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처전심(三處傳心)

2014. 5. 29. 12:17佛敎

삼처전심(三處傳心)

제일처전심(第一處傳心)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제이처전심(第二處傳心)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拈華微笑) 또는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제삼처전심(第三處傳心)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또는 니련화반곽시쌍부(泥漣河畔槨示雙趺)

불교의 선종에서 말하는 석가가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이야기로 불교의 조사선이 교외별전(敎外別傳)되었다는 근거가 되는 설이다.

첫째,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는 ≪아함경≫·≪중본경 中本經≫의 대가섭품(大迦葉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사위국 급고독원에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마하가섭이 뒤늦게 해진 옷을 입고 밖으로부터 왔다. 석가가 “잘 왔다 가섭이여.” 하면서 앉은 자리 반을 나누어주며 앉으라고 하였다.

대중은 “저 늙은 비구가 무슨 덕이 있기에 감히 여래의 자리에 앉으라 하는가?” 하고 이상히 여겼다. 석가는 대중의 의아해하는 마음을 살피고 널리 가섭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것이 첫 번째로 마음을 전한 것이라 한다.

둘째,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拈華微笑)는 송나라 오명(悟明)이 편찬한 ≪전등회요 傳燈會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영산회상에 계실 때 대범천왕이 금색 바라화(波羅花)를 올리는 것을 세존이 손에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일천대중이 다 망연히 있는데 오직 가섭이 얼굴을 탁 트이고 빙그레 웃었다. 이에 석가가 이르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실상은 상이 없는 미묘한 법문이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니련화반곽시쌍부(泥漣河畔槨示雙趺)는 ≪대열반경≫ 다비품(茶毘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열반에 드신 뒤 가섭존자가 먼 곳으로부터 뒤늦게 이르니 석가의 유체는 이미 입관되어 있었다. 가섭이 그 관 앞에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 어찌 벌써 열반에 드셨나이까?” 하고 호소하자 석가가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놓으며 광명을 놓았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들 삼처전심을 교외별전의 유일한 근거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조국사는 경절문(徑截門)을 세웠지만 삼처전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말의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지었다는 ≪선문보장록 禪門寶藏錄≫에서는 염화미소 등을 내세웠다. 또 조선시대의 청허(淸虛)는 ≪선가귀감 禪家龜鑑≫에서 “세존이 삼처전심(三處傳心)한 것이 선지(禪旨)가 되고, 일대소설이 교문(敎門)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또, <교외별전곡 敎外別傳曲>에는 ‘세존의 염화에 가섭이 미소’, ‘삼처전심(三處傳心)이 제1구’라는 표현이 있고, ≪선교석 禪敎釋≫에서는 ‘분반좌(分半座) 거염화(擧拈花) 시쌍부(示雙趺)’ 등을 들었다. 그 뒤로 선의 표치를 내세우는 데는 반드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백파(白坡)는 ≪선문수경 禪門手鏡≫에서 삼처전심을 조사선과 격외선(格外禪)에 배당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처전심 [三處傳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3383&cid=1620&categoryId=1620

달마대사(達磨大師)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제일처전심(第一處傳心)

달마스님의 출연으로 선종은 중국불교계에 차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후 선종의 세력이 확산되자 이에 달마스님을 시기한 교종스님들이 수차례 음식에 독약을 넣어 스님을 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독을 토해내며 그러기를 몇 차례 하는 와중에 혜가에게 법을 전하게 되고 그 후에는 스님 스스로 그것을 물리지 않으셨다. 여섯 번의 독살을 피한 후 일곱 번째는 인연을 따르기로 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법은 이미 혜가에게 전해졌고 이곳에서의 인연이 다했음을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내가 죽으면 이대로 짚신을 신겨서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여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앉은 자세로 열반에 드셨다.

그로부터 3년 후. 위나라의 사신 송운이 인도에 갔다가 오는 길에 촉륭고개(파미르고원)에서 달마스님을 만났다. 달마대사는 한쪽 신발을 주장자에 걸어 매고 인도를 향해 가고 있었다.(隻履西歸圖)

송운이 놀라서 물었다.

"대사님,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허허, 중국에서 인연이 다한 것 같아 고향인도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대 나라의 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구려."

