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2009. 12. 9. 13:27ㆍ政治
정치 1번지 지하에선 교회·성당·禪院이 이웃, 국회 밖에선 모르는 `숨겨진 1인치`
개원 60주년을 맞은 국회.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곳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4000여명의 상주 인원에 절·교회까지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을 중앙SUNDAY가 소개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회에는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다. 키 1m65㎝ 이상의 늘씬한 미녀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의원들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2004년 8월까지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의사당과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 ‘의원용’ 팻말을 떼어낸 지금은 의원도 민원인과 함께 부대낀다. 국회의원만 드나들 수 있었던 의사당 2층 정문 쪽 출입구를 국회 직원이 출퇴근에 이용한 지도 오래다. 국회 개원 60년 동안 달라진 풍경들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국회는 여전히 의사봉과 몸싸움과 밤샘 표결로 상징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곳’이다. 중앙SUNDAY가 정치 뉴스 바깥에 숨어 있던 국회의 모습을 찾았다.
사실 국회 문턱은 75년 건립 당시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지하 1층이던 본청 방문객 출입구가 2005년 지상 1층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치나 높이는 바뀌지 않았다. 사연은 이렇다.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정해져 있던 각 층의 명칭을 지하 2층을 없애 버리고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로 고친 것이다.
하루아침에 6층 건물이 7층 건물이 돼 버린 셈이다. 사무실 표지판,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모두 교체했다. 번거로운 ‘조삼모사’를 단행한 이유는 뭘까.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 전용 출입문이 있는 층을 1층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사실상 2층을 1층으로 정한 게 애초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위치도 한 층 오른 것일까.
국회 본청에서 사라진 것은 지하 2층뿐만이 아니다. 본회의장에서 재떨이와 일반 명패가 사라졌다. 의원끼리 난투극을 벌일 때 사용하던 ‘무기’를 제거한 것. 제헌국회 시절 ‘다방 재떨이’에서 67년 맞아도 덜 다치고 소리만 요란한 양은 재떨이로 바뀌었다. 던지지 못하게 고정식으로 해 놓아도 억지로 뜯어내 던진 몇몇 힘센 의원 때문인지 73년 2월 국회법으로 회의장 내 금연 조치를 내리면서 재떨이가 사라졌다.
명패도 ‘흉기’였다. 제헌국회에선 단상에 던진 나무 명패에 속기사가 머리를 맞아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속기를 계속하던 일도 있었다. 상처가 6개월을 갔다고 한다. 63년 맞아도 덜 아픈 플라스틱 명패로 바뀌었고 2005년 9월 본회의장이 전산화되면서 고정식 전자명패가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상임위나 특위에선 여전히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플라스틱 명패를 사용한다. 15대 때만 해도 서한샘 의원만 한글 명패를 썼는데 현재는 한자 명패가 사라져 가는 추세다. 국회 지하 주차장에선 알파벳을 볼 수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관과 연결되는 만큼 ‘B1-D26’ 같은 영문자와 숫자 대신 ‘지하 3층 ㄱ’ ‘지하 4층 ㄹ’으로 표기했다.
‘한밤 방뇨’로 지킨 푸른 돔
의사당 총 높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연푸른 돔은 “위기가 닥치면 반으로 쪼개지면서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유머가 만들어질 만큼 국회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지난해 1월 ‘로봇 태권브이’ 재개봉 시사회가 본청은 아니지만 의원회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설계에 없던 디자인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웅장하게 만들려고 억지로 추가한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상여 같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98년에는 돔을 기와지붕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미 국회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예산 낭비”라는 등의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
2000년 6월에는 돔을 황금색으로 칠하기 위한 예산안이 국회 운영위에 제출됐다. 프랑스 파리의 오벨리스크 등 황금 안료로 도금한 조형물처럼 멋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공비 4억9000만원에 5년마다 4000여만 원의 재도금 비용이 들어가 “국회의원이 (비난의)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건립 당시부터 돔은 위기를 겪었다. 붉은색 동판이 두어 달 지나면 부식돼 ‘중앙청처럼’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설명을 정일권 당시 국회의장 등이 못 미더워했기 때문이다. 선우종원 당시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사무처 건설국장이 빗물 자국 같은 것을 가리키면서 이런 식으로 부식돼 간다고 설명했다”며 “나중에 자기가 그 전날 밤 돔에 몰래 올라가 방뇨했다고 말하더라.”고 회고했다. 빨리 부식시키기 위해 작업 인부들이 집단으로 매일 방뇨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국회에 숨겨진 지하 벙커는 없지만 의원회관~의사당~도서관~의정관을 잇는 지하통로가 있다.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벽에는 사진과 서예 작품들이 걸려 있어 심심하지 않다. 뜨거운 햇살이나 비를 피하기 안성맞춤이라 의원들이 애용한다.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방문객의 출입은 통로 입구에서 통제한다.
