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매봉산

2009. 12. 13. 13:21旅行

백두대간 속 백미 구간

⑥ 가수 인순이와 태백 매봉산

 

▲ 가을 내려앉은 해발 1000m 배추 평원, 노래처럼 싱싱하다

 

“이젠 ‘착한 인순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저 여전히 섹시한 여가수로 남았으면…”

해발 1000m 고지의 매봉산 자락을 뒤덮은 드넓은 배추밭. 이즈음이면 매일 이곳에서 배추를 수확해 서울로 보낸다.

○ 인순이는 예쁘다

이태쯤 전 ‘인순이는 예쁘다’란 제목의 TV 연속극이 있었다. 내용은 기억에서 가물거리지만 제목만큼은, 그리고 담당 PD가 하필이면 ‘인순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또렷이 기억한다. 온갖 역경을 딛고 꿋꿋이 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이름은 ‘인순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때 PD의 말이었다.

‘인순이’란 이름이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위로의 말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단 한 명만 머리에 떠오른다. PD가 아는 인순이와 우리가 아는 인순이는, 그래 한 명뿐이다. 흑인 혼혈로 태어나 숱한 굴곡 헤쳐 나오며 30년도 넘게 우리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그 여가수, 때론 흥겹게 때론 눈물겹게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그 목소리 말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인순이는 스무 살 때부터 집안의 생계를 떠맡았다. 그때부터 그는 노래를 불렀다.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꿈? 예술? 스무 살의 인순이에게 그건 너무 먼 얘기였다. 세월이 한참 흘러 먼 훗날 그가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래요 난 / 난 꿈이 있어요 / 그 꿈을 믿어요’라고 불러 젖힐 때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린 건, 인순이가 바로 그 꿈을 노래하고 있어서였다. 그는 노래를 부르지만 그의 노래를 듣는 우리는 삶을 생각한다.

그래서 인순이는 예쁘다. 아니 늘 고맙다.

○ 가을 문턱의 매봉산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제법 높다.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맵지만 우리는 높아진 하늘 아래서 가을을 기약한다. 이달의 백미대간 코스는, 그래서 진즉에 정해져 있었다. 매봉산 트레킹. 백두대간 그 긴 줄기 중에서 사람들이 기대어 사는 거의 유일한 산자락이다.

여름 내내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일대는 고랭지 배추밭으로 온통 푸르렀다. 해발 1303m 매봉산 정상 아래 130ha 기슭에 오로지 배추만 심어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발됐으며,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랭지 배추밭이다. 그 배추가 출하되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8월 23일) 즈음해 매봉산 배추는 출하를 시작해 추석 직전까지 출하를 마친다. 산 전체를 푸른색으로 뒤덮었던 배추가 뽑히고 난 뒤 매봉산은 붉은 흙을 드러낸 채로 겨울을 난다.

이맘때 매봉산에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른 아침부터 산에 사람들이 나와 있어서다. 산기슭에, 그러니까 경계가 가늠 되지도 않는 이 광활한 배추밭에 사람들이 온종일 허리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어서다. 한여름의 매봉산은 풍성하지만 사람이 없어 서먹하고, 한겨울의 매봉산은 한적하지만 배추도 없어 막막하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우리네의 모습은, 이맘때 매봉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귀한 장면이다. 매봉산은 산으로서 서 있지만 매봉산에 든 우리는 삶을 생각한다.

그래서 매봉산 동행은 인순이였다.

○ 첫 인상

인순이는 산행 전날 늦은 저녁 숙소로 정한 태백의 오투리조트에 도착했다. 전남 보성에서 TV 촬영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순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키를 묻자 “161㎝”라고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지요? 다들 그래요. 왜 그런지 몰라. 내가 TV에서 그렇게 크게 나오나?”

예의 그 활달하고 거침없는 말투였다. 그의 말대로 그는 너무 작았다. 왜 무대에서 그는 그렇게 커보였을까. 무대를 장악한 그의 카리스마 때문이었을까, 그의 목소리에 의지해 살아온 우리의 작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그는 일주일에 보통 10∼15건의 일정을 소화한다. 5월에 17번째 앨범을 발표했고, 곧 전국 투어 콘서트가 시작될 참이어서 요즘엔 더 바빠졌단다. 그래도 산은 꾸준히 오른다. 짬만 생기면 경기도 분당의 집 근처 산에 올라 체력을 키운단다. 나이는 오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체력은 30대 못지 않는단다. 작지만 다부진 몸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옷 맵시도 좋은 게 군살도 없어 보인다. 좌중을 휘어잡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강렬한 무대 퍼포먼스는 부지런한 체력 관리 없이 유지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인순이는 1957년생이다. 하나 1967년생이라 해도 속을 것 같다.

○ 산 또는 밭에서

오전 6시. 산행이 시작되는 삼수령에 도착했다. 해발 920m의 삼수령(三水嶺)은 여기에 떨어지는 물이 세 군데로 흘러내린다는 뜻이 봉우리다. 하나는 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들어가고, 하나는 낙동강에 합쳐져 남해로 빠지고, 나머지 하나는 오십천을 거쳐 동해에서 몸을 푼다. 삼수령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자 눈앞에 매봉산 자락이 훤히 드러났다. 아니 눈앞에 드러난 풍경은 산이라기 보단 배추밭이었다. 이 장쾌한 풍경 앞에서 인순이씨가 한 마디 던졌다.

“산에 온다고 하더니 배추밭에 왔네. 숲 헤치고 능선에 오르고 그래야 내 이미지에도 맞는 거 아닌가? 너무 시시한데요.”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인순이에게선 왠지 거친 이미지가 있다. 곱상한 외모로 예쁘게 노래를 부르는 여느 여가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가 잠깐 인기를 끌었다 쉬이 잊히는 가요를 부르는 여느 대중가수였다면, 굳이 이 매봉산 자락으로 그를 데려오진 않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먹고살기 위해 능선 1000m고지를 개간한 배추밭의 내력에 대해 들려줬다.