스님과 헤어져 중국 땅으로 귀국하여 보니 위나라 명제가 세상을 떠나고 효장제가 즉위해 있었다. 양 무제를 만나게 된 송운은 그제야 달마스님이 입적한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 총 륭 고개에서 달마대사를 만난 이야기를 전하자 달마대사의 무덤을 열어보게 했다. 짚신 한 짝만 남아있는 채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빈 관 속에는 신발 한 짝 만 남아 있었다. 달마스님은 짚신 한 짝 주장자 끝에 매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제이처전심(第二處傳心)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 국왕의 셋째 아들로서 머리가 영특한 미남이었으며 지금 여러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고 한다. 법명은 Bodhi-Dharma이고 성장하여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하였으며 나중에 선종을 중국에 전달하기 위해 험한 천산 산맥을 거쳐 중국에 갔다. 어느 해 중국 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린 다음 인도를 다녀오는 도중에 첩첩 산중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끝에 겨우 뚫린 좁은 길에 코끼리보다 더 큰 짐승이 길을 막고 누워 막 숨을 거두려고 하고 있었다. 만일 그 짐승이 거기서 그대로 죽으면 천산 산맥의 길이 막힐 판국이었다. 달마는 재빨리 나무 밑에 자기의 육신을 벗어 놓고 혼만 빠져나와 그 큰 짐승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마치 차를 운전하듯이 그 짐승을 통행에 지장이 없을 만큼 길에서 멀리 옮겨 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 짐승의 몸에서 빠져 나와 자기 본래의 육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도승이 길을 가다가 문득 나무 밑의 혼이 빠져 나간 아름다운 육신을 보고 욕심이 나서 못생긴 자기의 육신과 몸을 바꾸어 버렸기에 도승의 육신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달마의 혼은 할 수 없이 그 못생긴 육신 속에 들어가서 중국으로 돌아 왔는데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과 행동 등이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달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옛날처럼 스승으로 잘 받들었다고 한다.

제삼처전심(第三處傳心)

중국 땅에 처음 선법을 전달한 달마대사는 선종의 시조로 그에 관한 일화가 많이 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간 것은 부처의 법 중에 선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려고 한 것이다.

선의 경지가 매우 높아서 생사의 경계를 초월해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예사로 해냈다고 한다. 달마대사가 천산 산맥을 넘어 인도에서 중국으로 갈 때 앞을 가로 지르는 강물을 만났다. 아무리 살펴봐도 부근에는 배도 없고 인가도 없었다. 그러나 달마 대사는 태연하였다. 그는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갔던 것이다.

중국의 선의 기원

선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크게 발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선은 중국화된 선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중국에 선불교가 전해진 것은 남인도국 향지왕의 셋째아들로서 인도 제27대 조사인 반야다라의 법을 이은 인도 제28대 조사인 보리달마대사에 의해서다. 달마대사는 스승으로부터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중국에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527년경에 바다를 건너 중국 남부의 광주에 도착하였다. 달마대사는 오랫동안 불교에 많은 후원을 하여 왔던 불교신자인 양나라 국왕 무제의 초청을 받고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짐은 즉위한 이래 수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출판하였으며 교단을 후원하여 왔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

"어찌 공덕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 공덕이란 인간과 천상의 속세에서나 필요한 덧없는 것이며, 그 과보 또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옹달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림자가 실재(實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실체(實體)가 아니듯이, 공덕 역시 허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참된 공덕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공덕이란 청정한 지혜의 완성에 있습니다. 지혜는 형상을 초월한 것이며, 공적(空寂)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그대가 말하는 성스러운 진리의 제일 원칙입니까?"

"진리는 크고 텅 비어서 조금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達摩廓然無聖)"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達摩不識)"

양 무제와의 대화 이후 달마대사는 형상에 집착하는 양 무제를 뒤로 하고 갈대 한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서(一葦渡江圖) 하남성의 숭산(崇山)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간 면벽(面壁)하여 수행하였다(達摩面壁圖).

어느 날 신광이라는 스님이 달마대사께 찾아와 법을 청하였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응답이 없었다. 신광스님은 밤새도록 뜰에 서서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 속에 꽁꽁 얼어 서 있으므로 달마대사께서 물었다.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나를 찾아 왔는가?"

"법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너의 믿음을 바치라."

신광스님은 지체 없이 예리한 칼을 뽑아 왼팔을 잘라 버리니 땅에서 파초 잎이 솟아나 끊어진 팔을 바쳤다. 신광스님이 후에 혜가스님이 된다(慧可斷臂圖).

이후 신광스님은 달마대사께 법을 구했다.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불안한 저에게 마음의 평안을 베풀어주소서."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러면 마음의 평안을 주겠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을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겠는가. 나는 벌써 그대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었느니라."

신광스님은 이 말씀에 크게 깨달았다. 신광스님은 달마대사의 법을 이어서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인 혜가조사가 되었다.

현재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화두(話頭)인 시심마(是什摩, 이 뭣꼬) 화두는 중국의 육조 혜능(慧能) 대사로부터 유래되었다. 혜능대사가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앞뒤도 없다.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어둡기로는 칠흑보다 더하니 이것이 무엇인고?"

