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 13:21ㆍ人間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으로부터 따돌림 받는 첫 세대’
외국계 은행 임원 박모(55.경기 성남)씨.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마음은 더 집으로 향한다. 부인과 아이들에게 자상한 남편, 좋은 아버지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대학생인 두 아들은 엄마와 더 친하다. 어려서부터 아이 교육은 아내가 주도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때 한 달에 150만원 하는 학원. 과외 수강이 너무 비싸다고 반대했다가 아이 성적이 떨어지고 재수까지 하면서 발언권은 더 약해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며 언제부턴가 집안일에 대해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무심한 아버지가 돼버린 것이다. 박씨는 "일에 쫓기다 보니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게 벅차다"며 "내가 자랄 때는 살갑게 말은 못했지만 밤늦게 퇴근하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야속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이 절대적이었던 전통적인 가정문화에 익숙한 한국의 40, 50대 아버지들은 이처럼 가족을 중시하지만 가정 내 발언권은 약하다. 신세대 가정문화에 적응하려고 애써 봐도 자녀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다. 40, 50대 '낀 세대 아버지'들의 어깨가 갈수록 처지고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서베이리서치센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6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85%는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76.5%)보다 8.5%포인트 높은 수치다.
남성이 이렇게 가정을 중시하지만 정작 자녀 교육, 고가 물품 구입 등 집안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주도권은 여성이 쥐고 있다. 자녀 교육에 있어 남성이 주도권을 쥐는 비율이 14.6%로 여성이 주도권을 쥐는 경우(42.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집안에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기혼여성 10명 중 7명은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녀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와 더 멀어진다.
20대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경우 아버지와는 1주일에 평균 2.9회 연락하지만, 어머니와는 3.2회 연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에 홀로 남은 아버지는 더 서글프다. 이혼이나 별거로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빈도는 1주일에 0.8회였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의 어머니에게 자녀가 연락하는 횟수는 전체 평균보다 많은 주 3회로 나타났다.
오제은 백석대 교수는 "한국의 아버지들은 부모 세대에게서 가부장적 권위를 배우고 습득했으나 자녀로부터는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낀 세대"라며 "힘들어 하는 남편을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함께 새로운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 염태정(경제부문), 김영훈. 김은하(사회부문), 박종근(영상부문) 기자 filich@joongang.co.kr
◆ 낀 세대
아버지의 발언권이 절대적인 전통적 가정문화에 익숙하지만 자식들의 신세대 문화에도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40, 50대를 말한다. 남성들은 고달픈 직장생활에 자녀 교육비와 가족 부양까지 떠맡으며 힘겨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자녀 교육 등 중요한 가정사에서는 여성의 발언권이 강하고, 남성은 아이들에게서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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