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 14:51ㆍ試驗
학력·수능 옛 수석들, 지금은 어디서 뭐하나?
예비고사와 학력고사를 거쳐 수능 시험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대학입시의 방법은 달라져왔지만 매년 수석입학자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때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1969년부터 1981년까지 시행된 예비고사, 1982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에서 수석합격을 이룬 이들은 학계와 법조계로의 진출이 활발하다.
1969년도와 1970년도 예비고사 수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한 임지순씨와 오세정씨는 현재 모교인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 중이며, 법대가 아닌 서울대 국사학과 지원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진로선택으로 이슈가 된 1975년 수석 송기호씨 역시 동 대학 동일학과 교수를 역임 중이다.
▲ 학계 또는 법조계 등으로 진출이 활발했던 과거 수석 입학자들과는 달리 수능세대 수석입학자들은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법조계 또한 수석입학자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이다.
1983년도 수석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홍승면씨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며, 1984년도 수석 장순욱씨는 현재 헌법재판소 판사로 파견근무 중이다. 또한 1973, 80, 81년도 예비고사 수석인 허익렬, 김기영, 오관석씨, 80년도 서울법대 수석 박병무씨, 87년도 수석이었던 물리학과 출신 이시열씨와 92년도 인문계 수석 이윤조씨 등 6명은 모두 김앤장 법률 사무소 한 곳에 속해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 진출 또한 활발하다. 1982년도 학력고사 수석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과 1988년도 여자수석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원희룡 의원은 학력고사 수석에 이어 사법고시 수석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인물도 적지 않다.
1976년 예비고사 수석 임희근씨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번역과 출판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84년 학력고사 수석으로 현재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재직중인 황덕순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 연구와 더불어 합리적인 노동정책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1994년부터 실시된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세대 수석 합격자 역시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 역대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들의 대다수가 서울대에 진학했다.
역시 법조계에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1995년도 수석 최지석씨는 현 창원지검 검사로 미국 파견 근무 중이며 2003년도 수석 윤석준씨는 사법시험 합격 후 해군 법무관으로 복무 중이다. 2006년도 수석 박지원씨는 현재 서울 법대 4학년 재학 중이지만 지난 24일 제 51회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해 졸업과 동시에 사법연수원 입원을 앞두고 있다.
유학 혹은 재학중인 경우도 많다. 1999년도 만점으로 수석에 오른 오승은씨는 서울대 물리학부를 거쳐 MIT 박사과정에 있고 2001년 자연계 수석으로 서울대 전자컴퓨터 공학부에 입학한 이주현씨 역시 현재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9년 자신의 만점 수능 성적표를 공개한 박창희 군은 서울대학교 의대에 수석으로 합격해 재학 중인 것으로 소속 학부는 전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수석 합격자들은 현재 학계, 법조계, 정계 등 다양한 분야에 분포 돼 있지만 대체로 어느 분야에 있든 대학 시절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며 사회에서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모습이다. 전공 자체의 특수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확실한 인생목표설정이 대입과 사회진출에 있어 가장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01/2009120100549.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 김묘성·강규혁 조선닷컴 비즈니스앤TV 기자 이성호 조선닷컴 비즈니스앤TV PD 입력 : 2009.12.01 10:48 / 수정 : 2009.12.01 13:33
82년 전국 수석 원희룡 "수능 결과는 인생의 초반에 불과"
▲ 원희룡 국회의원 1982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 1992년 사법고시 수석이라는 남다른 기록을 갖고 있는 원희룡 국회의원(한나라당).
원 의원은 비즈니스앤TV와의 인터뷰에서 수능 시험을 마치고 진로 선택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수능 결과는 인생의 초반에 불과하다”며 “인생은 길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뚝심과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원 의원은 “학생들의 학력은 매우 높아졌지만 손쉬운 선발을 위해 시행되는 획일적인 입시 제도가 학생들에게 잔인함으로 다가온다.”며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시각을 피력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고교시절, 원희룡 의원은 어떤 학생이었나?
A. 시골 중에서도 시골에서 제주도 제주시로 유학을 온 학생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놀기도 좋아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공부라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괴로운 것도 참고 공부는 좀 독하게 했던 것 같다.
Q. 목표를 세워 꿈을 이루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인가?
A. 우선 정말 빚쟁이한테 칼로 위협을 받아야만 했던 부모님을 뵈면서 가난에서 벗어나 넓은 무대로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겠다는 나 스스로의 절박감이 가장 컸다. 그리고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호기심과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기에 위대한 학자들이 존경스러웠다.
