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6. 17:45ㆍ敎育
"교정에 퍼지는 팔도(八道) 영재들의 사투리는 천당의 화음"
'數學의 定石'으로 상산高 키운 홍성대 이사장 "수학 잘하는 비법이요? 연필·종이로 직접 푸는 것", 세계최고 참고서 만들고 싶어 요즘도 '수학의 정석' 개정작업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어찌나 즐겨 읽었는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기자의 위편삼절은'수학의 정석(定石)'이었다. 읽고 풀고 베개 삼아 베고 자다 일어나 다시 읽고 풀다 보니 책이 걸레처럼 돼버렸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1000쪽 넘는 책 두 권이 거의 암기(暗記)된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입시 점수는 좋았지만 암기의 힘은 끈덕졌다. 요즘도 꿈속에서 기자를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로 몰아넣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1966년 8월 31일 나온 정석은 지금까지 3950만권 판매됐다.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이 어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그 손자가 다시 그 책을 사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내 4000만권 돌파를 앞둔 이 책의 판매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답은 전북 전주시 상산고에 있다.
16일자 조선일보에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가 보도됐다. 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같은 특목고(特目高) 일색 리스트에 유독 눈에 띄는 학교가 바로 상산고(象山高)다. 이 학교는 올해 서울대에만 36명, 연세·고려대· KAIST와 의·치학 계열 진학자 수까지 합치면 전교생(360명)의 60%에 육박한다.
상산은 저자 홍성대(洪性大·71) 이사장의 호다. 그의 고향인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코끼리 머리를 닮은 산(象頭山)이 있다. 고교 은사 장순하 시조시인이 그 산을 보고 '상산'이라는 호(號)를 40대이던 홍 이사장에게 내렸다. 홍 이사장은 '젊은 놈이 무슨 호냐'며 그 이름을 학교에 바쳤다.
홍 이사장이 바친 건 호(號)뿐이 아니었다. 정석으로 번 돈도 다 바쳤다. 지금까지 들어간 사재만 어림잡아 400억 원이다. 2만평 학교 부지를 덮은 노송(老松) 700그루부터 건물, 운동장에도 손길이 묻어있다. 서울 양재동 사무실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학교 설계도와 벽돌 샘플이었다.
그에게 기자는 선공(先攻)을 날려봤다. "정석이 좋은 책이라지만 다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한국인을 40년간 괴롭혀 부(富)를 쌓은 것 아닙니까." 수학의 신(神)은 즉각 대꾸했다. "질문이 논리적이지 않아요. 수학정석이 없다고 수학이 없어집니까? 문 부장 정석 공부 다시 해야겠는걸."
― 명문대 진학자 수로 학교를 판단할 순 없겠지만 대단한 성적입니다.
"서울대 36명, 연세대 86명, 고려대 76명, 카이스트 9명, 의·치학계에 85명 보냈습니다. 상산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할 때 굉장히 불리하죠. 일반고 같으면 1등급일 학생들이 내신 4~5등급을 받으니까요. 내신 불리한 것만 없어지면 서울대에 100명은 보낼 수 있을 겁니다."
― 불리한 내신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논술하고 면접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수능시험보고 며칠 벼락치기 논술 공부하는 식이 아닙니다. 1학년 때부터 준비해요. 지정도서 50권, 권장도서가 50권을 읽고 15명씩 조(組)를 짜 토론합니다. 책을 안 읽으면 토론에 참가할 수 없지요."
― 논술이 좋은 책만 읽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요.
"당연히 좋은 글 쓰는 훈련도 하지요. 글은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제자들이 첨삭지도 해줍니다.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면 초청해 특강하고 외국인이면 그 분야의 한국인 전문가를 부릅니다. 학생들 토론 수준을 보면 놀랄 겁니다. 이렇게 수련하면 나중에 학문하는 데도 사회 생활하는 데도 힘이 되지요."
― 상산고가 1981년 설립됐지요. 처음부터 이런 성적을 냈습니까.
"84년 첫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에 49명이 합격했어요. 당시 어느 방송국 기자가 거짓말이라며 뒷조사한 적도 있어요. 합격생 명단 들고 일일이 확인하러 다닌 거지요.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성적이 나빠졌어요. 교사들이 정성을 바쳐도 평준화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거지요."
