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의 노력형 박지성

2009. 12. 13. 14:14LEISURE

'대기만성', '변화무쌍'의 박지성…, '그가 거쳐 온 고난과 시련의 길'

박지성이 네덜란드 PSV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AC 밀란과의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꼽는 팬들이 많다.

당시 안드리 솁첸코가 이끄는 AC 밀란은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고, 그 기량 또한 유럽 최고였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16강서 AC 밀란과 격돌했지만, 솁첸코의 눈부신 활약에 2경기를 모두 내주며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런 AC 밀란을 상대로 박지성은 눈에 띄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고, 2차전에서는 골까지 성공시키며 팀을 이끌었다. 박지성의 플레이를 눈여겨 본 퍼거슨 감독이 그를 영입한 것은 운과 더불어 실력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지성이 맨유의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이었던 2005-06시즌, 팬들에겐 다소 의아해할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윙포워드로 쓰겠다고 공헌했기 때문. 박지성은 오랜 기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고, 기껏해야 PSV시절동안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했을 뿐이었기에 놀라움은 컸다.

박지성이 유년시절 축구를 할 당시, 그 누구도 현재의 박지성을 생각한 사람은 없다. 왜소한 체격을 가졌던 박지성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대학과 구단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명지대를 거쳐 2000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 막상 프로선수가 되자 박지성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지성이 입단했던 교토 퍼플상가는 그 해 J리그서 강등된 약팀. 그러나 박지성은 팀을 한 시즌 만에 J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히딩크 감독의 전격 발탁으로 월드컵 4강 멤버가 된 뒤 ‘교토의 자랑’이 됐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테스트에서 만점을 기록한 박지성에 대해 밝은 미래를 봤고, PSV로 데려가며 본격적인 조율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첫 해에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적응하지 못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이듬해 PSV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 괄목한 성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수비지향적인 포지션 대신, 공격적인 포지션을 부여받으며 자신의 장점인 폭넓은 활동량을 팬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게 됐다.

현재 박지성은 팀이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PSV시절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이제는 윙포워드로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감행하는 박지성. 맨유 블랙번 경기의 득점으로 2경기 연속골이자, 자신의 출전한 경기(찰턴-볼턴-블랙번)에선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번시즌 대활약을 보이고 있는 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6골)에 비하면, 박지성의 기록은 부상의 공백이 있더라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서 어느덧 윙포워드로 활약 중인 박지성이 이번시즌 보여주고 있는 ‘킬러본능’은 전혀 불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4시즌 만에 우승을 노리는 맨유는 현재 많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겪으며, 시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며 퍼거슨 감독의 예상과 기대에 부합하고 있다.

교토의 자랑, 그리고 아시아의 별을 넘어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박지성.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그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데일리안 이상엽 객원기자]

[스포츠 카페] 지성-천수 성실성이 명암 갈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연출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자신에게 큰 성원을 보낸 한국 국민을 위해 태극전사 3명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으로 데려가 세계적인 선수로 키울 계획을 세웠다. 박지성과 이영표, 그리고 이천수가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었다. 그러나 이천수는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을 거부하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소시에다드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박지성 이영표와 이천수의 운명은 쌍곡선을 그렸다. 히딩크 감독의 든든한 후원을 업은 박지성은 부상과 슬럼프의 고난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해 2005년 세계 최고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전통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반면에 이천수는 스페인에서 적응하지 못해 2005년 울산 현대로 돌아왔고 2007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갔다가 올해 다시 수원 삼성에 임대됐다. 이 과정에서 이천수는 연예인과의 염문을 연이어 뿌렸다. 폭력 및 사기 사건에도 연루되고 음주 파문까지 일으켜 트러블 메이커로 전락했다. 축구보다는 딴 곳에 한눈이 팔려 제대로 몸 관리를 하지 못했고 수원에서도 부상 등으로 주전에서 제외됐다. 급기야 24일에는 훈련 불참 등 선수로서의 임무 불이행으로 임의탈퇴 공시 요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박지성은 언제나 축구 하나만을 위해 헌신했고 히딩크 감독에 이어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감독이 아끼는 선수가 됐다. 박지성은 틈나는 대로 펠레 등 축구 영웅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고 몸 컨디션을 망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월드 스타의 기본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딴 짓을 하다 스러져간 선수는 이천수 외에도 많다. 스포츠에선 성실함이 중요하다. 선수는 경기에서 빛날 때 스타성이 유지되는 법이다. 박지성과 이천수의 엇갈린 명암이 이를 증명한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만 해도 이천수는 박지성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6년여가 흐른 오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성실성 여부가 두 선수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2260069&top20=1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기사입력 2008-12-26 02:57

http://dory.mncast.com/partner_player/donga/donga/dongaPlayer.swf?movieID=10031671220081120201913&skinNum=1(◀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김동욱 기자)

http://dory.mncast.com/partner_player/donga/donga/dongaPlayer.swf?movieID=10031671220080902133842&skinNum=1(◀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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