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9. 17:03ㆍ法律
김모 할머니(82)는 자신을 ‘푸대접’하는 아들 때문에 법원까지 갔던 일을 생각하면 요즘도 분통이 터진다. 애초에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아들 말을 믿고 재산을 모두 물려준 게 잘못이었다. 아들은 물려준 땅을 6000만원에 팔았지만 혼자 사는 어머니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들을 나무라다 지친 김씨는 결국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에 땅 판 돈의 절반인 3000만원을 달라는 부양료 지급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아들이 매달 30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모가 봉양하지 않은 자식들을 상대로 부양료 지급 청구소송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부양료 지급 청구소송은 151건으로 2001년 60건에서 6년 만에 2.5배나 급증했다. 이 소송 건수에는 배우자 간의 소송사례도 포함돼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낸 소송이 대부분이라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인 안미영 변호사는 “부모 자식 간 부양료 청구 소송이 늘고 있다"며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자식한테 아무리 돈을 달라고 해도 안 되니 최후로 소송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양료 소송으로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끊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에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 이모(75)씨는 3남2녀 중 장남(55)을 애지중지했다. 큰아들이라 교육도 많이 시켰고 1억원 상당의 아파트도 마련해줬다. 하지만 그토록 기대했던 장남이 나 몰라라 했다. 실망한 이씨는 2004년 인천지방법원에 소송을 냈고, 법원은 아들에게 부양료 30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들 부자는 이후 서로 등을 돌린 채 얼굴을 보지 않고 있다.
1남3녀를 둔 박모(68)씨는 부양 문제로 둘째딸과 다툰 끝에 인천노인학대예방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비 일을 하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 셋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박씨는 둘째딸 결혼 때 퇴직금 등으로 모은 8000만원을 현금으로 주었다. 하지만 딸은 2년 동안 이자 정도만 주다가 어머니의 병원비 문제로 자신과 심하게 다툰 뒤 아예 연락을 끊었다. 박씨는 현재 법률구조공단 지원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우리 사회에 전통적인 부양 관념이 급속도로 희박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노후를 보살펴 줄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 세대는 가족 간의 유대관계나 부모 공경 의식이 희박해져 부양의 정도를 놓고 인식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부모가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경제관념이 강해지고 노인복지기관 등을 통해 부양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소송이 느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과 배우자 간에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김윤정 교수는 “사회가 산업화·도시화하면서 가족 간의 정서적인 측면은 희석되고 경제적인 관념이 크게 부각됐다"며 “사회는 변화했는데 부모는 경제적·정서적인 부양을 기대하고, 자녀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차이가 부양료 분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신미연 기자 minerva21@segye.com 2007년 7월 16일(월)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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