국회 지하에 숨겨진 것이 있다면 와인 72병이다. 화기(火氣)를 막아준다며 세운 정문 쪽 해태상 한 쌍의 건립비용 3000만원을 해태제과에서 제공했다. 이때 해태주조㈜에서 최초로 개발한 100% 국산 와인 ‘노블와인’을 양쪽 해태상 아래에 36병씩 묻었다. 묻은 지 100년 뒤인 2075년에 꺼내기로 했다지만 장기 숙성용 와인이 아니니 마시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도시 속 도시, 섬 위의 섬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75년 9월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버스 노선이 두 개밖에 없을 정도로 주변이 황량했다. 매점조차 없어 간식거리라도 사려면 영등포까지 나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의사당로 1번지’는 여의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섬, 소도시라고 할 만하다. 주상복합건물처럼 국회 내에서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은행·우체국·매점 같은 일반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세탁소·미장원·이용실·구두수선소도 있다. 의무실과 내과·치과·한의원·약국도 있다. 대여료 15만원만 내면 되는 예식장,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도 있다. 의사당 지하 1층에는 교회·성당·선원(禪院)이 다 들어와 있어 기도회 등이 종종 열린다. 밤낮없이 일하는 국회 특성상 남녀 샤워 실도 마련돼 있다. 빵집·안경점·서점·꽃집도 입주해 있다.
금배지 우선 구역
‘의원 전용’ 구역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국회를 이끌어 가는 국회의원만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남아 있다. 정문 출입구를 직원도 쓸 수 있지만 가운데 문은 여전히 국회의원만을 위한 것이다. 의원회관 지하 2층의 남녀 ‘건강관리실’은 국회의원만을 위한 운동센터다. 여성 의원용 사우나는 언제나 이용자가 한 명이라고 한다. 알몸으로 다른 여성 의원을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화로 미리 확인하고 가기 때문이다. 도서관 5층에는 의원 열람실과 연구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주황색의 푹신한 의자가 일반 열람석과는 다르다. 의원회관 1층에도 의원들 편의를 위해 열람실을 마련했다.
의원회관과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푸른 잔디밭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로열’(716~730호)은 여야 중진이나 실세들이 배정받는 게 관행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15대 때부터 720호실을 쓰고 있다. 호실에 의미를 두는 의원도 적잖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4·19를 연상시키는 419호실을,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남북 공동선언 날짜와 같은 615호실을 쓰고 있다. 당별로 구획을 나누는 본회의장 좌석 앞자리는 늘 ‘힘센 상임위’의 몫이기도 하다. http://news.joins.com/article/3306742.html?ctg=1000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2008.09.22 11:07 입력 / 2008.09.22 16:44 수정
의원동산 `미니 숲`엔 주말 피크닉 가족 붐벼 `국회 마을`100배 즐기기
의사당의 녹색 돔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국회는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낯설기만 한 존재다. 철통 같은 경계근무에 쉽사리 접근조차 어려울 것 같고, 경내에 들어선 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통제에 왠지 주눅이 들 것만 같은 곳. 하지만 알고 보면 국회만큼 활짝 열려 있는 국가 기관도 많지 않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열린 국회를 표방하며 “국회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이후 대부분의 시설이 일반에 개방됐다. 물론 지금도 경위나 의경들이 “어디 가시느냐”고 종종 묻지만 최소한의 보안을 위한 절차일 뿐이니 괜히 당황하지 말고 목적지만 얘기하면 된다.
