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소설

2009. 11. 28. 15:45文化

[가상소설(복거일作)] 분노가 솟구쳤다… 왜 면접을 영어로 보는 거죠?

문이 닫히자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가슴을 펴서 굳은 몸을 의식적으로 풀었다. 그 사이에도 마음은 4분의 1이 채 못되는 합격 확률을 생각하고 있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25명인데 응시자 사이에 도는 소문에 따르면 회사는 이번에 대여섯 명을 뽑을 예정이었다.

‘내가 그 4분의 1 속에 낄 가능성은 많지 않겠지. 방송대 출신이…. 남들은 지방대학을 나왔다고 걱정하는데 나는 그보다도 불리한 처지니….’ 실망이 크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씁쓸한 웃음을 얼굴에 올렸다.

그는 이미 열네 번이나 떨어진 터였다. 그러는 사이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상처를 덜 입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문제는 늘 면접시험이었다. 열네 곳 가운데 서류심사나 필기시험으로 치르는 1차시험에선 여덟 번 합격했다. 그러나 번번이 면접시험에서 걸렸다. 빈약한 영어 때문이었다.

그가 나올 만한 질문들에 대한 영어 답변을 다시 마음속으로 정리하는데 문이 열리고 3번 응시자가 나왔다. 좀 핼쑥하게 굳었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 먼저 그의 눈에 들어왔다.

“4번 김경수씨, 들어가세요.”

긴장된 마음을 풀려고 애쓰면서 그는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표시된 자리에 서서 시험관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시험관은 셋이었다.

“김경수씨?” 가운데 앉은 사람이 영어로 확인했다.

“예, 저는 김경수입니다.” 자신의 영어 발음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덜미가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험 번호가 4번이죠?”

“예.”

“동양에선 ‘사’라는 숫자가 ‘죽을 사’자와 음이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꺼리는데, 4번을 배정받고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의 마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하고서 그는 떠듬떠듬 영어로 답변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번호표를 받아들었을 때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사’를 기피하는 일은 순수한 미신입니다.” 다음엔 ‘죽기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살 수 있다는 옛 말씀을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습니다.’라고 얘기할 작정이었는데 그 얘기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내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마음이 흔들리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에서 영어 낱말들이 모두 지워진 듯했다.

“오늘 여기 오는데 무엇을 타고 왔습니까?”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하철을 타고 왔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험관은 그가 애초에 하려고 한 대답을 다 한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자신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이마에 땀이 많이 났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스쳤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그는 자신의 빈약한 영어 실력을 씁쓸한 마음으로 생각했었다. 그의 빈약한 영어는 그가 고를 수 있는 회사의 범위를 크게 좁혔다. 그가 의정부에 있는 이 작은 식료품 회사를 골라서 응시한 까닭도 따지고 보면 빈약한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영업하는 기업이니 영어실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런 얘기를 이 자리에서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하철에서 한 다른 생각들을 더듬었다. 그러나 시험관들에게 할 만한 얘기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그 시험관의 표정이 바뀌었다. 흥미롭게 그를 살피던 시험관의 눈길에 가벼운 경멸이 섞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느낌에 당황하던 그의 마음이 아예 얼어붙었다.

혼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험관이 물었다. “외국에서 산 적이 있습니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없습니다.”

“그러면 외국에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2020년대의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치고 외국에 어학연수라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그말고는 없을 터였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대답을 입 밖으로 밀어냈다.

“없습니다.”

‘제가 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올 처지였다면 애초에 방송대가 아니라 이름난 대학을 다녔을 겁니다.’ 그는 속으로 덧붙였다. 한국어로.

“됐습니다.” 그 시험관이 옆에 앉은 시험관들을 돌아보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가슴이 무엇에 눌린 듯 무거우면서도 텅 빈 듯 허전했다.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느닷없이 분노의 검붉은 불길이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절망감을 뚫고 솟구쳤다. 그는 거센 몸짓으로 돌아섰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왜 면접을 영어로 해야 합니까?”

시험관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 쳐다보았다. 옆에 조용히 서있던 한 직원이 급히 다가서면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직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그는 외치다시피 말했다. “자랑스러운 우리말이 있잖습니까?”

“영어로 면접을 하는 건 영어가 세계의 표준언어이기 때문이에요.”

왼쪽에 앉은 여자가 나직하나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 세계의 한 부분이고요.”

그녀의 얘기가 조리가 있고 말씨가 단단해서 그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분노의 불길이 무력감에 잦아드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면 누구도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죠?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직원이 영어가 서투르면 우리 회사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없어요. 그래서 영어로 면접을 보는 거예요. 자신의 영어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어설픈 애국심 뒤로 숨지 말고 영어를 열심히 배우세요.”

