생김새 때문에 가끔 의심받는 낱말이 또 하나 생각납니다. 바로 '푯말'입니다. 이 '푯말'을 써 놓으면 여러 사람이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럼 '표말'로 쓰겠느냐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멋쩍어 합니다. 이처럼 생김새가 낯설다고 틀린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에 맞춰 쓰면 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