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은 말한다

2009. 11. 26. 19:25常識

“글씨 오른쪽을 살짝 올려 쓰세요. 삶이 긍정적으로 바뀔 겁니다.”

『필적은 말한다』 펴낸 구본진 법무연수원 교수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1988년·30회)에 합격했다. 20년 가까운 검사 생활의 대부분을 조직폭력·마약·살인 등 강력범죄 수사로 보냈다. 수많은 범죄자·증인·목격자·참고인을 만나면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거짓으로 둘러대는지 밝히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피조사인들이 쓴 진술서, 사건 관계자의 자필 문서를 내려 읽다가 어느 순간 그는 깨닫게 됐다. 글씨가 글쓴이와 너무도 닮아 있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모으는 게 좋았다. 그에게 수집이란 알려지지 않은 가치를 밝히는 ‘창작’이었다. 우표를 수집했고 커서는 그림에 관심이 갔다. 경제적 현실과 사회적 의미를 감안해 컬렉션 대상으로 마음먹은 것이 간찰(선인들이 주고받던 편지)이었다. 항일지사들의 행적을 찾아다니던 송상도 선생이 남긴 글을 무심코 첫 작품으로 구입하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 그게 10년 전이었다.법무연수원 구본진(부장검사·44) 교수는 그 10년간 인생을 두 배로 살았다. 수사 검사로서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글씨를 찾아 나섰다. 주로 항일지사가 남긴 글들이었다. 그는 ‘글씨 수사관’을 자처했다.

글씨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했고 재료와 도구, 제작 시기, 함께 나온 자료, 출처 조사에 필적 대조·분석까지 꼼꼼히 따졌다. 역사 인물들이 남긴 글씨에서 그들의 인격을 추출할 수 있게 되면서 필적과 사람 성격의 연관성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쓴 글씨를 보면서 어느새 글씨만으로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관상보다 필적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행동이나 심리분석을 통해 범죄자를 찾는 프로파일링 기법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지만 필적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일천한 상황입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유럽에서는 ‘필적학(筆跡學·Graphology)’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소개했다. 글씨를 쓸 때 머리에서 손과 팔의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해 선·굴곡·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이 내적 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원리다.

독일의 필적학자 T 프레이어는 “필적은 뇌의 흔적”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필적으로 남녀·나이·취향·지식 정도 등 다양한 성격을 분석,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2001년 탄저균이 든 편지로 네 명이 살상된 사건을 보자. 당시 FBI는 범인의 간단한 편지 글에서 “성인 남자로 예측됨, 타인과 별로 접촉하지 않는 직업군, 상당한 과학지식을 보유한 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테크닉이 부족한 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결과를 도출, 미 육군전염병연구소 세균 전문가 브루스 아이빈스 박사를 지목했으나 그가 기소 전 자살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된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글씨의 어떤 특징이 성격을 구분하는 것일까. 구 검사는 글씨의 크기, 형태, 곧음과 굽음, 각진 여부, 글자 간격, 행 간격, 규칙성, 쓰는 속도, 정돈성 등을 꼽았다. <그래픽 참조>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글자의 가로 배열이 수평을 유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수평을 유지하며 쓰는 사람은 절제력이 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위로 올라가면 낙관주의자인 경우가 많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면 비관주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최초의 검사인 이준 열사가 쓴 글. 충직함과 소박함이 어우러져 강직한 기개가 느껴진다. 50 x 138 cm.

그는 “이번에 공개된 글씨를 통해 정조를 분석하자면 내면적으로 곧고 강한 사람”이라며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잘 쓴 글씨에 속하는데, 판단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좋은 글씨의 조건으로 ▶ 균형 잡혀 있고 ▶ 읽기 쉬우며 ▶ 힘이 있고 끝마무리가 확실할 것을 꼽았다. 반면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글씨가 둥글둥글하고 글씨 크기와 간격도 들쑥날쑥하다고 했다. 그는 “검사 생활 20년간 범죄자부터 오피니언 리더까지 만나 글씨를 보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글씨를 깨끗하게 쓰더라.”고 덧붙였다.

