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退任辭)

2014. 7. 16. 20:50寄稿

퇴임사(退任辭)

친애하는 교육동지, 후배 선생님,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

떠날 때는 말없이 흔적도 없이 떠나라 했는데, 그래도 그동안 한솥밥을 먹으면서 쌓인 정에 아쉬움이 남아서 일자 글월로 이임 인사를 하게 되었음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교에 부임한 것이 금년에 36년 6개월, 햇수로 37년으로 접어들어 이제 정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이 한자리에서 주마등처럼 한 찰나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돌이켜보건대 1970년대 유신의 시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와 사회적 혼란기를 거쳐서 요원의 불꽃처럼 번진 민주화 시대를 지나서, 지금의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 때까지 참 오랜 세월을 대신동과 괴정동 시대를 거치면서 2세 교육을 위해 영욕의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이제 동아고등학교에서의 연이 다하여, 26세의 사회 초년기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내 청춘의 전부를 받쳤던 이 자리를 떠나 새로운 연을 따라 제3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돌이켜보니 지나간 세월이 꿈같이 덧없는 한순간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잡아함경(13권 335)에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이라 했으니 풀이하자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입니다.

즉 유생무멸(有生無滅)이 모두 인연법에 따라 생주이멸(生住離滅)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니, 일체개공(一切皆空)이요,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니, 제법(諸法)이 무아無我)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란 존재에 집착하다 보면 모든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나”를 떠나서 진여(眞如)의 세계를 추구하면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복락의 세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무명(無明)”의 혼돈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진여(眞如)”의 세계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파계사(把溪寺)와 “갓바위” 인근의 경상북도 칠곡군의 팔공산 자락 가산산성 내에 있는 청정도량 “해원정사(解圓精舍)에서 당분간 머물면서, 어렵겠지만 못 다한 공부도 해보고, 원융무애(圓融無礙)의 행(行)을 실천하려고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저의 무지한 언행에 조금이라도 마음 상한 분이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진정으로 참회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직접 대면해서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옳을 줄 아나, 그러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지나가시는 길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베풀어주신 선생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니 가내에 경조사가 있으시면 꼭 연락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정들었던 동아고등학교와 그 가족 여러분들 건강과 발전 그리고 가정에 무한한 행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부처님 전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2014년 7월 21일

배흥득(010-5802-1463,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해원정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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