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모자열전

2009. 12. 2. 12:59人間

자상한 ‘훈남’ 아들, 열 딸 안 부러워

《“(아들이) 키울 때는 든든할지 몰라도 딸이 엄마에게는 최고예요. 요즘에는 딸들이 더 똑똑하니 금상첨화지요. 아들은 커갈수록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잖아요.”(이미영·50·주부)

곳곳에서 잘나가는 딸들 이야기가 들리니 남아선호 경향도 예전보다 줄고 있는 추세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나타내는 출생 성비는 1995년 113.2명에서 2005년에는 107.7명으로 떨어졌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 참석했던 한모(54·서울 동작구 상도동) 씨.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한 씨 주변에 딸 자랑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녀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론을 편다.

“요즘 아들들이 얼마나 자상하고 부드러워졌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한마디로 ‘훈남’(보고 있으면 훈훈해질 정도로 가슴 따듯하고 정이 가는 남자)이랍니다. 아들하고 목욕탕만 같이 못 가지 아기자기한 재미를 맘껏 느끼면서 사는 엄마가 많아요.”

한 씨처럼 친밀하고 다정한 모녀 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들과 함께 ‘신 모자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엄마들이 많다. 한마디로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모(50·서울 송파구 신천동) 씨는 아들만 둘이지만 며칠씩 집을 비우는 장기 여행을 떠날 때 살림 걱정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엄마가 없을 때 청소는 큰아들이, 가족들 식사는 작은아들이 챙긴다. 요리에 취미가 있는 작은아들은 평소 엄마에게 신세대 퓨전 요리를 종종 선보여 감동하게 만든다. 살림꾼 아들 덕분에 제사나 김장 등 큰일도 부담 없이 치른다는 박 씨는 “본격적인 맞벌이 시대를 살아야 할 애들이라 집안일 시키는 걸 거리끼지 않았는데 그 혜택을 며느리보다 내가 먼저 보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가사에 참여하면서 대화 소재도 많아졌다.”고 흐뭇해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주부 최연화(48·경기 성남시 분당동) 씨는 뚱한 딸보다는 붙임성 좋은 아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아침 식사 후에는 아들과 둘이서만 30분씩 식탁에 앉아 ‘모자(母子) 수다’ 시간을 따로 가질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최 씨는 “주로 아들의 여자 친구에 대한 심리 상담이지만 그런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노래방에 가더라도 엄마가 좋아하던 추억의 노래를 들려주며 서비스할 정도로 애교를 부리는 아들을 보면서 요즘 남자 애들은 여자 친구들한테만 자상한 것이 아니라 엄마 비위도 잘 맞추어 주는 진짜 ‘훈남’이란 걸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훈남’ 아들들의 출현은 사회적 변화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한국 트렌드 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부모 이외 형제나 친척이 많이 사라진 상황에서 접촉 빈도가 높은 엄마는 사회관계를 배우는 1차적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 과정에서 남성들의 관계 맺기 방식이 부드러워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사회생활에서 수직적 네트워크보다 수평적 네트워크가 중요해지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이제 남성들에게도 배려나 유머 같은 여성적(?) 덕목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엄마와의 친밀감은 도움이 된다는 것.

김 소장은 “가정 내에서 아들들에게 역할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에서 남자들이 여성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은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추세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자 관계가 각별해진 원인을 정보와 경제력에서 엄마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아버지들의 견해도 있다.

중학생 아들을 둔 회사원 김모(49·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씨는 “아빠인 나는 일주일에 아들 얼굴 보는 게 몇 시간 안 되는데 엄마는 학교나 학원 공부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직접 용돈도 준다.”며 “정보와 돈이 힘인 세상에서 부자관계보다는 모자 사이가 더 긴밀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동아일보] 박완정 사외 기자 ty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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