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 15:42ㆍ言語
※ 대학수학능력시험 이전인 1970년대 대학입학예비고사와 그 이후 1990년대까지 시행되었던 대학입학학력고사 시절 그 당시 반드시 출제되었던 문교부 발행인 국정교과서인 (구)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이란 단원을 통해 수험생인 고교 3학년생에게 입시지도를 하며 가르쳤던 기억을 회상하여 정리해 본다.
참고로 국가 주관 대입 시험의 변천은 대학입학 연합고사(1954학년도),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3학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1969~1981학년도), 대학입학 학력고사(1982~199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994학년도~현재)의 과정을 거쳤다.
훈민정음
1. 훈민정음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양력 10월 상순)에 반포하였다.
문자체계의 특징은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는 음소문자(音素文字)이면서 음절단위로 적는 음절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 점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체계는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으나 오늘날에는 24자만 쓰인다.
2. 창제 목적
첫째 민족자주정신이다. 우리가 중국 글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고 있으나 이는 중국말을 적는 데 맞는 글자이므로 우리말을 적는 데 맞지 않다. 우리말을 적는 데 맞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새 글자를 만들었다.
둘째, 민본정신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었다.
3. 창제 과정
(1) 집현전의 박팽년(朴彭年)·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학자들은 세종의 사업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성삼문은 요동(遼東)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번이나 찾아가서 음운에 관하여 물었다.
(2) 1443년 훈민정음이 완성된 후, 세종은 3년간의 시용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훈민정음의 실용성을 시험해 보는 한편,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훈민정음의 본문을 풀이한 해례를 편찬하게 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소개하는 책 이름을 글자 이름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
4. 문헌으로서의 <훈민정음>
(1) 책 <훈민정음>은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다가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이한걸(李漢杰)의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 책을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한문본, 〈훈민정음〉원본이라고 한다. 목판본 1책 33장이다. 사주쌍변(네 테두리가 2줄로 됨)에 유계(책의 행간에 경계선이 있음)이고, 소흑구(책의 중간인 판심의 위아래에 가느다란 검은 줄이 있음)로 되어 있다.
(2) 발견 당시 책의 처음 2장이 빠진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 넣을 때 실수하여 '세종어제서문'의 끝 자인 '耳'자가 '矣'자로 바뀐 듯하다(〈세종실록〉에는 '耳'자로 기록됨). 이밖에 주해본 〈훈민정음〉으로는 희방사본(喜方寺本)·박씨본과 일본의 궁내성본(宮內省本)·가나자와본(金澤本) 등이 있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이 발견되었는데, 서문 4장과 뒷장 1장이 없으나 학술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판본은 안동 광흥사 나한상 속에 있던 유물이었음이 밝혀졌으나 실물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3) 1997년 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5. 구성(체재)
〈훈민정음〉은 예의편·해례편·정인지서의 3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예의(본문)
① 어제 서문(훈민정음 창제목적)
세종어제(서문)에서는 표기수단을 가지지 못한 백성들에게 표기수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목적을 밝혔다.
② 초성 음가
한자음을 이용하여 훈민정음 초성(자음)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③ 중성 음가
한자음을 이용하여 훈민정음 중성(모음)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④ 종성부용초성법(終聲復用初聲法, 받침법칙)
종성(받침)은 초성을 다시 사용한다.(냉ᅐᅲᇰㄱ소리ᄂᆞᆫ 다시 첫소리ᄅᆞᆯ ᄡᅳᄂᆞ니라)
⑤ 연서법칙(連書法則, 니ᅀᅥᄡᅳ기)
순음 아래 ㅇ을 이어 쓰면 순경음이 된다.(ㅇᄅᆞᆯ 입시울쏘리 아래 니ᅀᅥ 쓰면 입시울ᄇᆡ야ᄫᆞᆫ소리 ᄃᆞ외ᄂᆞ니라)
⑥ 병서법칙(並書法則, ᄀᆞᆯᄫᅡ쓰기)
초성과 종성의 합용법(첫소리와 냉ᅐᅲᇰㄱ소리를 어울워ᄡᅮᇙ디면 ᄀᆞᆯᄫᅡ쓰라.)