10여 년간 수집한 1000여 편의 간찰 중 항일운동가 400여 명, 친일인사 150명의 편지 글을 분석하면서도 그는 마찬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항일운동가들의 글씨는 작고, 정사각형으로 반듯하며, 각지고 힘찬 것이 많죠.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죠.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은 떨어집니다.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가 각각 어떤 전형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이 같은 분석을 담아 그는 최근 『필적은 말한다-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중앙북스)을 발간했다. 이승만의 절제와 박영효의 일탈, 김구의 졸박함과 이완용의 교묘함, 이준의 웅혼함과 조중응의 경박함 등을 자세하게 비교했다. 글씨에서 ‘사람’을 본다는 그는 글씨를 활용할 방안이 적지 않다고 했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착실하고 꼼꼼한 사원이 필요한 경리 분야라면 작고 또박또박 쓰는 사람을, 재치와 융통성이 필요한 영업사원이 필요하다면 큼직하고 유연하게 글씨를 쓰는 사람이 적임이라는 지론이다.

“캐릭터(character)가 선천적 성격이라면 퍼스낼러티(personality)는 후천적 성격입니다. 후천적 성격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이죠. 미국의 필적 컨설턴트 바트 바겟은 글씨 연습을 한 달 정도 하면 효과를 보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성격을 고치려는 분들께는 글씨 연습을 권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집중력 향상과 인성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도 몇 년 전부터 서명도 바꾸고 틈틈이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당신은 뭘 믿고 그렇게 낙관적이냐’고 할 정도인데, 생각해 보니 수사가 잘 안 풀려도 ‘잘될 거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또 잘 풀리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열 살 먹은 아이와 그 친구에게도 글씨 연습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충동에 약하고 내면정리가 안 돼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에게 좋은 수양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ㅁ’자 하나만 잘 마무리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왕희지나 안진경은 직업적으로 글씨 쓰는 사람이 아닌, 학자이자 관료였지만 명필로 불리고 있습니다. 많이 쓰기만 한다고 명필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죠. 글씨는 단순한 미술이 아닙니다. 우선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야 하고 그런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글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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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 크기

크기는 자기 이미지를 드러낸다. 큰 글씨는 은연중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다. 말이 많고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용감하고 열정적이며 남에게 관대하다. 하지만 자기 과시를 좋아하고 주의력과 절도가 느슨하다는 단점도 있다.

작은 글씨를 쓰는 사람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내성적이며 보수적이다.

◇ 글씨 형태

글씨를 처음 익힐 때는 정사각형에 반듯하게 쓰도록 배운다. 흐트러짐 없이 쓴다는 것은 규율과 도덕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 곧음과 굽음

글씨의 유연성은 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곧고 일정하게 움직였는지, 글자 모서리에 각이 있는지, 모가 났는지, 획이 꺾어지면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등으로 판단한다. 특히 각은 의지의 표상이다. 각진 글씨를 쓰는 사람은 빈틈없고 엄격한 실용주의자다.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이고 유머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 글자 간격

필적학에서는 마음이 넓은 사람은 글자 간격을 넓게 주고, 마음이 곧고 내성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은 글자 간격이 좁다고 평가한다. 글자 간격이 좁은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자기표현과 자기 인식이 엄격하다. 반면 자간이 넓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외향적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강하다.

◇ 행 간격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사려 깊고, 절약할 줄 아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 행 간격이 넓다. 반대로 판단력이나 자의식이 부족한 사람은 좁은 행 간격을 유지한다.

◇ 규칙성

글씨의 모양과 크기, 글자 간격, 행 간격에 일정한 규칙이 있는지가 주요 포인트다. 들쑥날쑥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고 일을 계획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특히 상습 범죄자들은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

◇ 글씨 속도

글씨 속도는 생각이나 행동의 속도와 유사하다. 느리게 쓰는 사람은 임기응변에 약하고 관습적이며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완벽주의자일 경우가 많다. 빠른 속도로 글씨를 쓰는 사람은 활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정보를 빨리 입수하는 능력이 있다. * 자료 =『필적은 말한다』중 http://news.joins.com/article/3524574.html?ctg=1700 글 용인=정형모 기자 · 사진 최정동 기자 2009.03.10 11:18 입력 / 2009.03.10 11: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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