― 수학의 정석으로 만든 학교이니 수학 공부도 많이 시키겠지요?
"제가 간섭은 하지 않아요. 다만 수학을 명문대 진학 수단으로 삼기보다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도구라는 말은 하지요. 상산고에는 1년에 한 번 주관식 문제만 푸는 경시대회를 엽니다. 주관식이다 보니 풀이 과정을 눈여겨봅니다."
― 지금 입시가 주관식이 아닌데 홍 이사장이 괜히 학생들 고생시키는 건 아닙니까.
"지금 수학교육이 엉망이 된 게 객관식 답 찍는 연습만 시켜서 그래요. 답이 틀려도 논리적으로 전개해 허점이 있는가를 봐야 하는데 유형만 공부하도록 시킵니다. 교육부는 주관식 출제하면 채점에 시간이 걸린다지만 전국의 수학교사 다 동원하면 이틀이면 끝납니다. 일본은 지금도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논리력을 키우니 뭐하나 만들어도 앞뒤가 착착 들어맞잖아요. 우리는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고 다음날 없어지잖아요."
― 수학교사가 13명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수학의 정석으로 공부하는 비율은 얼맙니까.
"그걸 알려 하면 이사장이 자기 책 팔아먹으려 한다는 소리 밖에 더 듣겠어요?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필요한 교재와 필요한 강의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 저는 왜 수학의 정석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논리적이기보다는 '미아리도사'처럼 천리안(千里眼)식으로 답을 찍게 된 걸까요.
"문제를 잘못 낸 거지요. 지금 입시는 2분에 한 문제 푸는 식이니 모양만 보고도 답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2차 방정식 기본식 알죠? ax²+bx+c=0에 a가 양수라는 조건이라면 무조건 1을 넣으면 이 답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경우가 종종 나와요. 그건 논리와는 관계없는 재주죠. 재주 통하는 문제를 낸 건 잘못된 출제죠."
그 때 홍 이사장은 불쑥 "문 부장! 시간을 내 상산고에 한번 다녀와요."라고 했다. 현장을 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홍 이사장에게 학교는 눈에 넣고 싶을 만큼 귀여운 손자인 것 같았다.
― 학생들을 참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 등교 모습을 보면 행복해집니다. 상산고에는 전북지역 할당(25%)만 빼면 전국에서 학생이 와요. 팔도 영재들이 사투리로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모습이 천당의 화음처럼 들려요. 경상도 학생이 전라도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예전에 상상이나 했겠어요? 지역감정이니 뭐니 하는 게 다 어른들이 만든 거지요. 최근에 부산의 학부모님이 기숙사 룸메이트를 토요일에 초대해 회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준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부산만 갔겠습니까? 다른 데서도 초청 받아 갔겠지. 이게 바로 교육의 지방화지요."
― 거의 모든 학생이 기숙사생활을 하지요?
"전교생 1080명 가운데 950명가량이 기숙사에 있습니다. 저는 방 배정도 지역이 고루 섞이게 해요. 3년간 그렇게 어울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죠."
― 저 같으면 학교를 만들기보다 그 돈으로 편히 살 텐데요.
"제가 책 한 권으로 성공했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받은 걸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제가 상산고 만들 때 대학을 인수하라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계산해보니 대학 인수는 제 능력을 벗어났어요. 그래서 고교를 만들어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인재를 뽑아 가르치겠다.'는 평소 열망을 실천했지요. 상산고가 자립형 사립고로 바뀐 것도 학생을 자율 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 사학에 대해서는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지요.
"과거 정권이 사학법 통과시키려 사학비리니 뭐니 나쁜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지요. 그래도 청렴도 순위에서는 사학이 항상 상위권에 듭니다. 사립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논리적으로 따져봅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뭘 가르칠 것인가, 영어인가 수학인가 논리인가 철학인가를 정해야지요. 방법도 스파르타식이냐 자율이냐로 갈립니다. 경우의 수 배웠죠? 5가지 방침에 5가지 길이 있으면 25개가 되잖아요. 그걸 놓고 학부모들은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건학(建學)이념은 생명과 같은 거요. 그런데 교육정책이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수립되니 사립학교는 위탁교육기관처럼 변질됐어요."