⑦ 부서법칙(附書法則, 브텨쓰기)
초성의 오른쪽에 붙여 쓰는 글자와 아래에 붙여 쓰는 글자
⑧ 성음법(凡字必合而成音)
글자는 받드시 어울러야 소리가 이루어진다.(믈읫 ᅏᆞᆼㅣ 모로매 어우러ᅀᅡ 소리 이ᄂᆞ니)
⑨ 사성법칙(四聲法則, 성조법)
좌가(左加) 1점=거성(去聲, ᄆᆞᆺ노ᄑᆞᆫ소리), 2점=상성(上聲, 처ᅀᅥ미 ᄂᆞᆺ갑고 냉ᅐᅲᇰ이 노ᄑᆞᆫ소리), 무점=평성(平聲, ᄆᆞᆺᄂᆞᆺ가ᄫᆞᆫ소리), 입성(入聲, ᄲᆞᆯ리긋ᄃᆞᆮᄂᆞᆫ소리)
⑩ 연서(連書)와 병서·합용(合用) 등의 표기방식(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과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자소(字素)처럼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각 음절마다 방점으로 성조를 왼쪽에 표시하도록 하였다.
(2) 해례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주로 밝히고, 그 음가·운용법, 이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다.
① 제자해(제자원리, 제자기준, 자음체계, 모음체계, 음상 등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첫머리부터 태극·음양(陰陽)·오행(五行)과 결부된 언어관을 제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도 성음(聲音)에 따라 음양의 이치를 다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상형(象形)에 있음을 말하고, 자음자(子音字)의 제자에 있어서는 먼저 조음위치별(調音位置別)로 기본이 되는 초성자(初聲字)를 정하고, 이 기본자들은 각각 그 조음방식 또는 조음위치를 상형하여 제자된 것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각 조음위치에서 발음되는 자음은, 그 발음이 세게 나는(‘厲’로 표현) 정도에 따라 이 기본 문자에 획을 더하여 제자한다고 하였다(보기, ㄴ→ㄷ→ㅌ). 계속하여 다시 오행설을 가지고 각 자음을 오행·계절·음계(音階)·방위(方位) 등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음상(音相)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한 다음, 중국의 전통적인 어두자음(語頭子音) 분류법인 36자모표의 분류방식에 따라 훈민정음의 자음자를 분류 설명하였다.
또한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음상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하였다.
다음에 전탁(全濁)의 음가는 ‘전청소리가 엉긴 것(凝)’이라고 설명하고, 훈민정음 28자와 따로 제정한 순경음(脣輕音)의 음가는, “가벼운 소리를 가지고 입술을 잠깐 합하고 목구멍소리(숨소리)가 많다.”고 하였다.
중성글자는 초성글자와는 달리 천(天)·지(地)·인(人) 삼재를 상형하여 기본모음자 ‘ㆍ·ㅡ·ㅣ’를 제자 하였음을 말하고, 이들 기본 모음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② 초성해(초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였다.)
초성해에서는, 초성이란 운서의 자모에 해당한다고 하고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였다.
③ 중성해(중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설명하고, 중성글자의 합용법을 제시하였다.)
중성이란 한자음의 개음(介音)+운복음(韻腹音)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중국음운학에서 음절말음[운미(韻尾)라고 함]으로 다루는 반모음 /j/ 까지도 중성에 포함시켜, 제자해에서 설명한 11자 이외에, 다음과 같이 여러 모음자가 합용되어 중모음으로 쓰일 수 있음을 말하였다.
ⅰ) 기본자 ㆍ ㅡㅣ
ⅱ) 초출자 ㅗ ㅏ ㅜ ㅓ
ⅲ) 재출자 ㅛ ㅑ ㅠ ㅕ
ⅴ) 합용자 ㅘ ㅝ ㆇ ㆊ
ⅵ) 일자중성+ㅣ ㆎ ㅢ ㅚ ㅐ ㅟ ㅔ ㆉ ㅒ ㆌ ㅖ
ⅶ) 이자중성+ㅣ ㅙ ㅞ ㆈ ㆋ
④ 종성해(종성의 본질과 사성 등을 설명하였다.)
종성이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말음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고, 중세국어의 성조를 우선 종성만 가지고 설명하였다. 즉, 불청불탁자(不淸不濁字)는 평성·상성·거성의 종성이 되고, 전청자·차청자·전탁자는 입성의 종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어의 종성은 ‘ㄱ·ㆁ·ㄷ·ㄴ·ㅂ·ㅁ·ㅅ·ㄹ’ 8자면 족(足)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자음의 입성 가운데, ‘ㄷ’종성음을 일반에서 ‘ㄹ’로 발음하고 있는데, 이를 ‘ㄷ’음으로 발음해야 된다고 하였다.
