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6. 06:46ㆍ故鄕
2024년 4월 23일(화) ~ 2024년 4월 26일(금) 4일간 9시30분~12시30분 사이에 밀양시 청소년 문화의 집과 삼문동 솔밭과 보건소 건강드림센터에서 개최하는 ‘걷기 지도자 양성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는 버스가 없어서 하릴없어 7시에 고례리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농촌버스를 다원마을에서 7시 45분에 타고 8시 경에 밀양관아 앞에 도착한다. 참 불편하기 그지없는 밀양시 교통행정이다. 환승제도도 없고, 요금도 오지 시골인 산청군보다 600원이나 더 비싸다. 터미널에서 다시 보건소로 가려면 또 다른 버스를 이용해야 해서 다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농촌버스의 구간요금제는 내가 수차례 문제를 제기하여 폐지하였다.
시작시간을 맞추려면 다시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관아는 아직 문이 잠겼고, 청소년 문화의 집도 보건소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무봉사에서 부처님을 참배하고, 문을 열지 않은 영남루 내에 있는 천진궁에서 음력 3월 보름인 오늘 국조 단군왕검 어천대제를 봉행하기 위해 드나드는 사림들을 위해 문을 연 틈을 이용하여 출입항 수 있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도착해서 밀양여중 근처의 밀양강을 산책하였다 여기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이다. 이제 밀양중학교와 여중생들이 재잘거리면서 등교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책임질 미래 세대들이다.
참고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의 누정으로 국보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3년 12월 28일 국보로 승격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그뒤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년(인조 15)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1844년(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넓은 강을 옆에 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있다. 세부적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는데, 출목(出目)을 갖춘 3익공식의 공포구성과 공포 주변에 새겨진 부재의 장식 수법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외부로 뻗은 쇠서(牛舌)에 연꽃 또는 연봉 장식이 첨가되고 판재화(板材化)된 3익공의 내부도 초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밖에 고주(高柱) 위에도 복잡한 장식이 중첩되며 용머리를 장식한 충량(衝樑)이 올라와 있다.
전체적으로 부재도 크고 기둥 간격도 넓으며 중층(重層)으로 되어 우리 나라 건축 중에서는 크고 우람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건물 서편에 작은 부속건물이 딸려 있고 지붕이 여러 단으로 낮아지면서 연결되어 독특한 외관을 구성한다.
빼어난 경관과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 건물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건물을 노래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