― 상산고를 자사고(自私高)로 만든 뒤 공부뿐 아니라 학교 시설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사들이 설명회에서 '상산고 교정이 한국의 100대 조경(造景)에 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뭐라고 했어요. 최고지 왜 100대냐고요. 제가 얼마 전에 운동장에 바닥을 깔았어요. 재료별로 견적이 7억부터 19억이 나왔어요. 저는 제일 좋은 참 고무로 했습니다. 스탠드 식으로 180명을 수용하는 102호 강의실 같은 곳은 서울대, 연·고대에도 없어요. 오디오 시설도 최고지요. 저는 학생을 위한 곳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 모든 걸 최고로 하는 모양인데, 자택은 어떻습니까?
"이거 인터뷰가 아니라 취조 같은데…. 내 집이 방배동인데 교사들이 한번 와서 이렇게 말합디다. '이사장님 집에 있는 소나무가 학교에 있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요."
― 상산고를 만드는 데 들인 돈이 얼마나 될까요.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학교 만든 지 27년이 됐으니 지금 금액하고는 다르지요. 상산고 터 가운데 일부가 시유지(市有地)여서 쌌어요. 지금은 시내 한복판이 됐지만요. 지금 이런 규모로 지으려면 1200억~1300억 원은 들 겁니다."
― 재산을 전부 학교에 쓰면 자녀들이 불평하지 않나요?
"아이들이 다 제 몫을 합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1남4녀인데 아들은 출판사 맡고 큰딸은 가정학과, 둘째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섬유공학 박사를 했고 셋째가 대학교수, 막내도 결혼했어요."
― 얼마 전 상산고 교감이 서울의 유명학원 원장으로 스카우트 됐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학원 벽에 붙은 걸 봤습니다. 돈 때문인 것 같은데 시설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교사들에게는 인색한건가요.
"교사들의 임금은 공립이나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나 다 같아요. 교사들이 고생하는데, 그래서 제가 교사들 앞에서는 늘 쩔쩔매지요."
― 상산고를 어떤 학교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까.
"영국의 이튼스쿨이나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처럼 만들고 싶은 희망은 있지요. 그런데 그게 우리 제도 때문에 잘 안돼요. 중국도 사립고에서 학생 1명 키우는 데 연간 1000만~2000만원, 영국은 1500만원, 필립스 아카데미 같은 데는 4만5000달러가 듭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450만원 내고 학교재단에서 150만원 냅니다. 외국과 경쟁이 안 되지요. 교육의 질은 뭐니 뭐니 해도 돈입니다."
― 그럼 돈이 없는 사람은 교육이 안 된다는 말입니까.
"여유 있는 사람은 많이 내고 없으면 장학금을 받아야지요. 아, 내가 문 부장에게 특종 하나 줘야겠다. 며칠 전 상산장학재단을 만들었어요. 성지출판사 사장인 아들이 이사장을 맡았어요. 아버지의 뜻을 잇겠다는 거지요. 1차로 15억 원 정도 약정 받았는데 모두 학생들에게 줄 겁니다. 대학에는 기부문화가 그나마 정착됐는데 고교에는 없었습니다. 상산고 졸업생들을 재단 이사에 많이 넣었어요. 그래야 선배가 후배를 돕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겠습니까."
홍 이사장은 7남매 중의 다섯째다. 고향에서 꽤 부유했던 살림이 홍 이사장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망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고교를 전주고 보다 통학이 수월한 이리 남성고로 정했다고 했다. 그는 "얼마나 가난했느냐'고 묻자 "3년간 거처를 15번이나 옮겼으면 알만하지 않느냐"고 했다.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가난은 따라다녔다. 검게 물들인 군복 한 벌에 끼니는 이곳저곳에서 '꼽사리'끼며 해결했다. 결국 과외를 하게 됐고 학생들에게 나눠준 프린트가 모인 게 수학의 정석의 모태(母胎)가 됐다. 그 너덜너덜한 프린트 책이 아직도 홍 이사장의 책장에 진열돼있다.
― 수학의 왕(王)은 수학을 잘 가르치는데도 왕일까요?
