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규명과 개혁

2013. 10. 24. 13:09一般

국정원 검찰 여야 청와대, 진상 규명과 개혁만이 답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가정보원은 1년 내내 정쟁의 중심에 서 있고 불의에 맞서야 할 검찰은 위아래가 편을 갈라 삿대질하기에 바쁘다. 민생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국회는 입만 열면 국정원 댓글 공방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 핵심 기관들의 이런 행태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가.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 자체가 민주국가의 정보기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정상 국가인 북한과 맞서고 있는 정보기관이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달고 트위터나 퍼 날랐다는 것은 비록 일부의 일탈이라 하더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군(軍)의 사이버사령부까지 선거에 끼어들었다면 더 큰일이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현 여주지청장)이 국정감사장에서 벌인 설전은 TV로 생중계됐다.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간의 의견 대립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부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검찰 지휘부가 먼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이번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국정원 댓글 의혹이 1년 가까이 질질 끌면서 심각한 국력 소모를 부르고 있다. 국정원 댓글은 이명박 정부의 일이지만 검찰 수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외압으로 축소되는 듯한 인상을 주면 박근혜 정부가 지난 정부의 잘못까지 뒤집어쓰기 쉽다.

검사들은 검찰 독립을 외치기 전에 뼈아픈 자성부터 해야 한다. 편을 갈라 싸우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줄을 댄 검사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수사팀장의 입에서 “검사장과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무슨 ‘외압’ 운운인가

검찰 개혁은 제도 개혁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물의 문제이기도 하다. 안으로는 경험 많은 지휘부와 의욕 충만한 일선 검사의 이견을 조정할 수 있고 밖으로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을 검찰총장이 나와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없어야 한다. 현직일 이유도, 사법시험 기수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게 정치다. 하지만 과연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어리석은 국정원을 감싸고, 무기력한 법무부를 두둔하고, 무능한 검찰 지휘부를 옹호한다. 지난해 새누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든 국민은 그러라고 표를 준 것이 아니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지난해 9월부터 대선 전까지 약 4개월간 300여 개의 트위터 계정으로 20만여 건의 글을 올렸는데 그중 5만5689건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정치 편향 글이 2000여 건에 불과하다느니,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글을 퍼 나른 것이라느니 하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 이런 태도로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국민의 의심만 키울 뿐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어제 “대선은 불공정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수혜자(受惠者)”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패배한 장수의 치졸한 변명 같아 듣기 거북하다. 진상 규명과 시정을 촉구하면 될 일을 왜 자꾸 10개월 전 결판이 난 대선 결과와 연결시키나.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1500만여 명이 인터넷 댓글이나 트위터 글을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당 일각에서도 ‘대선 불복’으로 비칠 만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10년간 집권 경험이 있고, 앞으로도 집권을 하려는 정당의 태도가 아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개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특정 정권에 책임을 떠넘길 사안도 아니다.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민주당은 국민의 기억력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도 도청을 일삼다가 임동원, 신건 두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당시 검찰의 독립성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말할 사람도 드물다.

더욱이 민주당은 경제가 걱정된다면서도 경제활성화 법안을 움켜쥐고 있고, 민생이 파탄 났다면서도 민생 법안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국정원 사건 수사와 재판은 검찰과 사법부의 몫이다. 국회가 의혹 제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려 민생을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정쟁에 매몰돼 있으면 풀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청와대가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입을 다물고 멀찌감치 피해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 전반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시작은 국정원과 검찰 개혁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에 빚진 게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댓글 사건의 진상 규명과 함께 국정원 개혁의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 국정원이나 검찰 개혁은 조직 내부에만 맡길 수 없고 야당을 배제해서도 안 된다. 박 대통령은 국가지도자연석회의 등을 통해 야당과 수시로 대화하겠다고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없는 작금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면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양보와 타협의 ‘통 큰 정치’는 대통령이 시작할 수밖에 없다.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31023/58420539/1 기사입력 2013-10-24 03:00:00 기사수정 2013-10-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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