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효녀

2009. 12. 2. 13:02人間

호남에서 효자·효녀가 더 많이 난다는데…

# 호남 출신들, 부모에 가장 많이 송금

부산에서 홀로 사는 김복희(68·부산시 동구 수정동)씨는 수도권에 사는 2명의 아들로부터 매월 100만원을 송금 받는다. 직접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며 아들들이 매달 내놓는 어머니의 생활비다. 김 할머니의 아들들은 또 구정과 추석 같은 명절 때마다 부산에 내려와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에게 용돈으로 쓰라며 100만 원가량을 내놓고 올라간다.

충남에서 농사를 짓는 황종수(75·충남 논산시 연무읍)씨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5명의 딸자식들부터 매월 130만원을 받아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 할아버지는 20마지기 가량의 논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황씨는 “손자들이 모두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됐기 때문에 돈을 그만 부치라고 얘기 하지만, 딸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박사가 전국 32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노부모에 대한 소득이전 실태’에 따르면, 독립해나간 아들과 딸자식 가운데 약 62%가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생활비 지원액은 연간 평균 200만 원 선으로 한 달에 약 16만원 꼴이다. 금액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우리나라 자녀들의 비율은 선진국들(5~15%)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호남 출신들이 고향 부모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돈을 송금하고 있는 사실이다. 자식들의 소득수준, 재산규모 등 경제적 사정에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경우, 호남지역 부모들은 수도권 부모에 비해 약 220만원을, 또 영남과 충청지역 부모들에 비해선 각각 162만원, 91만원을 더 지원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왜 호남지역에서 효자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일까…

# 농촌 많아 공동체 유대감 강해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금융·경제전문가 50명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조사 결과,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호남 지역의 농경사회 문화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 사람이 많았다. 전남이 고향인 이왕규 한누리증권 전무는 “농촌이 많은 호남은 가족과 지역 공동체 간의 유대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라며 “가족공동체 간의 끈끈한 정이 부모 봉양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대구가 고향인 최성환 대한생명 상무는 “호남은 70~80년대만 해도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 비해 산업발전이 더뎠다”면서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다 보니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시킬 경우 재산의 많은 부분을 처분해야 했고, 이 때문에 노후생활이 어렵게 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시쳇말로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 부모가 호남 지역에 상대적으로 더 많다 보니 아들과 딸자식들이 부모 봉양에 대한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도시 생활의 특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는 호남에 비해 인구가 30만~100만 명에 육박하는 대도시가 많은 편이다. 노인이 취직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대도시에선 노인이 다닐만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수도권과 영남 부모들 가운데서는 아직 현역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이럴 경우 자식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생활비 지원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전이 고향인 서현철 신한은행 양재역지점장은 “부모와 자식이 사는 곳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생활비 지원액도 작아지는 추세를 보인다.”며 ”수도권 부모들이 호남과 영남, 충청 지역 부모들보다 ‘자식 덕’을 적게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한 가지 특징은 ‘아들의 기세는 꺾이고 있고, 딸의 기세는 한창 순풍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들보다 딸자식이 낫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정말 이런 주장은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 남편 눈치 보느라 친정 송금액 줄여 응답

공식적인 통계를 기준으로 말하면 아직 ‘아들이 딸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 맞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 조사에 따르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자식들이 송금을 할 때 아내 쪽 부모보다 남편 쪽 부모에게 돈을 50% 가량 더 보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편 부모에게 50만원을 송금하면 아내 부모에게는 25만원을 송금하는 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전무는 “가정이 아직 남성 중심 하에 있다 보니 경제권을 가진 남편 쪽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조사 결과는 신뢰성이 낮다는 비판이 따른다. 생활비 지원에 관한 조사는 대부분 남편이 아닌, 아내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때 대부분의 경우 아내가 남편의 눈치를 의식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송금액을 축소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부모들을 상대로 물어보면 장남으로부터 월 평균 15만원, 딸자식으로부터 13만 원가량을 지원 받는다고 응답하고 있다. 아들과 딸자식이 주는 용돈에 실제로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정서상으로 볼 때도 딸이 아들보다 부모님을 더 잘 챙기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이 친정 부모님에게 남편 모르게 별도의 용돈을 드리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딸자식의 경우 이혼한 여성이 결혼한 여성보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더 듬뿍 드리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 직장에 다니는 여성의 경우 부모님에게 육아문제를 도움 받는 대가로 용돈을 더 많이 드리는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다만 우리나라 중년 세대들이 전 세계에서 부모님을 가장 잘 모시고 있기는 하나, 자녀들 문제가 터지면 부모님 챙기기가 다소 소홀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들부터 지원받는 생활비가 70대 초반까지 계속 늘어나다가 75세를 넘어서면 지원액이 뚝 떨어지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부모 나이가 75세쯤 되면 자식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걸쳐 있는 때다. KDI 김희삼 박사는 “이 시기는 자녀 사교육비가 뭉텅이로 들어가고, 주택대출금 상환이 가계살림을 짓누르는 때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보내는 돈을 줄여 자식 쪽으로 돌리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양민 선임기자 ymsong@chosun.com 입력 : 2007.04.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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