⑤ 합자해(초성·중성·종성 글자가 합해져서 음절 단위로 표기되는 보기를 보이고, 중세국어의 성조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자소처럼 인식하여, 이들 3요소를 좌로부터 우로, 위로부터 아래로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합용병서·각자병서의 서법(書法)을 초성·중성·종성에 걸쳐 설명하였다.
이어 당시의 국어성조를 다시 설명하여, 입성은 중세국어의 성조단위가 아님을 말하였다. 즉, 긷:깁 몯 등이 종성만을 가지고 볼 때는 입성이지만, 성조로서는 평성·상성·거성이 된다고 하였다.
⑥ 용자례(단어의 표기례를 제시하였다.)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초성 ‘ㄱ·ㅋ· ㆁ, ㄷ·ㅌ·ㄴ, ㅂ·ㅍ·ㅁ, ㅸ·ㅈ·ㅊ, ㅅ·ㅎ·ㅇ, ㄹ·ㅿ’의 표기례를 각각 2 단어씩 들었는데, 각자병서와 ㆆ의 표기례가 제외되고, ㅸ의 표기례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중성은 ‘ㆍ·ㅡ·ㅣ·ㅗ·ㅏ·ㅜ·ㅓ·ㅛ·ㅑ·ㅠ·ㅕ’의 표기례를 각각 4단어씩 보였으며, 종성은 ‘ㄱ·ㆁ·ㄷ·ㄴ·ㅂ·ㅁ·ㅅ·ㄹ’의 8종성의 표기례만을 각각 4단어씩 보였다.
(3) 정인지서
훈민정음의 창제이유, 창제자, 훈민정음의 우수성, 이 책의 편찬자, 편찬연월일을 분명히 밝혔다.
제 말의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빌려 씀이 아무래도 어거지라는 것, 한자로 쓰인 책의 뜻을 깨치기 어렵다는 것, 한문으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것, 이두(吏讀) 사용이 불편하다는 것 등을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로 들었다.
이어 세종이 1443년(세종 25) 겨울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것, 훈민정음은 간단하여 깨치기 쉬운 글자이면서 여러가지로 응용이 가능하여, 대개의 음(음악, 한자음, 자연음까지)을 표기할 수 있고, 이 글자의 창제로 한문책의 해석도 쉬워졌으며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례본의 저술자가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등 8명이라고 하였다. 이 서문을 쓴 날이 1446년 9월 상한이므로, 이 책의 완성일을 알려준 데도 이 서문의 가치가 있다.
6. 제자원리
(1) 초성(자음)
① 초성체계(상형의 원리, 가획의 원리, 결합의 원리)
② 초성의 상형원리
③ 초성(자음)의 수
(ⅰ) 15세기
ⅰ) 기본 자음 17자[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ㆆ(한자음 표기용), ㅎ, ㅇ, ㄹ, ㅿ]
ⅱ) 각자병서 6자(ㄲ, ㄸ, ㅃ, ㅉ, ㅆ, ㆅ)
ⅲ) 어두자음군 9자[ㅂ계(ㅳ, ㅄ, ㅶ, ㅷ)+ㅄ계(ㅴ, ㅵ)+ㅅ계(ㅺ, ㅼ, ㅽ)]
ⅳ) 순경음 4자(ㅱ, ㅸ, ㅹ, ㆄ)
(ⅱ) 20세기(19자)
ⅰ) 기본 자음 14자(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ㅌ, ㅎ)
ⅱ) 각자병서 5자(ㄲ, ㄸ, ㅃ, ㅆ, ㅉ)
⓸ 조음기관
(2) 중성(모음, 상형의 원리, 가획의 원리)
① 중성의 상형원리
② 모음삼각도
③ 중성의 수
(ⅰ) 15세기
ⅰ) 기본 모음 11자(ㆍ+ㅡ+ㅣ+ㅗ+ㅏ+ㅜ+ㅓ+ㅛ+ㅑ+ㅠ+ㅕ)
ⅱ) 단모음 2자(ㅐ, ㅔ)
ⅲ) 복모음 9자(ㅒ,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
(ⅱ) 20세기
ⅰ) 단모음 10자(ㅏ, ㅓ, ㅗ, ㅜ, ㅡ, ㅣ, ㅐ, ㅔ, ㅚ, ㅟ)
ⅱ) 복모음 11자(ㅑ, ㅕ, ㅛ, ㅠ, ㅒ, ㅖ, ㅘ, ㅙ, ㅝ, ㅞ, ㅢ)
(3) 종성(받침)
종성(받침, 냉ᅐᅲᇰㄱ소리)은 초성(첫소리)을 다시 사용한다.