정문을 들어서면 푸른 잔디밭이 한눈 가득히 펼쳐진다. 한가운데 분수에서는 시원한 물줄기도 뿜어져 나온다. 주말이면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 산책 나온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늘 흥겹다. 가로수 길을 따라 의사당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의원동산이 보인다. ‘국회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고즈넉하면서도 아담한 휴식처로 방문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75년 국회의사당 건립과 동시에 2만4000㎡ 규모로 조성된 이곳에는 잣나무 등 40여 종 3000여 그루의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미니 숲’을 이루고 있다. 공원 주변으로는 산책길이 조성돼 있고 군데군데 피크닉용 테이블과 벤치도 마련돼 있다. 16개 미술 전시품이 어우러진 잔디밭은 야외 예식장으로도 곧잘 활용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에 개방되며 주말과 공휴일에도 출입이 가능하다.
국회의사당의 문도 활짝 열려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회의 공개 원칙에 따라 국민이 언제든지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 의사당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참관 프로그램이 있다. 국회 홈페이지(www.assembly.go.kr)에서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하면 전문 안내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본회의장, 위원회 회의실, 로텐더홀 등 의사당 내부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본관 4층에서는 본회의 방청도 가능하다. 단 입장 규칙은 조금 까다롭다. 모자와 외투는 벗고 들어가야 하고 보자기 등 부피가 있는 물건도 휴대할 수 없다. 무기나 총기류를 숨겨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방청석에서는 신문과 잡지도 읽을 수 없고 회의장 발언에 대해 박수도 칠 수 없다.
반바지·슬리퍼·미니스커트와 민소매 티셔츠 차림도 출입을 제한받는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권위와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예전에는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방청이 가능했지만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금은 국회의원이나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의 추천을 받은 사람으로 방청을 제한하고 있다.
의사당을 둘러본 뒤에는 헌정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제헌국회 때부터 제17대 국회까지 의정 60년사가 갖가지 기록물과 함께 전시돼 있다. 제헌국회 당시 상황을 밀랍으로 재현해놓은 제1전시실, 첨단 매직비전으로 국회 곳곳을 탐방할 수 있는 제2전시실, 통일을 준비하는 국회의 모습을 담은 제3전시실, 국회의장과 의원들이 의원외교 때 받은 선물과 기념품을 모아둔 제4전시실 등을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대한민국 국회 60년의 발자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의정체험관에서는 방문객들이 국회의원 역할을 맡아 찬반토론과 표결을 거쳐 법률안을 처리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선보여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관람료는 없지만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국회 역사탐방까지 마친 뒤에는 국회도서관 뒤편에 새로 들어선 국회의정관을 들러 볼 필요가 있다. 6층으로 올라가면 일반인도 출입 가능한 카페가 있는데, 탁 트인 전망에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기분이 더없이 상쾌해진다.
http://news.joins.com/article/3306750.html?ctg=1000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2008.09.22 11:10 입력 / 2008.09.22 11:12 수정
`국회도서관` 활용하기, 인터넷 전자도서관 이용, 지난해 1100만 명
국회의 여러 시설 중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은 아마도 국회도서관(사진)일 것이다. 1952년 전시 수도 부산에서 3600권의 장서와 직원 1명으로 개관한 국회도서관은 국회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본래의 임무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왔다. 6월 현재 일반도서와 각종 논문, 법령과 판례 자료, 정기간행물, 멀티미디어 자료 등 총 288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회도서관은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열람실이 공개돼 있어 원하는 자료를 맘껏 찾아볼 수 있다. 본관 3층 서고와 의정관 서고에 있는 단행본은 1층 정보검색 홀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자료를 검색한 뒤 온라인으로 열람을 신청하면 된다. 직접 도서관을 방문하기 어려울 때는 정해진 수수료만 내면 원하는 자료의 복사본을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휠체어 서비스도 제공된다. 시각장애인들의 자료 검색을 돕기 위한 음성 지원 프로그램과 전용 창구도 마련돼 있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수준의 자료나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해 주는 ‘참고봉사 서비스’도 호평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www.nanet.go.kr)에 마련된 전자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국회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보다 편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98년 시작한 전자도서관 DB 구축 사업으로 현재 9300만 쪽에 달하는 각종 자료가 저장돼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이들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을 직접 찾은 국민은 70만 명, 인터넷 전자도서관 이용자는 1100만 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꼴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디지털입법자료센터가 도서관 바로 옆 건물인 국회의정관 3층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에서 얻기 어려운 해외 학술지·논문, 각종 연구보고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의 유명 정책자문기관들의 각종 분석 자료도 실시간으로 열람 가능하다.
