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0. 17:33ㆍ職業
직장인 스펙 열풍 주춤 … 샐러던트의 딜레마
보상 예전 같지 않고 … 안 하자니 불안하고
승진 시험의 열기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못지않다. 지난달 8일 서울 필동 동국대에서 승진 시험을 치르고 있는 롯데그룹 임직원의 모습(왼쪽),시험장 밖에선 이 회사 직원들이 동료의 합격을 기원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제공]
#. 1
지난달 대기업 계열 화학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김모(34)씨는 지난 1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 한 외국계 정보기술(IT) 회사의 6년차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석사 학위를 따 더 나은 회사로 옮기겠다는 마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주거비와 학비를 합쳐 1억 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 공부하는 동안 받지 못한 급여도 5000만원이 넘었지만 투자라고 생각했다. 유학을 위해 4년간 교제해 온 여자 친구와의 결혼도 미뤘다. 그동안의 직장 경력과 미국 대학 학위만 있으면 재취업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는 올 9월 귀국한 이후 4개월간의 구직활동 끝에 대리 직급으로 겨우 입사했다. 희망하던 직종과도 전혀 다른 데다 연봉도 전 직장에서보다 1000만원 가까이 깎였다. 유학을 가지 않은 전 직장 입사동기들은 올가을 과장으로 승진했다. 김씨는 “그나마 20곳 넘게 입사지원을 하고 어렵사리 잡은 직장이라 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유학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2
국내 한 증권사 투자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김형준(31)씨. 그는 현재 미국 대학 MBA(경영학 석사학위) 진학을 목표로 주말마다 서울 강남의 GMAT(경영대학원입학시험) 학원과 도서관을 찾는다. 공부에만 매달 100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는다. 그도 MBA 자격이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요즘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MBA나 박사 학위 소지자가 100명 넘게 줄 서 있다”는 부서장의 뼈 있는 농담이 그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샐러던트(공부하는 샐러리맨)’ 열풍이 주춤하고 있다. 샐러던트들이 들이는 노력해 비해 보상은 확연히 줄었다. 늘어나는 샐러던트에 각종 자격증과 스펙(학점 등 입사 기본 조건)으로 무장한 신입사원들 때문에 석·박사 학위나 각종 자격증을 따와도 예전과는 ‘약발’이 확연히 달라져서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인 A사는 최근 마케팅 부서에서 일할 경력직원 두 명을 새로 채용했다. 두 사람 모두 30대 초반인 데다 출신 대학도 비슷했다. 그중 한 사람은 유럽의 유명 대학 MBA 출신으로 4년 넘게 제약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다. 다른 한 사람은 화장품 마케팅 분야에서 7년간 경력을 쌓았다. A사는 MBA 출신 지원자보다 쉼 없이 직장생활을 해온 사람을 뽑는 데 더 공을 들였다. 급여도 1000만원 정도 더 주기로 했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단순히 스펙을 더 많이 쌓았다고 돈을 더 주던 시대는 지났다”며 “우리가 중시하는 건 학위 유무가 아니라 해당 업무 분야 성과와 전문성”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4년 전만 해도 이직이나 임금 인상 등 적극적인 목적을 위해 공부하던 샐러던트들은 이제 현 직장에서 ‘수명’을 늘리기 위한 소극적인 목적으로 옮겨가고 있다. 2006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662명을 조사했을 때에는 ‘승진 및 연봉 협상을 위해 공부한다(20%)’고 공부 목적을 밝힌 이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올 9월 직장인 7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산업인력공단 조사에서는 ‘(현재 직장에서의) 업무 처리 능력 향상’을 꼽은 이가 71.3%에 달했다.
DBM코리아 강혜숙 이사는 “샐러던트의 위상이 약해진 것은 결국 MBA나 각종 자격증 소지자 등 우수 인력의 공급 과잉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은 맞춤형 샐러던트 선호
기업들도 MBA나 해외연수처럼 직원 개개인의 스펙을 높여주는 교육 기회를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업무 연관성도 높은 자체 교육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국내 유명 대학 MBA 과정에 재학 중인 니베아서울의 이수정 부장은 지난해 회사에 학비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업무 연관성을 근거로 들었지만 “실제로 업무에 활용되는 부분이 적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회사는 그에게 한 달간 유럽시장을 돌아볼 기회를 줬다.
롯데그룹은 다양한 사내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과목별로 6~8개월 정도 주말마다 강의를 열고 이를 직원 평가에 반영한다. 담당 업무별로 전문성을 높이려는 조치다. GE코리아 천두성 인사담당 이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을 교육할 때 투자한 것에 비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고 말했다.
◆“그래도 공부할 수밖에”
그럼에도 직장인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듯 국내 경영전문대학원의 입학경쟁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7년 상반기 2.7대 1에서 올 상반기에는 3.55대 1까지 올라갔다. 공부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직장인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2006년 커리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4%가 스스로를 샐러던트라고 응답한 반면 올 9월 산업인력공단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6.5%가 “직업능력개발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투자한다.”고 답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샐러리맨들은 장기적인 목표 수립이나 생존을 위해서라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http://office.joins.com/article/money/office/article.asp?total_id=3915152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2009.12.10 00:18 입력 / 2009.12.10 09: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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