경수는 컴퓨터 화면에 뜬 글을 건성으로 살폈다. 아까 면접시험 장면이 아직도 마음을 차지해서 쓰는 글에 마음이 모아지지 않았다.

‘어설픈 애국심 뒤로 숨지 말고….’ 아픈 이를 혀로 쓰다듬듯, 그는 여자 시험관의 야무진 충고를 다시 새겼다.

할머니와 지낸 어릴 적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기억들이 마음을 스쳤다. 할머니는 원당의 길거리에서 좌판 장사를 했다. 아들이 공사판에서 일찍 죽고 며느리는 재혼해서 떠난 뒤 할머니는 그를 혼자 길렀다. 유치원에 다닐 처지가 못 되었던 그에겐 할머니의 좌판이 유치원이자 놀이터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동무들의 유창한 영어에 그는 주눅이 들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모두 유치원에서 기초영어를 배웠다고 여기고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어와 담을 쌓은 그의 삶이. 그 뒤로 빈약한 영어실력은 늘 그가 고를 수 있는 길을 제약했다. 그는 영어가 지긋지긋했고 영어를 몰라도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국사를 전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영어에 서투르다는 것이 우리 문화와 말을 아끼는 태도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시린 가슴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할머니는 늘 그에게 당부했었다.

“경수야, 너는 공부를 잘해라. 못 배우면 네 애비처럼 된다.”

숨을 깊이 쉬고서 그는 쓰던 글에 다시 마음을 모았다. 방송대 동창회보에 실릴 수필이었다. 조선조의 신분제도를 주제로 삼아서 실질적으로 무위도식한 양반계급이 하층민들로부터 거의 도전을 받지 않은 까닭을 밝힐 생각이었다. 조선조에서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양반계급이 그렇게 오래 권력을 독점했던 것은 물론 지식을 독점한 덕분이었고 지식의 독점은 양반계급만이 한문을 배우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이 논지였다.

속에서 다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이제는 한문 대신 영어가…. 현대에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양반계급을 이룬 셈이지. 가난한 사람은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래서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그 자식들도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부와 가난의 세습이 이루어지지.’

그는 ‘조선조의 신분 제도’라는 제목을 지웠다. 그리고 글씨를 꾹꾹 눌러쓰듯 자판을 힘주어 두드려 ‘현대의 양반 계급’이라고 썼다.

“그동안 우리 회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애를 써왔는데 이번에 처음 계약을 했어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출장을 가는 바람에…. 원래 신입사원 면접엔 내가 꼭 참여하는데, 이번엔…. 차 들어요.”

“예.” 문득 희망에 부푼 가슴을 지긋이 누르면서 경수는 녹차 잔을 집어들었다.

“돌아오니까 김경수씨가 화제였어요. 면접시험을 치르는 응시자가 영어로 면접을 본다고 항의하고 나갔으니….” 사장이 껄껄 웃었다.

“죄송합니다.”

“자기소개서를 보니까 이해가 됐어요. 할머니께서 키우셨다고?”

“예.”

“할머니께선 지금?”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손자 효도를 받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셈이네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서 사장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인사부장한테 얘기했어요. ‘회사엔 항의해야 할 때 항의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그가 얘기를 새길 시간을 준 다음, 사장은 말을 이었다.

“이제 영어는 생존에 필수적인 기술이 되었어요. 영어를 모르면 평생 큰 핸디캡을 안고 살아야 해요. 무역이나 외교 같은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만 영어를 잘하면 된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만 그건 실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중요한 정보는 모두 영어로 만들어집니다. 영어를 모르면 애초에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한국어로 번역되는 정보는 존재하는 정보의 몇억분의 1도 안 될 겁니다.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정보는 아예 번역이 안 되고. 번역은 비용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작업이거든요. 내가 첫 사업에 실패하고서 번역을 좀 했었죠.”

그도 정보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면 중요한 정보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마음을 쓴 적은 없었다. 막연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누가 알아서 번역해 놓겠지’ 하고 지내온 터였다.

“그런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식도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책임은 정부에 있어요. 언어라는 게 원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낮은 영어실력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도 나는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결론을 얘기하면…”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사장이 잠시 뜸을 들였다.

“나는 김경수씨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환희의 송가’가 퍼졌다. 비둘기들이 날개를 퍼덕이면서 가을 하늘 속으로 날아올랐다.

“단 조건이 하나 있어요. 회사에서 비용을 댈 테니 열심히 영어를 배우세요. 내년에 미국 지사를 낼 계획인데 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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