도서관 1층에는 5~13세 어린이의 전용 공간인 어린이 도서관도 마련돼 있다. 명작동화·창작동화·위인전기 등 어린이용 권장도서와 어린이 백과사전, 어린이 잡지, CD-ROM, 비디오 등이 비치돼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5100여 권의 단행본과 31종의 정기간행물, 4종의 어린이신문과 컴퓨터·TV·DVD 플레이어가 구비돼 있다. 책상과 의자는 물론 소파까지 갖춰 놓아 어린이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눈에 띈다. 국회도서관 개장 시간에는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3306761.html?ctg=1000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2008.09.22 11:14 입력
국회의원이 진짜 좋은 이유
국회의원 공천 문제가 핫이슈입니다. 정가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공천 파문의 핵인 ‘공포의 외인구단’ 멤버 가운데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인터뷰했습니다.
공천이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올인하는 것도 공천이 결정적인 길목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국회의원이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북새통 난장일까요.
대강 짐작들 하시겠지만 국회의원은 부·권력·명예라는 인간의 3대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희귀한 자리입니다. 먼저 부(富). 가장 기본적인 연봉이 1억원 넘습니다. 이 밖에 보이지 않는 돈, 쓸 수 있는 돈은 훨씬 많습니다. 모두 9명의 직원을 고용해 국고로 급여를 줄 수 있습니다. 고위 공직에 해당되는 4급 2명 외에 5·6·7·9급 1명씩, 인턴 2명, 그리고 올 18대 국회부터는 8급 1명이 더 추가됩니다.
사무실은 물론 전기·통신비와 차량 유지비 등 각종 잡비, 그리고 세미나를 개최할 경우 연 2000만원까지 국고 지원을 받습니다. 후원회비를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로비를 위해 몰려드는 일부 어두운 돈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권력은 더욱 크죠. 입법 활동에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거의 무제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총리 이하 모든 공무원을 불러 꾸짖을 수 있고, 대통령까지 탄핵소추할 수 있습니다. 여당일 경우 본인이 총리나 장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의 최종 희망인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성취감도 중요합니다. 명예는 ‘장관급 예우’로 요약됩니다. 어딜 가든 장관 대우를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 진짜 좋은 직업인 이유는 ‘무책임’ 아닐까 싶습니다. 개개인이 무책임한 인간이란 얘기가 아니라 ‘누리는 권한에 비해 책임질 일이 거의 없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국회의원은 자유로운 입법 활동이란 명목 하에 각종 면책특권을 누립니다. 정책개발이나 입법 활동을 해야 맞지만 이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거나 독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기 중 발언의 자유는 거의 무제한입니다. 부정확한 주장이나 합리적이지 못한 정책을 주장해도 이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질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국회나 당 윤리위원회는 솜방망이죠. NGO의 감시가 있지만 구속력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추궁당하는 일은 4년에 한 번 선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나마 유권자는 후보 개인의 정책이나 의정활동보다 당을 보고 찍는 경향이 강해 ‘국민의 심판’이란 말이 무색합니다. 그래서 후보를 골라내는 각 당의 공천 과정이 더 중요해집니다. 민주당의 공천을 혁명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오병상 Chief Editor 오병상 기자 obsang@joongang.co.kr 2008.03.09 07:27 입력 / 2008.03.09 11: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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