"일본에 과거 도쿄대 많이 보낸 고교가 있었어요. 그 학교 수학교사가 딱 한 명인데 이렇게 가르칩니다. 칠판에 문제 쓰고 학생들에게 '어떻게 풀죠?'라고 묻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부르는 대로 적기만 합니다. 한참 가다 보면 엉뚱한 길로 가죠. 교사는 그래도 침묵합니다. 다른 학생이 '네 번째 줄부터 잘못 됐습니다.'하고 지적해요. 그러다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한 문제도 못 풀면 다음 수업 때 다시 합니다. 맨 나중에야 노란 분필과 빨간 분필로 '이 과정에서 비약이 있으며 1점 감점…'하는 식으로 지적하죠. 그 교사가 한국에 있다면 며칠 못 가 잘렸을 겁니다. 우리는 척척 풀어주는 교사를 실력 있다고 보니까요."
― 자녀들이 모두 수학을 잘했습니까?
"잘 한 아이도 있고 못 한 아이도 있죠. 자식은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더군요. 셋째 딸(홍재현)이 서울대 수학과 교수인데 자기 동생이 모르는 수학문제를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그 아이가 아무 말 없이 동생에게 연필하고 백지를 내놓더군요. 묻기에 앞서 직접 풀어 보라는 거죠. 그게 수학을 잘하는 비법입니다. 셋째 딸은 제게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어요."
― 다른 비법도 있습니까?
"첫째가 반드시 연필과 종이로 풀어야 한다는 것, 둘째가 남에게 묻지 말고 혼자 힘으로 풀라는 것이지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라는 것은 과정과 계산을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연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루 한 문제를 풀더라도 금세 답을 보거나 남에게 묻지 말고 고민하다 보면 왜 공식이 필요한가를 절감하게 돼지요. 그 과정을 안 거치면 왜 공식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암기부터 합니다. 셋째는 복습보다 예습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습하면 자기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되고 강의 들을 때 들은 답이 몇 달씩 기억에 남게 됩니다. 넷째는 좋은 교재 선택하라는 건데 그건 정석 책 선전하는 것 같으니 그만 둡시다."
―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하루 한 문제 푸는 것은 심한 거 아닌가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요. 한 시간 내내 너희들 공부한 거 교실 문 나가자마자 다 잊어먹고 백지(白紙)상태가 된다 해도 교육효과는 본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따지고 생각한 게 공부지요. 대학까지 다 나와도 말을 횡설수설하는 사람이 있지요.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수학을 통해 훈련을 시켜야 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동안 수학 가지고 학생들을 들들 볶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는 그렇게 시켜놓고 시험은 객관식이니…. 교육부가 정신 차려야 합니다."
홍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을 6년에 걸쳐 구상하고 집필했다. 당시 국내에 변변한 수학 참고서가 없었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필 목표를 '소설보다 재미있는 수학'으로 정했다. 얼마나 고심했는지 첫 페이지를 쓰는데 만 한 달가량 걸렸다고 했다.
당시 그는 학원 강사로 하루 10시간 강의를 했다. 강의 끝나고 자투리 시간이 나면 한눈팔지 않고 책을 썼다. 새벽 3, 4시까지 집필한 뒤 잠시 눈을 붙이다 다시 강의하는 나날이었다. 그 때의 과로로 목 디스크를 얻은 그는 3년 전 대 수술을 받았다.
― 수학의 정석은 나오자마자 대박을 쳤나요?
"당시 제일 잘 팔리던 게 정경진 선생의 '수학완성'이라는 책이었어요. 1년에 6만부쯤 팔렸지요. 8월에 나온 정석은 4개월 만에 3만5000부가 나갔어요."
― '정석'이란 이름을 직접 붙였습니까.
"제가 취미가 바둑이에요. 한창 때는 1급하고 지고 이기고 했어요. 거기서 딴 이름입니다."
