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6. 18:31ㆍ敎育
해마다 이맘쯤이 되면 1년을 함께 보낸 아이들과 헤어질 때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일 년 내내 말썽을 부렸던 아이도, 틈만 나면 수업을 방해했던 녀석도 모두가 내 아이들 같이 귀여워 보이고, 왜 전에는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겨울방학 전 필수 코스가 크리스마스카드 만들기이다. 저마다 정성스레 만든 카드에 선생님께 하고픈 이야기들을 담아내게 선물해준다. 카드 속 아이들의 깍두기 글씨 안에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소한 추억들이 배어난다. 모두가 소중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소중한 아이들 중에도 유독 내 아이도 저 아이처럼 자라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의 기억에 남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1.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 아이
요즘은 비만인 아이들만큼 반찬 투정을 하거나 반찬을 골라서 먹는 아이들이 많다. 특히 야채류를 싫어하는 데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이면 교사와 아이는 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다른 것은 다 먹어도 야채만은 먹지 않겠다며 토할 것 같다, 떨어뜨렸다 등 다양한 핑계로 싫어하는 음식은 입도 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한 반에 5명은 있다. 반면 '고소하다', '쌉싸래하다', '향긋하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도 있다.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만큼 배부른 점심은 없다.
2. 친구 준비물까지 넉넉히 준비해 오는 아이
미술시간. 찰흙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동작 만들기'를 하기로 하였다. 최○○이 찰흙을 가지고 오지 않아 멀뚱멀뚱 딴청을 부리고 있다.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아이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그 아이와 조금 떨어져 앉은 김△△이 조심스레 최○○에게 다가왔다.
'나 하나 더 가져왔는데 너 쓸래?'
'응, 정말 고마워'
미술시간이나 통합 교과 시간과 같이 학습 준비물이 필요한 수업 시간에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아이들이 꼭 한 둘 생긴다. 이 때 충분히 많은 준비물을 가져왔음에도 절대 안 빌려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들 몫까지 항상 챙겨오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도 여유분이 없어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선뜻 나서서 자기 것을 빌려주거나 나누어주는 아이를 보면서 흐뭇해질 때가 있다.
한 번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이 한 개만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두 개나 가져왔니?"
"엄마가 혹시 가져오지 못한 친구가 있으면 빌려주라고 하나 더 챙겨 주셨어요."
엄마의 작은 배려로 내 아이는 마음이 부자가 될 것이다.
3. 등교하면 필요한 교과서와 학습 준비물부터 서랍 속에 정리하는 아이
"박◊◊, 수학교과서 안 가져왔니?"
"가져온 것 같은데 책가방에 없어요."
매일 아침 등교하여 오늘 든 교과시간표를 보고 필요한 책과 공책을 책상서랍에 넣는 것은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기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사물함에 가서 책을 매 시간 빼오거나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귀찮아 책가방 고리에 가방 문을 열어둔 채로 가방을 걸어 두고 필요한 걸 그때 그 때 빼서 사용한다. 이 경우 가방 문이 열어진 책가방들 때문에 통행하기가 불편하며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다. 한 번의 귀찮음으로 인해 미리 학습 과제물과 준비물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략되고 과제나 준비물을 확인할 시간이 없어진다. 그 결과 수업시작 후에 교과서를 두고 왔음을 발견하곤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다.
등교하자마자 오늘 필요한 교과서와 준비물을 챙기는 학생은 등교 후 혹시 빠뜨린 교과서를 발견하더라도 옆 반 친구에게 빌릴 수 있으므로 최소한 교과서가 없이 수업하거나 준비물이 없어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는다. 수업 준비가 잘된 아이, 1년 내내 교과서와 준비물을 모두 챙겨오는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4. 예의가 바른 아이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그 만큼 예절 교육을 중요시 여겨왔으며 가정교육=예절 교육이라 여겨 예의바른 행동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요즘은 가정교육의 부제와 성적 중심 학력 위주 교육 풍토로 인해 매해 한 반에 2-3명은 심하게 버릇없는 아이들이 있다. 담임교사가 아니면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남교사 앞에서도 반말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쌍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예의가 바른 아이를 보면 미소 한 번 더 짓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소한 예절이지만 웃어른께 공손히 인사하고 물건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습관은 내 아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인 것 같다.