또한 무자(無字) 화두는 조주(趙州)선사(778-897)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있다면 어째서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습니까?"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 때문이니라."

다시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했는데, 개에게는 어째서 없다고 하십니까?"

"개에게는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니라."

달마대사(527년경 중국에 도착)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선종은

2조 혜가(慧可, ?-593)

3조 승찬(僧璨, ?-606)

4조 도신(道信, 580-651)

5조 홍인(弘忍, 601-674)

6조 혜능(慧能, 638-713)

으로 이어져 이후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펼쳐졌다.

오가칠종이란 다음과 같다.

① 위앙종(潙仰宗)

혜능 - 남악 회양(677-744) - 마조 도일(707-786) - 백장 회해(720-814)의 법을 이은 위산 영우(771-853)와 그의 제자 앙산 혜적(840-916)에 의해 성립되었다.

② 임제종(臨濟宗)

백장 회해 스님의 법을 이은 황벽 희운(?-850)의 법을 이은 임제 의현(?-867)에 의해 성립되었다.

③조동종(曹洞宗)

혜능 -청원 행사(?-740) -석두 회천(700-790) - 약산 유엄(751-834) - 운암 담성(782-841)의 법을 이은 동산 양기(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840-901)에 의해 성립되었다.

④ 운문종(雲門宗)' 석두 희천 - 천황 도오(748-807) - 용담 숭신 (782-865) - 덕산 선감782-865) - 설봉 의존(822-908)의 법을 이은 운문 문언(?-949)에 의해 성립되었다.

⑤ 법안종(法眼宗)

설봉 의존 -현사사비(835-908) -나한 계침(?-928)의 법을 이은 법안 문익(885-958)에 의해 성립되었다.

위의 다섯 종파에 임제종에서 분파한 황룡파(황룡 혜남, 1001-1049)와 양기파(양기 방회, 996-1049)를 합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한다.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FC002&qid=0D8B8&q=%EB%8B%AC%EB%A7%88%EB%8C%80%EC%82%AC%EC%9D%BC%ED%99%94&srchid=NKS0D8B8

선문수경(禪文手鏡, 2012.09. 신국판 양장 180쪽, 12,000원, ISBN-13 : 978-89-7801-369-7)

백파긍선

한글본 한국불교전시를 펴내며

백파비白坡碑

선문수경禪文手鏡 해제

일러두기

1. 임제삼구臨濟三句를 그림으로 설명

2. 향상向上하는 본분本分의 진여眞如

3. 향하向下하는 신훈新薰 삼종선三種禪

4. 의리선義理禪 3구 게송

5. 3구를 도표로 표시

6. 의리선義理禪과 격외선格外禪의 구별

7. 말후구末後句와 최초구最初句의 구별

8. 신훈新薰과 본분本分의 구별

9. 죽임(殺)과 살려줌(?)의 구별

10. 원상설圓相設

11. 3성설三性設

12. 3구와 1구가 짝을 이루는 다섯 가지 경우가 다름

13.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하는 다섯 가지 경우

14. 『금강경』 4구게에 배당

15. 삼신三身을 세 가지 경우에 배당

16. 오분법신五分法身에 배당

17. 사홍서원四弘誓願에 배당

18. 좌선과 선정 등 네 글자에 배당

19. 문자를 세우지 않고 사람의 마을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아 성불한다는 달마 대사의 말씀

20. 달마의 삼처전심三處傳心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한 가지 법도 감정에 얽히지 않을 때 여래선을 터득할 수 있다.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이를 편케 해달라는 혜가 대사의 물음에 마음을 가져오라고 한 달마 대사의 대답이 나온다. 밝디 밝아 어둡지 않고 항상되는 앎을 깨닫는 것이 여러 부처가 전한 마음의 본체인 것이다. 이를 통해 조사선을 터득할 수 있다.

달마 대사가 때가 되었으니 자신이 얻은 바를 말해 보라고 했을 때 다른 제자는 말로 터득한 바를 보였지만, 혜가 대사는 예를 갖춰 세 번 절하고 일어섰다. 이에 달마 대사는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하면서 의발을 전했다. 이것이 바로 입실(入室)의 경지다. http://blog.daum.net/4855028/15968873

21. 선실禪室에서 하는 삼배에 대하여

22. 간당看堂틀을 열 번 치는 것에 대하여

23. ○

24. 『구자무불성화간병론拘子無彿性話揀病論』의 과목을 나누고 해석

25. 선과 교의 핵심은 '진공'과 '묘유',' '완전한 기틀'과 '완전한 작용'을 벗어나지 않음

번역을 마치면서

찾아보기

http://dgupress.tistory.com/57

http://www.sachalmall.com/sachal/mall.html?code=F0800243&doc=mall/detail.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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