― 학원에서 직접 학생들 가르친 건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1962년부터 정확히 10년간 학원 강사를 했습니다. EMI학원, 종로학원 같은 곳에서요. 당시 서울대 수학과 출신 강사가 저를 포함해 2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도 봤지요. 유명인사 중에 그 때 학원 강사 한 분들이 많아요.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 같은 분은 영어를 가르쳤고 성문종합영어의 저자인 송성문(宋成文)씨도 가끔 만나곤 했지요. 지금은 어디 있는지 연락이 끊어졌지만. 당시 강사했던 인연으로 '한맘회'라는 친목단체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모임이 계속됩니다. 회원이 150명쯤 됩니다."
― 정석이 대박 나니 가난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까?
"학원 강사 그만 두고 보니 남는 건 수유리의 50평 집밖에 없었어요. 당시 학원 강사 급료는 학생 수에 따라 받았어요. 인기강사가 있으면 그렇지 못한 강사도 있지요. 그 사람들 못 본 체할 수 없지요. 아이, 그 얘긴 그만합시다."
―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는 책에만 전념했나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수학참고서를 만드는 데 전념하자고 마음먹었죠. 지금까지 6번 정도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중간 중간 개정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오해를 사요. 처음에 매년 개정하니 홍성대가 새 책 팔아먹으려고 자꾸 개정판 낸다 뒷말을 하는 겁니다. 열성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거죠."
― 한때 수학의 정석이 아예 일본 참고서 베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홍성대가 자기 능력으로 쓴 게 아니라 번역했겠지 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뒷말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어요. 한 페이지라도 똑같은 걸 찾아내면 상금을 준다고요. 화가 나 한 소리였지만 각국의 서적을 다 참조하고 제가 창안한 주옥같은 문제들입니다. 정석에 있는 문제 80%는 제가 다 새로 만든 것들입니다. 나머지는 다 각국의 문제집과 수학올림피아드 기출문제를 변형한 거지요. 지금 문 부장과 이야기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문제 하나가 생각났어요."
― 외국의 고교 수학 수준은 어떤가요.
"러시아가 제일 어렵고 중국은 문제해결의 접근방법이 우리와 다르죠. 미국은 실생활과 연관된 문제가 많아요. 이를테면 휘발유 1ℓ가 얼마인데 가격이 오르면 하는 식입니다. 보편타당성으로 보면 일본이 제일 낫지요."
― 지금도 개정 작업을 한다면서요.
"제가 직접 하지요. 그런데 이제는 입시경향에는 신경을 안 써요. 입시는 해가 가면서 수준도 달라지고 경향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원리에 충실하자, 알토란같은 문제를 많이 만들고 많이 모아 책에다 실어줌으로써 누가 출제 하더라도 정석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해주자고 마음먹었어요. 패턴과 경향이라지만 인수분해 같은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 고교생이 풀어야 할 수학의 정석이 모두 3권이지요. 다 합치면 1000문제가 넘을 텐데 지금도 다 풀 수 있습니까?
"왜, 시험 보시게?"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연히 다 풀 수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척척 풀어내는 게 아닙니다. 하루 만에 풀 수도 있고 이틀 만에 풀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하자 없이 잘 전개했느냐 꾀를 냈느냐는 거지요. 과거 서울대에서는 자기가 다 맞았다고 생각한 시험에서 빵점을 주기도 했어요. 답만 맞고 논리적이지 않을 때 그런 점수를 받는 거죠."
― 정석으로 지금도 돈을 많이 벌고 있죠. 1년에 얼마나 버십니까.
"제가 출판사를 주식회사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다 넘겨줬어요. 나는 인세만 받아요. 그게 얼만지는 통장 봐야 아는데, 권당 인세가 9%쯤 되나?"
― 홍 이사장의 생애를 반추해보면 젊은 시절 고생한 것 말고는 내내 성공의 길만 걸은 것 같습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진기(盡己)라고 최선을 다한다는 말과는 뉘앙스가 다른데요, 저는 온 몸을 던져서 완벽하게 성공시킬 자신이 없으면 시작을 안 합니다. 결벽증 비슷한 겁니다. 제가 겉멋만 들었더라면 상산고도 실패했을지 몰라요. 무언가 뜻을 이루려고 만든 학교인데 돈이 없거나 다른 불행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26/2008092600966.html 문갑식 기자 gsmoon@chosun.com 입력 : 2008.09.27 03:30 / 수정 : 2008.09.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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