① 종성의 수
(ⅰ) 15세기
ⅰ) 종성부용초성(세종 당시)
ⅱ) 8종성가족용(세조 이후,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ⅱ) 17세기: 7자
ⅰ) 7종성법(임진왜란 이후, ㄱ, ㄴ, ㄹ, ㅁ, ㅂ, ㅅ, ㅇ)
(ⅲ) 20세기: 27자
ⅰ) 문자 표기(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 공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종성부용초성 부활)
ⅱ) 단자음 14자(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ⅲ) 중자음 13자(ㄲ,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ㅄ, ㅆ)
ⅳ) 표음적 표기는 7종성법을 따른다.
7. 참고사항
(1) 자음의 명칭
1527년(중종 22) 최세진이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간행한 교학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현재의 자음의 명칭과 현재와 같은 자·모음의 배열이 정해졌다.
(2) 삼성체계
훈민정음 제정 당시인 15세기에는 동국정운(東國正韻)의 표기를 따랐으므로 모든 글자는 반드시 초성+중성+종성의 3성체계를 따랐고, 받침(종성)이 없는 우리말도 제로음[𝞥]인 ㅇ을 붙여서 반드시 3성체계를 갖추었다.
(3) 성조체계
15세기까지는 동국정운식 성조인 고·저(pitch) 성조였으나, 17세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현재까지 장·단(length) 성조로 바뀌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 지역에서는 아직 고·저(pitch) 성조를 따르고 있으니 비교적 언어의 성조가 투박하고, 여타지역의 장·단(length) 성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경상도 말을 할라치면 억양이 매우 어색한 것이 이런 이유이다. 마치 강·약(stress) 성조를 사용하는 영어권 사람이 서툰 우리말을 하는 것과 같은 억양이다.
(4) 음운(音韻, phoneme)
음소와 운소를 합쳐서 음운이라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연구하는 학문을 각각 음운론·음소론·운소론이라고 한다.
① 음소(音素): 변별적 자질, 분절적(마디나 절로 나눌 수 있는 것, 자음과 모음)
② 운소(韻素): 변별적 자질, 비분절적(마디나 절로 나눌 수 없는 것, 고저, 장단, 강세 등)
그러므로 훈민정음의 제정은 음소를 표기하는 기호의 제정이다.
(5) 음성(音聲)과 음향(音響)
① 음성(音聲): 분절적, 문자 표기 가능
사람의 발음 기관에서 나오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소리로 발음하는 사람에 따라, 발음하는 때에 따라 다르게 나는 소리로서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있다.
② 음향(音響): 비분절적, 문자 표기 불가능
사람의 발음 기관이 아닌 사물에서 나는 소리와 그 울림. 그 소리와 비슷하게 내는 것이 의성어(소리시늉말)이다.
(6)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스위스의 언어학자로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이다.
① 기호(記號, signe)
언어에서 형식(소리)과 내용(의미)의 관계는 사회적 약속에 의하여 자의적(임의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다. 말하자면 의미작용(意味作用, signification)은 서로 그 관계가 자의적(恣意的)이어서 필연성이 없다.
훈민정음의 제정은 인간의 사상(의미)을 표현하는 수단을 제정한 것이다. 훈민정음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제정되어 현재와 미래에 각광받는 디지털시대의 표기수단이란 점에서 이를 제정한 세종대왕은 어떤 뛰어난 언어학자보다 더 탁월한 언어학자일 것이다.
ⅰ) 기표(記表, signifiant): 형식(소리)
ⅱ) 기의(記意, signifié): 내용(의미)
② 언어활동(langage)
빠롤은 같은 내용의 언어가 발화자마다 달라지는 구체적인 실제 발화 행위이며, 이러한 다양한 빠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랑그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ⅰ) 랑그(langue): 추상적이며 사회적이고 체계적이다.
ⅱ) 빠롤(parole): 구체적이며 개인적 실행인 발화이다.
(7) 발음기관
첨부자료
0. 강의자료
1. 한국어문규정집(2011.12.15.)
(1) 한글 맞춤법
(2) 표준어 규정
(3) 외래어 표기법
(4)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2.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 제88-1 호(1988.1.19.)
3. 한글 맞춤법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4-0039호(2014.12.5.)
4. 「한글 맞춤법」 신ㆍ구조문대비표
5. 표준어 규정문교부 고시 제88-2 호(1988.1.19.)
6. 표준 발음법
7. 보도자료2014년 10월 27일온점? 이젠 ‘마침표’로 불러요!