Q. 그러던 와중에 학력고사 수석, 사법고시 수석이란 기록을 세웠다.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떠했나?
A. 황당, 충격 그 자체였다. 제주도 시골 촌놈이 중앙 매스컴의 각광을 받게 되니까. 졸지에 ‘제주의 아들’이 됐다. 시간이 조금 흘러 대학에 와 보니 또래들이 나 때문에 많이들 스트레스를 받았더라. 부모님들이 “시골에서 수석이 나왔다던데…… 내가 너희에게 못 해준 게 뭐냐?” 그러셨다 하더라. 친구들이 나한테 분풀이를 많이 했다. (웃음)
Q. 당시 언론이나 주변에 밝힌 각오는 무엇이었나?
A. 그때는 명확했다. 법대를 지망했는데 사실 나는 학문을 하고 싶었다. 법사회학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당시 제가 알던 법사회학과 실제 학문과는 많이 달랐다.
Q.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라는 말이 있다. 원 의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돌이켜보면, 괴롭기도 했고 뭐가 그리 쉬웠겠나 싶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뭔가를 알아가는, 공부하는 재미는 알겠는데 입시를 위한 공부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얘기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적은 이 세상일에서 어느 정도의 숙련과 요령이 생기면 자기의 노력 이상만큼 나올 수 있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아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하지만 이는 공부가 가장 쉽다기 보다 인생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Q. 공부를 하다가 좌절을 느낀 적은 있는가?
A. 많다. 한 달 두 달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 앉아서 어금니 깨물고 엉덩이로 버티던 시절도 많았다. 특히 서른이 다 되어서 사법고시를 공부할 때는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나 하며 고민도, 세상과 내면에 대한 방황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을 많이 배웠다.
Q. 학창시절에 그나마 못하던 과목은 어떤 것이었나?
A. 그 시절 대학 본고사 문제가 아주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도 못 풀고 나도 못 푸는 수학 본고사 문제 때문에 사실 이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조금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수학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고교시절 성적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도 수학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Q. 그렇다면 사회 나와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A. ‘수석’은 ‘문제 푸는 것’에서 얻었던 칭호 같은 것이고, 사회나 우리 인생에서는 다른 것을 많이 필요로 한다. 공부는 잘했을지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변치 않는 인간관계,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것에서는 조금 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내 스스로가 ‘바보’라고 느낄 정도다. 흔히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이런 말이 명문대 출신들에게 많이 따라다니는데 그런 속성이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들으면 찔리고 가슴이 철렁한다.
Q.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당시 학창생활이나 사회생활, 나아가서는 정치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시선을 많이 받고 뭔가 특별한 사람일 것이란 선입관을 받기 때문에 그런 면 에서 거리감 같은 것이 있다. 어찌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혜택을 받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대가라고도 생각한다. 사실 내가 특별하다거나 별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좀 더 자연스럽고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걸 제 스스로에게 확인 시키려 한다.
Q. 현 입시제도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수험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궁금하다.
A. 나도 자식들 공부하는 것을 보지만, 사실 지금 우리 학생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공부의 양이나 수준은 우리 때보다 높은 것 같다. 그만큼 세계가 발전을 했고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정보가 많아져 학생들의 학력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풀이 식으로 가다 보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문제 해결 형 자기주도형 학습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학원이나 과외 위주로 흐르다 보니 자생력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객관적 기준을 토대로 한 시험이 학생 선발을 위해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사실 이는 잔인한 방법이다. 어느 한 순간 시험 문제를 잘 풀었다는 것이 학문에 대한 열의가 높다거나 사회 문제를 푸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입시의 형태가 지금처럼 획일적이고 잔인하지 않은, 학생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Q. 수능결과를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A. 수능 결과가 나오면 물론 횡재도 있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수능을 치르는데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중간평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담담히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필요할 거 같다. 물론 자기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주변과 의논을 잘 해서 진로를 잘 선택해야 할 테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것은 겨우 인생 초반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입시제도로 인한 프리미엄이나 불이익이 오래 가는 것이 문제지만 앞으로는 사회가 변할 것이고 지금까지의 중간 결산일 뿐 이고 앞으로의 인생은 길고 세계는 넓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 노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뚝심과 마음의 품이 넓었으면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01/2009120100657.html 김묘성·강규혁 조선닷컴 비즈니스앤TV 기자 이성호 조선닷컴 비즈니스앤TV PD 입력 : 2009.12.01 11:25 / 수정 : 2009.12.01 13:36
'試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과목 환산점수 (0) | 2009.12.06 |
---|---|
군복무 중인 사병들 의사고시 나란히 '합격' (0) | 2009.12.06 |
학습전략, 학습효과에 얼마나 영향 줄까 (0) | 2009.12.06 |
공무원임용시험계획 (0) | 2009.12.06 |
면접 (0) | 200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