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8. 17:43ㆍ法曺
[태평로] 판사와 성과급
봉급 경쟁이 재판독립 위협 사법부 독립 보수체계 필요
오늘(2008년 5월 27일) 고등법원 부장판사 밑의 전국 판사 2248명이 새로 생긴 성과급을 받는다. 15년 이상 근무한 판사는 380만원, 10~15년 290만원, 5~10년 230만원, 5년 미만 판사는 200만원씩이다. 수석부장, 재판연구관, 공보판사 같은 보직 판사들은 같은 등급 판사들보다 30만~50만원씩 더 받는다. 없던 성과급이 생겨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씁쓸해하고 있다고 한다.
판사들이 이 돈을 받기까지 많은 곡절이 있었다. 4년 전, 정부가 사법부에도 경쟁을 도입하려고 판사들 봉급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거절했다. 차등 성과급을 준다는 명목으로 판사들의 재판업무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판결문을 많이 쓰는 순서로 줄을 세울 수도 없고 상급심에서 깨지는 판결 숫자로 우열을 따질 수도 없는데 어떻게 판사들을 평가하느냐는 반발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마음도 있었다. 당시엔 총 봉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사정이 달라졌다. 해가 갈수록 공무원의 기본급 인상률은 낮아졌는데 성과급 인상률은 높아갔다. 판사들은 4년 동안 기본급만 받고 성과급은 받지 않았으니 봉급 인상은 거의 제자리였던 반면, 일반 공무원의 봉급은 계속 불어갔다. 최근에는 판사들보다 같은 직급의 일반 공무원 봉급이 더 많아지는 역전(逆轉) 현상까지 빚어졌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정부에 전하면서 봉급 차이를 없애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정부 측은 "판사들만 예외일 순 없다"며 "성과급 제도를 수용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라"고 했다.
이 지경이 되자 대법원은 올 들어 정부의 성과급 도입 요구를 받아들였다. 궁여지책이었다. 성과급 명목의 예산 115억 원을 받아 판사 평가는 하지 않은 채 근무 경력에 따라 나눠주고 만 것이다. 성과급 용어도 행정부가 쓰는 '성과 상여금' 대신 '직무 성과금'으로 했다.
좋은 게 좋다고 판사들 봉급이 올랐으니 좋은 일이라고 하겠지만, 곰곰 따져 보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들에게 성과급을 주라고 강요하는 행정부나, 판사들 봉급이 줄었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제도를 받아들인 사법부나 모두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성과급으로 경쟁시켜야 한다는 행정부의 발상(發想)부터가 놀랍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며 법관 독립의 대원칙을 밝혔다. 법관은 어떤 영향에도 흔들려선 안 된다는 선언이다. 그런 판사의 재판을 경쟁시키고 평가하면 독립이 흔들린다. 독립을 잃은 법관은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판사의 우열이 정해지면 국민이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질의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판사들도 인사를 놓고 불가피하게 경쟁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 경쟁이 최소화돼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법부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그랬을까. 법원이 내부적으로 판사들을 평가해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같은 인사에 활용해 왔으니, 이를 본 행정부에서 성과급 도입을 요구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법원은 또 봉급에 불균형이 생겼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소했어야 했다. 성과급이란 명목으로 예산을 받은 뒤 연공서열에 따라 나눠준 것은 변칙이었다. 돈 때문에 원칙을 버렸다는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사법부도 행정부가 배정하는 예산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법부 보수체계는 행정부와 다르게 운용돼야 한다. 법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을 위해서다. 판사들이 경쟁과 성과급을 의식하는 순간 법관과 재판의 독립은 흔들릴 수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6/2008052601475.html 김홍진·논설위원 mailer@chosun.com 입력 : 2008.05.26 22:05 / 수정 : 2008.05.26 23:11
'法曺'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사들도 "스펙(학력·경력) 쌓자" (0) | 2009.12.08 |
---|---|
서울가정법원 신한미 판사 (0) | 2009.12.08 |
변호사가 말하는 "재판장님 이것만은……" (0) | 2009.12.08 |
새 대법관… 양창수 교수 (0) | 2009.12.08 |
대법관의 세계 (0) | 2009.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