“무슨 얘긴 줄 잘 알겠어요. 하지만 요즘 난 이런 생각을 해요. 언제부턴가 인순이 하면 너무 올바른 가수가 돼 버린 거야. 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옳은 노래를 불러야 하고, 바른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돼 버린 거라고.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실수도 잦고 부족한 것도 많아요. 아니, 가수로서도 그래요. 여자 가수로서 요란한 의상 입고 화려하게 춤도 추면서 나도 노래를 즐기고 싶거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젠 '착한 인순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실제로 나는 착하고 바르기만 한 사람은 아니에요. 나는 그저 여전히 섹시한 여가수이고 싶어요.”

그는 산 안에서 바깥에 드러나는 이미지 때문에 겪은 갈등과 피로를 말했다. '착한 인순이'를 벗어던지기 위해 그는 이번에 내놓은 신곡에선 배에서 끌어올려 혼신을 다해 노래하는 '인순이 스타일'의 노래보다 목으로만 노래하는 빠르고 트렌디한 노래에 더 비중을 뒀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대중가수가 아니다'는 그의 철학에 따른 선택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사랑을 읊조린 트렌디한 노래보단 '인순이스러운' 아버지라는 노래를 더 좋아하네요."

'섹시한 여가수'와 '착한 인순이' 사이의 갭은 이렇게 쉽게 좁혀지지 않는 듯 했다.

○ 쓴소리 또는 애정 표시

“이거 싱아 맞지요? 세상에, 오랜만에 보네. 옛날엔 정말 흔했는데.”

“질경이는 꾹꾹 밟아줘야 하는데 여긴 사람이 잘 안 다니나 봐요.”

의외였다. 인순이는 길섶에 핀 야생화를 알아봤다. 나무나 풀이름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경기도 연천 한탄강 주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산과 들에서 뛰어놀며 꽃 이름과 풀이름을 자연스레 익혔던 것이다. 도시에선 구경하기 힘든 야생화 이름을 줄줄 읊어대는 인순이의 모습이 퍽 낯설었다.

능선 위에 올랐다. 매봉산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대형 풍력발전소 8대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풍력발전소 사이에 풍차 모형의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다. 태백시가 지어놓은 일종의 촬영용 시설이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던 인순이씨가 쓴소리를 뱉는다.

“안을 보세요. 온갖 쓰레기에다 청소도구도 아무렇게나 넣어놓고…. 안도 동화같이 예쁘게 꾸며놔야지, 이 예쁜 집을 보고 온 사람들이 안을 보고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인순이의 쓴소리는 하산 길에서도 이어졌다. 매봉산은 산악인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기점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바로 여기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매봉산 산행에 나선 산악회부터,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산악회, 낙동정맥을 따라서 올라온 영남 지방의 산악회까지 전국의 산악회가 이 매봉산 자락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등산로 옆에 늘어선 나무에 마구잡이로 자기네 산악회 리본을 매달아 놓은 꼴이 영 불편했던 것이다.

"아예 리본 매달 구조물을 만들던가 해야지 나무가 숨을 쉬겠어요?" '착한 인순이'는 그만 하고 싶다는 그는 이렇게 아무리 봐도 착한 인순이였다.

다시 삼수령으로 내려온 시각이 오전 10시쯤. 평탄한 코스였다고 하나 그래도 산길을 네 시간 걸었다. 인순이씨가 몸에 밴 땀을 식히며 밝은 얼굴로 소감을 전했다.

“인순이를 너무 만만하게 본 거 아닌가요? 백두대간에 간다고 해서 단단히 작정하고 왔는데. 이건 거의 산책 수준인데. 그런데 백두대간 종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했죠? 두어 달 걸린다고요? 한 번 도전해볼까?”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757104 week& 손민호 기자 2009.09.03 00:13 입력 / 2009.09.03 11:21 수정

[산행정보]

매봉산은 태백 시내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임계ㆍ강릉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삼수령에서 차를 내린다. week&은 매봉산을 빙 한 바퀴 도는 코스를 택했지만, 백두대간 산행은 매봉산 코스를 여럿으로 나눈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정선 방향으로 2시간 30분쯤 나아가면 week&이 6월에 소설가 공지영씨와 함께 올랐던 천상의 화원 금대봉에 다다른다. 숙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방자치단체(태백시)가 운영하는 오투리조트(www.o2resort.co.kr)를 추천한다. 033-580-7000. 식당은 강원도식 한정식을 내놓는 태백 시내의 정원식당(033-553-6444)과 40년 전통의 황지 식육점(033-552-2063)을 소개한다. 승우여행사(www.swtour.co.kr)가 이달 5, 6일과 12일 당일 여정으로 천의봉 트레킹을 간다. 삼수령∼매봉산∼비단봉∼용연골 코스다. 3만9000원. 02-720-8311.

[이달의 산행 Tip]

일교차가 심한 계절, 산에서는 날씨가 더 변덕스럽다. 이맘때 산행에 필요한 계절 아이템을 소개한다. 우선 바람막이 재킷. 초경량 바람막이 재킷은 가벼우면서도 보온 기능이 집약돼 있어 갑작스런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다. 낮에는 배낭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닐 수 있다. 페도라(중절모)나 캡 모자 등 챙이 있는 모자도 요긴하게 쓰인다. 햇빛 가리개 역할도 하지만 비가 이마로 흘러내리는 걸 막아준다. 스카프나 반다나도 햇볕을 막는 것도 요령이다. 날씨가 차가울 땐 목에 매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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