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崇禮門)
2009. 11. 28. 20:38ㆍ風水
▲ 숭례문 근경 100년전(호주, George Rose)
▲ 숭례문 원경 100년전(호주, George Rose)
국보
http://issue.chosun.com/gallery/namdaemun
천장 속으로 번진 불길, 지붕구조 몰라 놓쳤다
● 왜 못 껐나? 전문가 분석…, "기와·진흙층 먼저 걷어내고 물 쐈어야", 문화재청·소방당국 의사소통 꽉 막혀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남대문)은 수십 대의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이 동원됐고, 불을 진압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왜 불길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까. 11일 숯덩이처럼 변해버린 숭례문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초기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의 구조와 특징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전통 지붕 양식 몰랐다
불을 끄기 위해 숭례문 2층에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연기만 나는 것을 보고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것으로 간주했다. 결국 다시 불길이 점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숭례문이 전소(全燒)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경원대 박형주 교수(소방방재공학과)는 “소방대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노란색 연기가 나는데, 붉은 불씨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며“이는‘적심목’이란 우리나라 전통적인 지붕 양식을 소방대원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대문 2층 지붕은 전통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와·보토(30~60㎝ 진흙층)·적심목(지붕에 넣은 원목)·개판·회반죽(1㎝ 두께)·서까래’인 6겹으로 되어 있다. 지붕에 들어가 있는 나무 구조물인 적심은 밑에선 개판·회반죽에 가려 보이지 않고, 위에서도 지붕과 진흙층에 가려져 있다. 박 교수는“소방관들이 보았다는 노란색이나 검은색 연기는 적심목이 타 발생한 것”이라며“지붕 내부에서 타고 있더라도 밖에선 불길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보통 나무가 탈 때엔 흰색 등의 연기가 나지만 진흙 등에 덮여 있는 적심목은 산소가 부족해 불완전 연소하면서 노란색 등의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슈] 불타버린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
▲ 그래픽=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송윤혜 기자 ssong@chosun.com
한국 전통 건축 전문가인 고려대 주남철 명예교수(건축공학)는 때문에“적심목에 옮아 붙은 불을 끄려면 지붕 가장 밑부분인 1㎝ 두께의 개판·회반죽 부분을 완전히 들어내고 밑에서 물을 쏘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방관들이 회반죽과 기와에 가려 있는 적심목의 존재를 몰라 불길을 일찍 차단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 기와·진흙층 먼저 걷어냈어야
문화재 전문가들은 “지난 1961~63년 숭례문 보수공사를 할 때, 기와 바로 밑에 있는 진흙층인 보토에 석회 성분을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진흙에 석회를 섞은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방관들이 외부에서 엄청나게 물을 뿌려 댔지만, 내부에선 오히려 불길이 활활 번져나갔다. 전문가들은 숭례문 지붕으로 번진 화재를 잡기 위해서는 지붕 맨 윗부분인 기와·보토 부분을 먼저 걷어낸 뒤 물을 뿌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문화재청·소방당국 말이 안 통했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기까지 5시간17분 동안 문화재 보존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화재 진압책임이 있는 소방당국의 의사소통은 꽉 막혀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책임자가 언제 현장에 도착했는지조차 서로 말이 다르다.
본지가 입수한 소방당국의 화재 당일 일지에 따르면 문화재청(대전광역시)에 숭례문 화재 발생이라는 비상연락이 간 것은 오후 8시56분. 문화재청 담당자가 화재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4분이다. 불이 난 지 1시간8분이 지나서야 현장에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의 공조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현장 소방관은“숭례문은 문화재여서 우리 마음대로 판단해 진화작업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화재 초기 소방당국에 “국보 1호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화재를 진압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길이 커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문화재청은 불이 난 지 47분여가 지난 오후 9시35분이 돼서야“남대문이 훼손돼도 상관없으니 적극적으로 불을 꺼 달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문화재청의 통보를 받고도 2시간5분이나 지난 11시40분에서야 지붕 기와 일부를 들어내는 작업을 벌였다.
한국화재소방학회 손봉세(경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학회장은“화재초기에 처음부터 두 기관이 화재현장에서 도면과 진압방식에 대해 실시간으로 교환하고 대화했다면 이처럼 문화재 전체를 태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준 기자 promejun@chosun.com 입력 : 2008.02.12 01:44 / 수정 : 2008.02.12 09:48
● 숭례문 되살릴 수 있나? 실측도면 있어 희망적… 복원 2~3년 걸릴 듯, 2년 전 모형제작용으로 도면 182장 만들어, 1965년 발간한 수리 보고서도 도움될 듯
화재로 무너져 내린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의 복원 공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자료가 보존돼 있기 때문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보(國寶) 지위는 일단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문화재청의 방침과는 달리 원형대로 복원하더라도 국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지정 해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2~3년 동안 200억 원 들여 복원
문화재청은 11일 오전 숭례문 현장에서 문화재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내놓지 못한 채 '숭례문 복구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 남아 있는 부재(部材)를 최대한 다시 사용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소방관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를 만들며 ▲ 기존 부재의 구체적인 사용범위는 현장 확인조사와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추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상구 문화재청 건축문화재과장은 "대체로 원형을 복원하는 데 2~3년, 예산은 200억 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또 일제강점기에 변형됐던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초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은 주먹구구식 방침에 이미 2년 전부터 계획된 성벽 복원 내용을 슬쩍 끼워 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 10일 화재 때 바닥으로 떨어진 숭례문 현판이 고궁박물관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 형체는 겨우 보존됐지만 곳곳에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현판을 박물관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쓸 수 있는 부재, 10%도 안 될 것"
남은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현 상황대로라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숭례문 누각의) 1층에는 그런대로 화재에서 살아남은 부재들이 많이 있고, 2층에서도 일부 포부재(包部材)는 화를 면했다"고 말했다. 포부재는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쪽인 공포(拱包)를 구성하는 부재다. 그는 "겉만 조금 그을린 나무라도 최대한 복원에 활용하기로 했지만, 그게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타지 않은 부재들도 물에 너무 많이 젖었기 때문에 다시 쓰기 어려울 것이고, 활용할 수 있는 부재는 10% 미만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거운 부재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석축도 구조안전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옛 숭례문 부재 중 2005년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옮겨져 보존된 서까래·포부재·기와 등 350여 점이 있지만, 부러지거나 부식돼 복원 작업에는 쓸 수 없는 상태다.
