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 09:53ㆍ職業
얼마 전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웬 점잖은 부인이 다가오더란다. “이 회사에 다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이력서 한 통을 내밀더라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우리 아들인데 이 회사에 들어가려면 이 정도 스펙으론 부족할까요?” 이력서에 기록된 그의 스펙은 탁월했단다. 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영어인증점수도 훌륭하고, 해외 연수도 다녀오고…. “왜 이런 훌륭한 스펙으로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더라고 했다. 그러자 그 부인은 깊은 한숨을 쉬며, “그런데 왜 자꾸 시험에서 떨어질까요? 어떤 스펙을 추가하면 유리할까요?”하고 묻더란다. 그리고 그 지인은 덧붙였다. “요즘 테헤란로에 이런 엄마들, 참 많아요.”
대학원 기숙사에서 일하는 선배에게서 들은 얘기다. 기숙사에 방이 비어서 대기자인 한 학생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리 해도 연결되지 않기에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 아버지는 지방 도시의 의사였다. 그를 통해 학생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아이가 지금 몹시 바쁘니 내가 올라가 수속을 하겠다.”고 하더란다. 학생이 직접 해야 한다고 했더니 통사정하는 말. “학원에 다녀야 하고, 방해할 수 없으니 제발 내가 하게 해 달라.” 그 선배는 “자녀가 스펙을 쌓는 동안 의사인 아버지는 기꺼이 생업을 덮고 달려올 기세더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와서 꽂힌 건 ‘그놈의 스펙’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이들은 스펙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고등학생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대학생들은 취업을 하려고 인증시험에 봉사활동에 사회경험까지 끝도 없는 스펙 쌓기에 나선다.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신나게 하는 일이라면야 더 말할 것 없이 좋은 일이다. 한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게 아니다. 아이 스펙 쌓기에 부모들이 신발끈 질끈 동여매고 나선다. 유능한 엄마들은 각종 인증시험 날짜부터 그 시험이 어떨 때 유리한지까지 빼곡히 꿰고 있고, 스펙을 높여준다는 학원 설명회에도 쫓아다니며 스스로 ‘정보의 원천’이 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도 있다. 3대 스펙이 맞아떨어져야 대학에 간다고? 물론 과장됐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http://news.joins.com/article/226/4091226.html?ctg=2002&cloc=home|list|list3 양선희 위크앤 팀장 sunny@joongang.co.kr 2010.04.01 20:48 입력 / 2010.04.02 0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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