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理科의 계열 구분 바람직할까?

2013. 9. 16. 08:27敎育

[정성희 칼럼]문·이과 프레임 깰 때다

“테크놀로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입니다. 인문학과 결합된 테크놀로지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 사랑은 유별났다. 리드大에 다닐 때 수강한 서체(書體) 과목이 매킨토시 서체 개발에 영감을 준 일은 유명하다. 버튼이 하나뿐인 단순한 디자인의 스마트폰은 그가 한때 선(禪) 사상에 빠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에게 인문학은 혁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느낌이다. 인문학이란 성찰과 비판의 학문인데 그는 인문학을 자기 수양의 자양분으로 삼지 못했다.

잡스가 인문학을 내면화하지 못했다 해도 기술혁신의 바탕에 인문학을 두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추격형 경제에서 창조형 경제로 전환을 꿈꾸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재상(像)이 잡스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잡스 같은 인재를 길러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문·이과 분리 교육이다. 융합형 교육을 주창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문학 수학 과학 역사 음악 미술 등 과목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학생에게 가르치는 오늘날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현대사회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암흑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문·이과 분리의 기원은 일본이다. 개화기 일본이 대학을 세울 때 근대화의 필요에 따라 교양교육이 아니라 전공지식 습득에 무게를 두었다. 대학을 나온 전문가들은 근대화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부흥의 주역이 되었으나 나중엔 ‘창의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근본원인이 문·이과 분리에 있다는 반성이 나오는 이유다.

문·이과 분리 전통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대학들이 전공별로 학생을 모집하게 되자 고등학교도 입시제도에 맞춰 문·이과 분리 교육을 하게 된다. 일찌감치 심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이과 분리의 장점이 없지 않지만 삶의 목표와 적성이 뚜렷하지도 않은 아이들을 억지로 제도에 맞추는 폐해가 생겼다. 두부모 자르듯 적성이 뚜렷한 아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그 경계선상에 놓여 있거나 문·이과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분야에 속해 있다. 이 아이들을 기존 프레임에 밀어 넣는 것은 개인 두뇌의 낭비이고 국가 경쟁력의 잠식이다.

수십 년에 걸친 이런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심각한 단절을 낳았다. 과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퍼시 스노는 1950년대에 벌써 분리 교육이 가져온 심각한 폐해를 알아차렸다. 그는 “과학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인문학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둘 사이의 심각한 간극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추격형 경제에서는 문·이과 분리체제가 배출한 전문 직업인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날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쏟아지고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시대에 자기 분야만 파는 공부는 별 의미가 없다. 전통 지식이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새로운 지식혁명과 부가가치는 각기 다른 것을 섞는 ‘융합’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융합형 교육과정 도입을 검토했는데 정작 지난달 입시 제도를 발표할 때 문·이과 분리체제를 유지할 뜻을 비쳤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부담스러운 교사와 학습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학부모의 반발을 의식했을 것이다. 창조경제를 하려면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부터 길러내야 하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그 베이스캠프가 되는 교육 과정을 손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제도를 만든 교육 관료들 역시 창의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문·이과 분리 교육의 희생자라서 그런 걸까.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30913/57636600/1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기사입력 2013-09-13 03:00:00 기사수정 2013-09-13 03:00:00

[@뉴스룸/김희균]김도연과 김영란

교육과 과학 부처를 합치는 전례 없는 정부조직개편이 2008년에 이뤄지면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대 수장에 임명된 김도연 당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세계적인 공학자, 교과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이라는 이력을 보면 뼛속까지 이과생일 듯하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불과 48세에 대법관이 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여성 최초 대법관인 그는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탄 적도 있다니 전형적인 문과생 같다.

사실은 아니다. 1970년대 김도연 학생은 경기고 문과를, 김영란 학생은 경기여고 이과를 졸업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지금, 교육부가 대입 간소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이과를 통합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이후 이론적으로는 고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사라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 입시에서 문·이과 장벽이 엄격하게 남아 있다. 고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본인의 적성이나 진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평생의 진로를 결정할 문제다.

앞서 언급한 김도연 김영란, 두 명사도 고1 때 양자택일을 했던 것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학생은 고교 3년을 마친 뒤 다른 계열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 학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1970년대에도 고난도 본고사가 있어서 문과생이 이공大에 진학하려면 이과 수학을 공부해야 했다. 이 부분만 극복하면 예비고사나 내신 같은 걸림돌은 없었다. 지금은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학생부 지정 과목이,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응시영역이 문과생의 이공大 진학을 철저히 가로막는다. 이과생의 인문대 진학도 여의치는 않다.

두 명사의 사례는 대학 입시의 문·이과 장벽이 융합형 인재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던 김영란 전 위원장과 운동과 문학을 좋아했던 김도연 전 장관이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데에는 문·이과를 아우르는 통섭적 사고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최악의 입시 제도라도 안 바꾸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입 제도 개편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문·이과 장벽을 고집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수능에서 문·이과를 통합하지 않더라도 해법은 있다. 대학이 바뀌면 된다. 서울대가 2014학년도 입시에서 일부 이공계 학과에 문과생의 지원 길을 터놓았음을 다른 대학이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30911/57586356/1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기사입력 2013-09-11 03:00:00 기사수정 2013-09-1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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