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충격설… 한국사 해석

2012. 5. 24. 10:07歷史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외계충격설'로 한국사 해석

조선왕조실록·삼국사기 등 기록 토대로 천문학사 접목

"행성 폭발이 두려워 신라인은 불국사를 세웠다", "선사시대 암각화·고인돌 통일신라와 고려의 멸망… 모두 자연 재난이 원인"

'단군신화는 행성 등 외계(外界)충격의 공포가 낳은 천둥번개 신을 주제로 한 창세 신화의 하나였다. 울산 대곡리·천전리의 선사시대 암각화나 북방식 고인돌도 외계충격에서 비롯한 것. 불국사·석굴암·성덕대왕신종 같은 걸작들도 삼국통일의 영광을 기념한 것이라기보다 끊이지 않는 자연재난을 없애달라는 소망을 담은 조성물….'

한국사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담은 책이 나왔다. 저자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작은 사진). 22일 출간된 '새 한국사'(까치)는 선사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통사를 겨냥했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이례적이다.

◇ 역사서에 나타난 숱한 기상이변

우선 '외계충격'에 의한 장기 자연재난을 역사 분석의 중심에 뒀다. '외계충격'이란 소행성과 혜성 등 지구 근접 물체들이 대기권에 끌려 들어와서 공중 폭발하거나 지구 표면에 충돌하는 현상. 소행성이 대기권으로 진입하다 폭발, 지상에는 기상 변동이 일어나고 이것이 대규모 사회변동을 낳는다는 논리다. 1970년대 이래 서구 과학계에서 발달한 이론을 이 교수는 한국사 연구에 적용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우리 역사서에 기상 현상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사를 일국사(一國史)가 아닌 동아시아 지각 변동이라는 큰 틀 속에서 연동해 파악했다. 말갈-여진, 거란, 몽골, 돌궐 등 북방 유목민족들이 농경지대인 중국으로 남하할 때마다 동아시아는 요동쳤고 한반도에도 여진이 닥쳤다. 저자는 "외계충격 현상과 동아시아사의 파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토대로 '동아시아 맥락 속의 한국사'의 뼈대를 세웠다"고 말한다.

처음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1980년대 말. 유럽에서 17세기 소빙하기에 관한 지리학자의 연구를 토대로 역사학자들이 유럽 포도 수확량 격감 현상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같은 시기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들춰봤다. 놀랍게도 초여름인 5~6월에 눈이 오고 얼음이 얼었고, 하늘에 별이 떨어지고 큰 소리가 울린다는 기록들이 많았다. 당시 서양 천문학계에서 자리 잡아가던 외계충격설과 맞아떨어졌다.

이를 토대로 이 교수는 조선 중기의 혼란과 피폐는 유교 관념론에 빠진 사람들의 인재(人災)가 아니라 장기적인 자연재해, 곧 천재가 일차적 원인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고대 거석 유적도 외계충격, 즉 외계 물체가 대기권 진입과정에서 공중 폭발할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놀란 사람들이 피난처로 세운 것이라는 설이 제기된다. 사진은 세계문화유산인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 김용국 기자

◇ 장기 자연 재난기 견뎌낸 조선왕조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자연이상 기록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인류 역사 시대에 실재한 외계충격기는 기원전 3500~600년, 기원후 680~ 880년, 1100~1200년, 1340~1420년, 1490~1760년 등 다섯 시기로 파악됐다. 이 시기는 사회변동 시기와 일치했다.

이 무렵 통일신라와 대제국 당나라가 함께 무너졌다. 고려 시대 두 차례 외계충격기에는 여진족이 남하해 금나라를 세워 거란족의 요를 멸망시켰고, 고려에서는 자연재난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무신의 난이 잇따르면서 왕조가 바뀌었다.

마지막 장기 자연재난이 닥친 270년간 명에서는 반란이 속출하고 일본도 전국시대 혼란에 빠졌다. 북방에서는 여진족이 다시 남하해 명을 누르고 중원을 제패했다. 동아시아의 대혼돈 속에서 조선왕조도 숱한 고통을 겪었다. 이 와중에 조선왕조가 500년 가까이 유지된 것은 유교의 민본주의 힘이었다고 이 교수는 해석한다.

이 교수는 "실록이라는 좋은 자료로 우리도 세계 학계에 기여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 쓴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이화여대에서 열린 아시아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이 내용을 발표했다. '빅 히스토리'(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한 역사 설명)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매콰리대 교수는 "빅뱅(우주를 생성한 대폭발)부터 연구해 왔지만 오늘 들은 내용은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실록 같은 자료를 왜 빨리 공개 안 했나"라고 반문했다.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선사시대 공룡 절멸이나 유럽 중세의 산업혁명을 외계충격이나 기상이변과 연결시킨 연구는 이미 나와 있다. 이 교수의 연구는 우리 실록이 얼마나 훌륭한 자료인지 보여주는 좋은 시도"라고 했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3/2012052300715.html?newsplus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입력 : 2012.05.23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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