◆ 실측 도면으로 복원한다고 국보 유지?
숭례문의 원형 복원 과정에서 기본이 되는 자료는 지난 2006년에 나온 182장 분량의 정밀 실측 도면이며, 참고자료로는 1965년에 발간된 수리보고서가 활용될 계획이다. 정밀 실측 도면은 당시 숭례문의 모형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후대에 숭례문이 파괴될 경우라도 복원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리보고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원하기 위해 1961~1963년 이뤄진 대규모 보수공사의 보고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실측 도면을 통해 원형대로 복원하게 되면 국보 지위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2005년 산불로 녹아버린 낙산사 동종이 복원을 했는데도 보물에서 해제된 등의 전례를 볼 때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8.02.12 00:46 / 수정 : 2008.02.12 09:50
문화재委, 숭례문 국보 1호 지위 유지키로
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12일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문화재위원회 건축ㆍ사적분과 합동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이같이 결정했다"며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할 당시 목조건축만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 등 복합적 요소를 감안해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목조건축이 부분적으로 훼손됐다고 해도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데 더 뜻을 뒀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복구 과정에서 혹시 간과했던 사실이 발견이 되고 재론할 여지가 있으면 다시 논의하겠으나 (국보 1호에서 해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 2008년 2월 12일 (화) 15:26
● 숭례문 복원
● 얼마나 어떻게 제 모습 되찾나?
숭례문 '잃어버린 성벽' 다시 살린다, 전체로 볼 때 목재는 30%이상 복원 가능, 지표도 원상대로 1.6m 낮추는 것도 추진
화재로 무너진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조금씩 '복구'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14일로 화재 발생 5일째를 맞은 숭례문 현장에서 '잔해를 서둘러 내다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한 문화재청은 훼손 부재들의 현장 방출을 일단 차단했다. 문화재위원회가 화재 이틀 만인 지난 12일 '국보 유지'를 결정한 뒤로 '원형 복원'이라는 큰 원칙과 방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복원과정에서 숭례문은 화재 직전까지의 모습과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 것인가? 또 조선시대 '도성 정문'으로서의 위상과 모습은 얼마나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 "전체 목재 30% 이상 살릴 수 있어"
이번에 훼손된 숭례문 누각은 크게 기와와 목부재(木部材)로 구성됐다. 이 중 기와는 대부분 화재 당시 떨어져 깨져 버렸기 때문에 전량 새 부재로 교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부재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며, 특히 1층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화재청은 "1층의 목부재는 70~80% 정도까지 살릴 수 있고, 숭례문 전체로 볼 때 적어도 30%의 목부재는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훨씬 희망적인 관측도 있다. 13일 현장을 둘러본 김홍식 문화재위원(건축사)은 "목부재 60%까지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타버린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지만, 나무가 불탄 것은 벌레 먹은 것과는 달라서 그중에는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급한 복원 작업을 우려하는 학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연구회·역사학회·한국고대사학회 등 전국의 16개 한국사 관련 학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숭례문을 졸속으로 복원해서는 안 된다. 학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통한 국민의 합의 아래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성벽 복원하고 지표 1.6m 낮춘다.
지난 2006년 마련됐던 숭례문의 '양쪽 성벽 복원' 계획도 이번 화재를 계기로 다시 힘을 얻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이 문제를 논의하고, 빠른 시일 내에 실무자 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숭례문 양쪽 성벽은 1899년(광무 3년) 전차가 개통되면서 일부 훼손된 뒤 1907년(융희 1년) 또다시 크게 헐렸다. 당시 방한했던 일본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을 지나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로부터 숭례문은 양쪽에 날개처럼 성벽을 지녔던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외로운 섬처럼 고립됐다. 이번 성벽 복원 계획은 현재 남은 경사면 형태(삼각형 모양)의 성벽을 당초의 성벽 형태(사각형 모양)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12일 "남산 쪽으로는 50~70m 정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숭례문 준공 당시보다 1.5~1.6m 올라온 현재의 지표(地表)도 원상대로 깎을 예정이다. 숭례문이 석축보다 누각 부분이 큰 가분수처럼 보였던 것도 지표가 올라와 석축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을 복구할 경우 숭례문의 전체 높이는 약 7.9m로 높아진다.
◆ "현판은 3개월 내 복원"
가까스로 화마를 피했지만 만신창이가 됐던 숭례문 현판(편액·扁額)은 3개월 내로 원형 복구가 가능할 전망이다. 14일 현재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이 보관하고 있는 현판은 액자에 해당하는 주변 장식인 낙양각(落陽刻)이 부서지는 등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본판은 길이 5~10㎝ 정도의 파편 6개를 제외하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됐고, 화재 현장에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대부분 찾았기 때문에 전체 모습의 복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95% 이상의 현판 부재들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한편 화재 당시 뿌린 물 때문에 고드름 투성이가 됐던 홍예문의 천장화는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8.02.15 02:07 / 수정 : 2008.02.15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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