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성씨
2018. 2. 25. 05:46ㆍ姓氏
17세기까지도 성씨를 사용하지 못한 노비들이 전체 인구의 30~40%나 되었다. 이들 노비는 물론이고, 그보다 상위 계층이자 인구의 40~50%를 차지하던 평민들도 당시에는 족보와 거리가 아주 먼 사람들이었다.
17세기까지 한국에서는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사실상 양반들이 독점하고 있었으며, 권력과 특권의 상징물인 족보 또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17세기 이후 상업 자본을 축적했던 평민들은 족보의 위조를 통하여 양반의 권위에 타격을 주는 동시에, 실질적인 혜택도 추구했다. 즉 족보 위조를 통하여 자기들에게 부과된 군역(軍役)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당사자들에게 전통이 지닌 권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위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족보를 보유한 양반계층에서도 족보가 없는 사람들에게 족보를 팔아서 이득을 보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가세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실지 갑오경장 이후 노비들이 면천되면서 주인의 성씨를 받아나가서 독립한 경우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족보가 엄연히 있는 집안이라도 세력이 약한 부류들은 명문거족의 위세와 후광을 입기 위해서 자진해서 명문거족의 족보로 편입시키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왕이면 명문거족의 성씨는 더욱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필연적으로 더욱 대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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