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축구 '천재'

2010. 5. 18. 15:14LEISURE

[내 인생 이건 몰랐지] 박주영, 남의 유리창 수십 번 깬 유명인사

2004년 10월9일, 한국 축구는 '천재'의 탄생에 환호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진 19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중국과의 결승전. 19살의 한 공격수가 전반 37분 중국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드리블하며 수비수 4명을 따돌린 뒤 선제골을 터뜨렸다. 해외 토픽에서나 보던 '축구천재'의 마법같은 드리블에 이은 감각적인 슛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축구천재'라는 부담스런 수식어는 이제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바뀌었다. 차근차근 성장해 허정무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발돋움 한 그는 남아공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있다. 바로 박주영(25·AS모나코) 얘기다.

◇ 007 작전으로 시작한 축구인생

박주영은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반 대항 축구경기를 하던 박주영을 발굴한 시덕준 감독은 "감독생활 18년 동안 주영이 같은 선수는 처음 봤다"고 했다. 볼 감각에 지능이 더해진 타고난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좋아 반에서 1~2등을 도맡은 까닭에 부모님은 박주영이 축구 선수를 하겠다고 밝혔을 때 반대했다. 부모님의 뜻은 완고했지만 이미 축구의 재미를 느낀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 축구부 훈련을 마친 박주영은 집으로 갈 때는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007 작전으로 부모님을 속이며 축구에 흠뻑 빠져들었다.

비록 한 달 만에 꼬리가 잡혔지만 박주영은 축구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뒤였고, 결국 부모님도 '축구선수' 박주영을 받아들였다.

◇ 맨발, 시장, 그리고 포스터

박주영은 자신의 기본기가 뛰어난 비결로 맨발과 시장 그리고 포스터를 꼽는다. 박주영은 초등학교 시절 축구화를 잃어버려 맨발로 경기에 나선 적이 있다. 축구화를 신었을 때보다 훨씬 볼 감각이 좋다는 것을 느낀 박주영은 이후 틈만 나면 '맨발 축구'를 즐겼다. 덕분에 박주영의 발등은 굳은살이 박여 거칠고 퉁퉁하며, 발톱은 몇 차례나 빠지고 나기를 반복했다. 수비수들이 촘촘히 막아선 공간에서도 겁없이 드리블을 시도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재래시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프리킥 능력도 뛰어난데 이는 어렸을 때 길을 걷다가도 벽에 붙여진 포스터에 축구공을 명중하는 놀이를 하면서 연습한 결과다. 또 슈팅 연습을 하다 남의 집 유리창을 박살낸 적도 부지기수인데 이때마다 집 전화번호만 남겨놓고 사라져 동네에서 박주영 집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캥거루 점프로 남아공을 정복한다

박주영의 신장은 182㎝. 디디에 드로그바(189㎝·코트디부아르)·페르난도 토레스(185㎝·스페인) 등 각국 대표팀의 원톱을 맡은 선수들에 비하면 작은 신장이다. 하지만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 경기를 보면 박주영은 자신보다 10㎝나 더 큰 수비수들을 상대로 헤딩 경합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비밀은 고공 점프에 있다.

2005년 FC서울이 당시 LG스포츠과학정보센터에 의뢰해 측정한 소속 선수들의 체력조사 자료를 보면 박주영의 서전트 점프는 무려 91cm로 배구 선수들과 맞먹는 수치다. 당시 23명의 평균치는 62.6cm이었으니 박주영은 동료들보다 무려 30cm나 더 높이 뛰었다.

프랑스 무대 진출 뒤에는 점프 능력이 더욱 향상됐다. 프랑스의 잔디가 K-리그에 비해 푹신푹신한 까닭에 평소 안 쓰던 근육까지 자연스럽게 개발됐기 때문이다. 박주영의 에어전트인 이동엽 텐플러스스포츠 대표는 "K-리그에서 뛸 때 보다 적어도 점프 능력이 5㎝ 이상은 향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시절 별명은 '연습벌레'

타고난 천재성도 있지만 박주영은 선배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지독한 연습벌레다. 고려대 재학 시절 박주영은 새벽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같이 운동장에 나가 볼 컨트롤과 프리킥 연습을 했다.

하루는 새벽에 폭우가 쏟아졌다. 선배들은 '오늘은 박주영이 훈련을 쉬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박주영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있고 합숙소를 나섰다. 이를 궁금히 여긴 한 선배가 박주영을 따라나섰다. 박주영이 멈춰선 곳은 합숙소 근처의 한 지하 주차장. 박주영은 그곳에서 볼을 차는 대신 줄넘기와 체조로 몸을 단련했다. 이 얘기가 축구부에 알려지면서 이후 박주영은 선배들에게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렸다.

◇ 잊을 수 없는 하노버의 눈물

2006년 6월23일 독일 하노버 월드컵스타디움. 박주영은 조재진·박지성 등 선배들과 함께 독일월드컵 G조 조별예선 3차전에 나섰다. 상대는 유럽의 복병 스위스.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주영의 발끝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박주영은 첫 월드컵 무대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박주영은 '세트피스를 허용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잠시 잊고 전반 23분 우리 진영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트란퀼로 바르네타에게 파울을 했다. 스위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칸 야킨이 왼발로 날카로운 프리킥을 올렸고 이를 190cm의 장신 수비수 필리페 센데로스가 최진철의 방어를 뚫고 헤딩슛으로 연결,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은 이날 0-2로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태극전사들은 물론 독일까지 원정 응원을 간 붉은악마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박주영의 첫 월드컵 도전도 그렇게 '하노버의 눈물'로 마감됐다. 당시 21살의 대표팀 막내였던 박주영은 이제 박지성과 함께 허정무팀의 핵심 선수가 됐다. A매치 경력도 38경기 출전에 13골로 늘었다. 남아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박주영은 '두 번 눈물은 없다'고 다짐하고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321/4179321.html?ctg=14&cloc=home|sports|sports_index 김종력 기자raul7@joongang.co.kr 2010.05.17 13:41 입력

◇ 박주영 15문 15답

1.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때 반 대항 축구경기를 하다가"

2. 좋아하는 색깔?

"붉은색"

3. 좋아하는 음식?

"보신탕·추어탕 빼고 다 잘 먹는다."

4. 꼴불견인 사람은?

"고기 먹을 때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여기요! 밥 하나요!'하며 흐름을 끊는 사람"

5. 신문에 나고 싶은 기사는?

"특별히 없다"

6. 추천하고 싶은 책?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의 '잘 되는 나'"

7. 10년 후의 내 모습은?

"축구선교사"

8. 가고 싶은 여행지는?

"타이티의 보라보라"

9. 좌우명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웃자"

10. 나를 다섯 자로 표현한다면?

"재밌는 사람"

11. 아끼는 것 네 가지(가족 빼고)?

"차·친구·축구화·축구공"

12.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고 싶은 때는?

"현재가 좋다"

13. 한국 축구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점은?

"유소년 선수들의 체계적인 관리 및 육성"

14. 선수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

"축구를 하는 순간"

15. 이런 점은 고치고 싶다?

"나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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