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1. 10:37ㆍ健康
의외로 많은 공포증 환자
'나의 두려움이 기우(杞憂)란 걸 나도 안다. 이성적으로 쓸데없는 공포심에 떨지 말자고 다짐해도 막상 공포 상황에 직면하면 죽을 것 같이 두렵다. 너무나 두려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생활은 엉망이 된다.'
'공포증'의 족쇄에 묶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성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공포를 피하려다 죽음에 직면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최근 폐쇄공포증을 앓던 50대 주부가 출입문 수리 중 문이 잠기자 열린 베란다로 투신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정신건강의 날(4월4일)을 맞아 공포증의 정체와 극복법을 알아본다.
◆ 의외로 많다 = 외국 통계는 평생 유병률(평생 동안 병에 걸릴 확률)이 11%선.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많다. 국내에선 1년 유병률(1년 동안 병에 걸릴 확률)이 4.1%, 평생 유병률은 4.8%로 외국보다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 추적의 어려움 때문에 더 많은 공포증 환자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공포증은 노인이 될 때까진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줄어든다. 실제 국내 공포증 환자도 20대가 가장 많으며 50대까지는 감소한다. 그러다 신체 기능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결여되는 60대가 되면 또다시 환자가 증가한다.
◆ 개인의 경험도 원인 중 하나 =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개인의 타고난 성향이 관여된 것으로 본다. 실제 같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도 겁에 질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기는 이도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공포증 환자는 불안, 공포를 관장하는 뇌 부위(첨반)가 위기상황에 닥칠 때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공포증은 공포심을 잘 느끼는 사람이 만성적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개인의 경험도 중요하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개를 마당에서 키우던 우리나라에선 개에 물리는 경우가 흔해 개 공포증 환자가 많다. 반면 독거미의 피해가 잦은 미국에선 거미 공포증 환자가 많다.
◆ 다양한 공포 대상 = 공포심을 유발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공포 대상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개, 쥐, 고양이 등을 접할 때 나타나는 동물형과 높은 곳, 폭풍, 물 등 자연에 노출됐을 때 생기는 환경형과 비행기, 승강기, 개방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상황형과 혈액검사나 주사 맞는 일 등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혈액 주사 상처형 그리고 소리, 질식, 구토를 할 때 보이는 기타형 등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대상도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공포 유발 대상이 500종류 이상일 것으로 본다.
공포 대상이 같더라도 이유는 다를 수 있다. 비행기 공포증의 경우 추락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밀폐된 공간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도 있다.
◆ 인지행동 치료가 해결책 = 공포증 환자는 이성적으로 '내가 두려움에 떠는 것이 근거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인정을 해도 막상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에 직면하면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예컨대 어릴 때 개에 물리는 것을 계기로 개 공포증이 생긴 환자는 주인에게 안겨 있는 애완견만 봐도 온몸이 굳고 파랗게 공포에 질린다. 오 교수는 "공포증에서 벗어나려면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확' 바꾸는 인지행동 치료를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탈감각 치료다. 공포심이 불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공포자극에 조금씩 노출시키는 것이다. 환자는 '괜찮다'는 경험을 쌓으며 자신감을 갖는다.예컨대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라면 일단 개는 위험한 동물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때 아이가 믿지 않으면 치료자는 개와 같이 노는 것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 익숙해지면 치료자는 아이와 함께 개와 어울린다. 차츰 개에 노출을 증가시켜 궁극적으로 아이가 혼자 개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중앙일보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