5. 몸이 불편한 아이, 소외받는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아이
우리 반에는 특수교육 대상아가 있다. 정신지체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이이다. 그러나 늘 그 아이 옆에는 도움을 주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마치 자기 동생을 대하듯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은 교사인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몸이 불편한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고 청소도 도와주고 걸음걸이 한걸음 한걸음을 돌보아주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대견하다. 올 한해 함께 했던 우리 반 아이들의 꺼려지고 멀리하게 되는 우리와 다른 '장애인'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친구'로 인정해주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챙겨주려는 모습을 통해 사랑 실천의 참 모습을 많이 보았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만큼 교사를 흐뭇하게 하는 것은 없다.
6. 청소를 잘하는 아이
요즘 아이들은 빗자루 질을 잘 못한다. 가정에서 청소를 해본 적이 거의 없고 진공청소기 사용에 익숙해서 당연히 빗질이 매우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교실이 덜 깔끔하다. 하지만 반 아이 중 몇 몇은 빗자루 질과 걸레질, 걸레 빠는 것까지 훌륭하게 해낸다. 필자는 청소하는 모습을 자주 칭찬해주곤 하는데 요즘은 그 친구들에게 해준 칭찬을 자기도 듣고 싶었는지 청소를 깨끗이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자기 자리 정리를 잘하는 아이는 무슨 일이든 청소처럼 말끔히 잘해낼 것 같은 믿음이 생기곤 한다.
7. 모든 일에 적극적인 아이
목소리와 동작이 작은 소극적인 아이보다 목소리도 크고 끼가 있는 적극적인 아이가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고 발표율도 높다. 솔직하고 대인관계도 좋고 모든 일에 능동적이고 긍정적이라 학급 분위기를 늘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시범을 보여야 할 때나 흥겨운 율동을 할 때에도 자신해서 나서 수업 진행시 많은 도움을 준다. 교사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비록 말썽쟁이거나 개구쟁이라도 예뻐할 수밖에 없다.
8. 선생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웠거나 선행 학습으로 이미 수업 내용을 배우고 온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내용에 흥미가 떨어져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장난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건 새로운 내용이건 상관없이 항상 선생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가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 하나를 놓칠까 열심히 집중하는 아이들은 그 아이의 학업 성취도에 상관없이 예뻐 보인다. 그래서인지 수업 중에도 다른 아이들 보다 그 아이를 쳐다보며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업 중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아이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 가게 된다.
9. 복도나 운동장에서 주운 돈은 담임선생님에게 건네는 아이
저학년 아이들 일수록 남의 물건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복도나 운동장에서 주운 돈이나 작은 물건은 꼭 담임선생님께 가져다준다. 주인을 찾아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라 하여도 자기 주머니로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주인 없는 물건은 무조건 교사 책상 위에 올려 진다. 때론 끝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돈을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실천 하는 아이들만큼 예뻐 보일 때는 없다.
10. 선생님을 챙겨주는 아이
센스 있는 아이들이 있다. 식판 챙길 새도 없이 일해야 하는 점심시간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생님 밥부터 식판에 담아주는 아이.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하교 시간 내 의자 뒤에 서서는 '선생님 힘드시죠?' 하곤 방긋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마를 해주는 아이. 무거운 짐을 옮겨야할 때 경쟁하듯 서로 도와주겠다고 자청하는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큰 힘이 되어 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때만큼 교사된 것이 뿌듯할 때가 없다. 선생님을 사랑해주는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식이 제일 예쁘다고 한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들도 객관적인 잣대로 보면 미운 오리가 될 때가 있다. 필자의 글을 읽으신 학부모님께는 지금 당장 내 아이가 어디에 속하는 아이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교사의 입장에서 예뻐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 쓰긴 했지만 사실 교사의 눈에 예뻐 보이는 아이 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 아이는 정말 예쁜 아이인가? 냉정하게 자문해본 뒤, 바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모델삼아 그 아이와 부모들로부터 취할 것을 찾아내길 바란다. 교사들만 아는 자녀교육법 <36> 관련핫이슈[e칼럼] 김범준 ‘교사들만 아는 자녀교육법’ http://news.joins.com/article/3438460.html?ctg=2002 2008.12.30 08:52 입력 / 2008.12.30 16: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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