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심 사찰 새 전형… 부산 안국선원

2009. 12. 19. 13:40故鄕

'둥근 공간의 미학' 현대 도심 사찰 새 전형

[영성과 깨침의 보금자리 종교 건축을 보다] <37>부산 안국선원

① 장중하면서도 안온한 안국선원 법당. 천장 끝부분 양편의 창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 지혜의 눈'을 연상시킨다. 일부 사진제공=안국선원

② 안국선원 전경. 돔형 지붕에 원형 구조가 불교 사찰로서는 특이한 형태다.

③ 진입로 끝에서 만나는 뜰. 단아한 소나무가 고요한 가운데 선(禪)의 맛을 풍긴다.

④ 화려한 색채가 이색적이면서도 위엄이 있는 불단.

"저게 절이야? 비행접시 같은데?"

열한 살 난 딸이 그리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둥그런 외형에 돔(dome) 형식으로 불룩한 지붕이 꼭 비행접시처럼 보인다. 산속에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진 절만 보아온 아이는 도심 주택가에 자리 잡은 색다른 형태의 사찰이 기이하게 느껴졌나 보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안국선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연면적 6천778㎡, 지하 1층 지상 4층의 작지 않은 규모의 안국선원은 가운데 법당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 행원과 요사채를 둔 3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2005년에 준공됐는데, 그 특이한 구조가 현대 도심 사찰 건축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높이 18m 천장 가운데 솟은 돔, 사람을 감싸 안은 안온함 물씬

선을 구하는 수행도량, 우주적 기운과 사람의 기운 합치 염원

모든 게 둥글게 돌아간다. 지붕이 그렇고 벽체가 그렇고 법당 건물로 오르는 진입로가 또한 그러하다. 나선으로 올라가는 주 진입로가 끝나는 부분에 목재 데크가 놓인 뜰이 있다. 중정(中庭), 그러니까 가운데뜰이다.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곳인데, 소나무 두 그루가 단아하게 서 있다. 소나무로 인해 분위기가 묘하다. 고요한 가운데 텅 빈, 지극히 정적인 느낌이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이 참선(參禪) 도량임을 묵언으로 알려주는 듯하다.

중첩된 둥은 안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다. 복도와 계단이 둥글게 돌아가며 4층 법당으로 이어진다. 법당은 여느 사찰의 법당과 달리 둥근 공간이다. 높이 18m에 이르는 천장도 가운데가 둥글게 솟은, 거대한 돔으로 돼 있다. 장엄한데도 사람을 감싸 안는 느낌이다. 둥근 공간이 주는 이런 안온함은 다른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다. 경주 석굴암의 내부가 그랬다. 처음 석굴암의 안을 보았을 때, 불교의 가르침은 냉엄한 게 아니라 따뜻한 것임을 알았다.

천장 좌우 양편에 창을 내놓았다. 가늘게 뜬 사람 눈의 형상이다. 저런 눈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티베트나 네팔에 있는 스투파(불탑)에 그려져 있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 지혜의 눈'이다. 그림 대신 건축의 한 공간으로서 그런 지혜의 눈을 형형하게 밝혀 놓은 것이다. 안국선원에는 저런 지혜의 눈을 여러 곳에 포진시켜 놓았다. 법당 건물의 지붕이 그렇다. 타원의 전체 지붕 가운데 둥근 돔의 지붕을 이중으로 앉혔다. 외부 높은 곳, 위에서 보면 눈과 눈동자의 모습이다. 또 하나는 1층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계단의 연속선이다. 4층까지 중첩된 계단의 형태가 또 다른 눈의 형상을 보인다.

전면의 불단이 화려하다. 높이 6m의 석가모니 부처와 좌우에 4m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불상 위 닫집은 금빛으로 화려하고, 불상의 뒤에는 12m 높이의 입체 부조 형식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10대 제자를 비롯해 각종 보살과 여러 신 등 불국의 세계를 형상화 해놓았다. 그 형태와 어우러지는 색채가 여느 사찰의 것과는 다른데,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로 있는 청원 스님의 작품이다.

1천명이 앉을 수 있다는, 꽤 큰 법당인데도 밝고 환하다. 전면의 벽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기 때문이다. 유리벽의 곡선면은 절묘하게 햇빛의 하루 궤적에 맞춰져 있다. 낮 동안 시간에 따라 바뀌는 일광의 흐름에 따라 부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전에 없던 이런 형태의 사찰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에는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의 의중이 깊게 작용했다. 그는 일본 오사카예술대 가노 다다마사 교수에게 설계 자문을 구하면서 우주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합치될 수 있는 사찰 건축을 주문했단다.

그 까다로운 주문에 가노 교수는 중력의 개념으로 대응했다. 중력이라는 우주의 기운을, 양손에 실을 들고 가만히 놓았을 때 아래로 처지는 실이 자연스레 만들어 내는 곡선으로 형상화하면서, 그 아름다운 곡선을 원과 구(球)라는 건축적 설명으로 풀어놓았더니, 지금 안국선원의 모양새가 됐다는 이야기다.

중력을 말했지만 결국은 무중력의 묘미를 말했음이다. 중력에 거스르지 않는 무중력의 상태. 억지로 만들어 내지 않는 무위, 가득 찬 비움, 공(空)…, 그런 걸 연상케 한다. 비워져 있음은 언제나 편하다. 억지로 무엇을 얻으려 할 필요가 없고, 자기 가진 것에 안도하고 그에 맞게 수행하면 된다. 우주적 기운과의 합치는 결국은 우주적 기운을 거스르지 않는 것,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不二)을 몸으로 깨닫는 것일 테다. 수불 스님은 이 '불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불이(不二)와 하나(一)는 달라요. 무슨 모양이 있는 것이면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리란 꼭 집어 특정한 그 무엇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마음이란 것도 밖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름 붙인 것이지 딱히 그 무엇 하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선(禪)은 그 진리를 깨치는 것입니다. 안국선원은 그런 선을 참구하는 도량이구요."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091218000180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13면| 입력시간: 2009-12-19 [16:18:00]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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