- <문장 부호> 용법 현실화, 「한글 맞춤법」 일부개정안 고시 -
스님께서 가지신 훈민정음에 대한 깊은 관심을 존경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훈민정음의 음운체계를 범어에서 유래하였다고 근거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훈민정음이 범어에서 유래하였다는 기존의 설들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도 닿소리 7음(5음+반설음, 반치음)의 배열을 근거로 훈민정음이 범어에서 유래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언어란 소쉬르가 말한 시니피에(언어의 내용)가 있고, 이를 표현하는 시니피앙(언어의 형식)이 있습니다. 오랜 이후에 필요에 의해서 그를 표현하는 기호, 말하자면 문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전자(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자의적으로 성립할 뿐입니다. 또한 후자(음성과 기호)의 관계도 자의적으로 성립할 뿐입니다. 만약에 이 양자(내용과 형식, 음성과 기호)의 관계가 필연적이라면 이런 내용은 이런 음성으로, 이런 음성은 이런 표기로 정해진 대로 발음하고, 표기해야만 되므로 인류에게 있어서 언어는 한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발음은 호흡부와 조성부를 거쳐서 조음(調音)기관을 통하여 반드시 날숨에서 발음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은 세종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이 현실적으로 발음하는 현상을 조음되는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성조에 따라 문자를 배열하다 보니 그러한 순서로 배열한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나라에서 자기에 맞는 문자를 만들었더라도 자기 나라 말에 맞는 음운체계를 갖추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비슷한 수준의 언어체계를 갖추었다면 그 음운체계도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발음하지 않는 음운을 문자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범어를 모방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현실적으로 쓰는 말의 기본음을 정하고. 그 기본음에 따라 가획하여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음운인데 범어에 없다고 빼버린 것도 없습니다.
또한 상형이라고 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보는 것보다 추상적으로 좀 더 유연한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 같고,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현재의 자모음의 배열이 정해졌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배열의 원칙이 없기에 오히려 훈민정음 당시의 순서대로 배열 되었더라면 일반인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더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범어가 고도로 정치하여 잘 짜여있는 어려운 언어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음도 우리나라는 '모음3각도'로 나타낼 수 있지만 범어는 '모음4각도'까지 나타낼 수 있는 아주 발달된 언어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역사성(가변적 성질)이 있고, 자의적 성질을 지닌 산물이기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헌에 나타난 시대별로 변한 우리말의 변화나 성조의 변화만 보더라도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범어는 너무나 규칙이 엄격하고, 고도정치하여 오히려 불편한 언어로 우리에게 잊힌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범어가 7음체계를 갖추고 있고, 훈민정음이 그러한 범어의 음운체계를 모방하였다기 보다 훈민정음 제정 당시에 현실적으로 발음하는 음운을 발음 위치에 따라 기본음 다섯 자를 상형하여 닿소리 문자를 제정하고 음운의 성질별로 배열하고, 거기에 가획하여 또 소리의 성질별로 배열하고, 이체자인 반설음과 반치음을 동일한 방법으로 배열하다 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홀소리는 3재를 상형하였고 거기에 초출자, 재출자를 제정하여 배열하였습니다. 특정의 어떤 언어가 인류의 보편적인 음운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범어의 음운체계를 모방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모든 현상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특성이 어떤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것을 모방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발음하는 음운을 기반으로 제정하였기에 우리 민족이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음성은 훈민정음으로 모두 표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발음하지 않는 순경음이나 ㅿ 같은글자는 자연적으로 쓰이지 않는 소실문자가 된 것이고, ㅸ 같은 음운은 경상도 방언에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나 표준어에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실문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닿소리 음운체계가 범어를 모방하였다기 보다 당시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음운을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음운의 성질별로 배열한 것이고, 모음도 범어의 음운체계를 따르지 않고 당시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음운을 근거로 3재를 상형하여 기본음으로 하고 여기에 초출자 재출자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학이라는 학문도 언어 이전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언어의 변천에 따른 귀납적 연구방법에 따른 학문이고, 당시 현실적으로 쓰이는 음운을 기반으로 귀납적으로 음운체계를 정리해서 이를 표기할 수 있는 기호(문자)를 창제하여 말하고 사용함에 전혀 불편함이 없이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디지털 시대에 가장 편리한 문자를 제정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을 주도적으로 창제한 세종대왕이야말로 그 어떤 누구보다 훌륭한 언어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言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성법(終聲法, 받침표기법) (0) | 2024.02.12 |
---|---|
언어란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이다 (2) | 2024.01.25 |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0) | 2022.08.12 |
훈민정음 '상주본' (0) | 2022.08.07 |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0) | 202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