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나이 5종 세트'의 굴레

2009. 12. 9. 14:45職業

남중-남고-공대-군대. 오래 전부터 공대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여자를 만날 기회가 적은 공대생들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작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대졸자 취업정보’를 보면 근로자 30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한 대기업 취업률에서 의학계열을 제외하고 기계공학, 전자공학, 항공학, 전기공학 등 공학계열이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공대졸업자는 대기업 취업률이 평균 39.7%로 4년제 대학 전체 평균(27.5%)과 인문계열(21.1%) 및 사회계열(27.7%) 등의 취업률을 크게 웃돈다. 남자의 대기업 취업이 젊은 여성들에겐 매력적 조건임을 고려할 때 공대출신들의 ‘사나이 4종세트’는 대기업 취업과 함께 끝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이 ‘사나이 4종 코스’의 종착지로 ‘공장’과 ‘현장’이 떠오르고 있다.

◆ 대기업 취직하고도 헤어지는 커플

서울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모(여·28)씨는 요즘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박씨의 남자친구는 작년 말 대기업 계열 정유사(社)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의 대기업 입사에 크게 고무됐지만 근무지가 지방이란 점이 마음에 걸렸다.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박씨의 남자친구는 기술직으로 공장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은 주말로 한정됐다. 그나마도 일이 바쁠 때면 2~3주씩 못 보는 경우도 잦아졌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바쁠 때 주5일 근무를 하는 박씨가 지방으로 내려와 만나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남자친구 근무지가 KTX를 타고도 3~4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박씨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 박씨가 더 걱정하는 부분은 결혼이다. 결혼 뒤에도 남자친구가 서울로 올라와 근무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결혼 뒤 남자친구가 있는 지방으로 전근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지만 서울 근무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며 “어렵게 공부해서 합격했는데 기약 없이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홍보회사를 다니고 있는 유모(여·27)씨 역시 대기업계열 건설사(社)에서 일하는 남자친구와 3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유씨는 전국 각 지역 건설 현장을 돌며 일하는 남자친구와 지난 1년간 한 달에 1번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다. 가족과 떨어져 일하는 현장생활에 외로움을 많이 느낀 남자친구는 입사 초기부터 유씨에게 청혼을 해왔지만 그녀는 이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유씨는 1년간 고민하다 이별을 선택했다. 유씨는 “기약도 없이 평생 주말부부로 지낼 자신이 없다”며 “돈도 중요하지만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했다.

◆ 연봉은 최우수, 연애는 미지수

대학에서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한국전력계열 지방의 한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김모(남·34)씨는 3년째 솔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의 연봉과 복지, 근무여건은 그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는 김씨지만 근무지 때문에 소개팅을 받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입사 뒤 같은 학교 캠퍼스 커플이었던 여자친구와 2년 전 헤어졌다. 김씨는 고향이 근무지 인근이라 특별히 서울에 갈 일도 없다고 했다. 헤어진 여자친구와도 입사 초기에는 매주 서울에 올라가 만났지만 점점 그 횟수가 줄어 결국 이별하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결국 근무지 근처에 사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야 할 것 같다”며 “워낙 시골이다 보니 생각처럼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계열 자동차회사 지방 생산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모(남·30)씨도 2달전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윤씨는 “대학동기 중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면서 “문제는 대기업에 취직은 잘 하는데 수도권에 근무하는 비율은 전체 10%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심지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도 지방근무 때문에 고민하다 더 나쁜 조건의 수도권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공대생은 ‘남중-남고-공대-군대-현장-공장’의 ‘사나이 5종 세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30/2009073000851.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topheadline&Dep3=top 양희동 기자 eastsun@chosun.com 입력 : 2009.07.30 14:56 / 수정 : 2009.07.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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