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 이천수… 다르다

2009. 12. 13. 14:20LEISURE

'비운의 천재' 고종수와 이천수는 다르다

한국 축구사에서 '비운의 천재'라 하면 떠오르는 두 명의 선수가 있다. 바로 고종수(31)와 이천수(28)다.

한때 '천재'라 불리며 한국축구를 좌지우지했지만 문란한 사생활과 자기관리 실패로 천재적인 재능을 온통 축구에만 쏟아 붓지 못하고 썩혀야만 했던 스타다. 축구팬들은 '비운의 천재'를 이야기하며 고종수와 이천수를 비교하곤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고종수와 이천수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선배 고종수가 간 길을 후배 이천수가 고스란히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 후 고종수는 한국축구의 중심으로 군림했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한국의 간판 플레이메이커였던 고종수. 그는 소속팀이었던 수원을 1998년 1999년 연속으로 우승시키며 K리그 MVP에 올랐고, 고종수의 존재감과 스타성, 그리고 천재성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K리그의 인기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고종수는 1997년 1월, 호주 4개국대회 노르웨이전에서 처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선다. 이후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와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 등을 거치며 A매치 38경기 출전, 6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대표팀 부동의 플레이메이커는 고종수였다. 그 누구도 고종수의 아성에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이천수 역시 고종수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국축구에서 이천수의 존재감은 너무나 컸다. 200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해 K리그 신인상으로 시작한 이천수는 2005년 울산 현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에 등극했다. 2006년 A3 챔피언스컵에서는 J리그 우승팀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대회 MVP와 득점왕에 뽑히기도 했다.

이천수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는 한국의 월드컵 원정 첫 승을 올릴 때 동점골의 주인공이었다. 올림픽과 아시안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오랜 기간 대표팀의 중심이었다.

K리그 우승과 MVP. 그리고 국가대표의 중심. 최고의 프리키커라는 타이틀까지. 이들은 상당히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몰락의 길도 비슷했다. 이들의 절정과 몰락은 함께 찾아왔다. K리그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나 정상을 밟은 이후 고종수와 이천수는 서서히 나락의 길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사건, 사고, 스캔들'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문제아' 이미지를 쌓아가던 고종수와 이천수는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고종수는 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진출했지만 고질적인 부상 재발과 적응 실패, 핌 베어벡 당시 교토 감독과의 의견차이 등으로 재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천수 역시 레알 소시에다드, 페예노르트 등으로 진출했지만 실패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고종수와 이천수. 이들의 앞에는 진한 먹구름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으로 복귀한 고종수는 숙소무단이탈 및 팀 훈련 불참 등으로 임의탈퇴 공시돼 1년 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수원으로 돌아온 이천수 역시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일으키며 임의탈퇴 됐다. 그리고 전남에 임대된 뒤 4개월여 만에 또 임의탈퇴 됐다.

여기까지는 정말 비슷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나락으로 빠졌던 길로 접어들기까지는 고종수와 이천수는 너무나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고종수와 이천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고종수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스타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천수는 팬들의 비난만이 기다리고 있는 길로 들어섰다.

2007년 사실상 은퇴의 길을 걷는 듯했던 고종수는 '영원한 스승'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전에서 마지막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전성기적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대전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리는 등 최선을 다했다. 고종수는 2009년 2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한 채 영원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팬들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종수는 자신을 살려준 '스승' 김호 감독에 대한 예의와 존경은 끝까지 잊지 않았다. 고종수는 은퇴하기 전 김호 감독에 은퇴 의사를 전했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은퇴를 하면서 측근을 통해 "김호 감독님은 평생의 은인이기 때문에 앞으로 죽을 때까지 보은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고종수는 마지막 날까지도 자신의 은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반면, 이천수는 자신을 살려준 은인을 배신했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을 받아준 전남 박항서 감독의 신의를 저버렸다. 이천수는 거짓 계약서를 꾸미면서까지 박항서 감독에 등을 돌릴 준비를 했다. 결국 이천수는 10일 알 나스르 구단의 메디컬테스트를 받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비운의 천재' 고종수와 이천수는 그래서 다르다. 과정은 비슷했지만 결말이 너무나 다르다. 지난 1일 전남과의 경기를 앞둔 전북의 최강희 감독에게 더욱 자세한 차이점을 들을 수 있었다. 최강희 감독은 수원 코치시절 고종수를 가르쳤고, 코엘류 감독 시절 대표팀 코치로 이천수를 가르쳤다.

최강희 감독은 "고종수와 이천수는 다르다. 고종수는 내가 수원에 있을 때 잘 알고 지냈다. 고종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애가 아니다. 오해가 있는 부분이 많다. 고종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잘못하고 두들겨 맞는 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며 고종수를 회상했다.

반면, 이천수에 대해서는 "모든 일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천수가 자신을 받아준 박항서 감독에 그러면 안 된다. 다른 팀에서 100억 원을 준다고 해도 박항서 감독과 1년을 뛰면 얻을 것이 더욱 많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고종수와 이천수. 이 둘을 '비운의 천재'라며, 지나온 길이 닮았다 해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아쉬움을 남긴 채 그라운드를 떠난 고종수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고종수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애증의 문제아'로 기억된다면, 이천수는 시대가 버린 '증오의 문제아'가 되고 있다.

'비운의 천재' 고종수와 이천수는 분명 다르다. http://news.nate.com/view/20090711n02412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원문 기사전송 2009-07-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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