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0. 21:15ㆍ日記
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어제 오후에 아들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기특하다. 결혼 전에는 자기 필요할 때 말고는 전화 한 통 없던 녀석이 결혼하고 자식을 보고부터 자주 안부 전화를 걸어온다. 조상님 기제나 어버이 생일 때, 명절 등에 꼭 금일봉을 보내준다. 고맙다.
『지난날 자녀들이 성장할 때를 생각하면 참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저 '잘돼라.'는 욕심으로, 아들에게는 자신의 수월한 능력에 노력을 가하여 자신의 발전을 통하여 집안을 빛내고, 딸들도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라고 그때는 그렇게 교육해야 되는 줄로만 알았다.
오뉴월 햇볕 한 뼘이 가을철 수확을 좌우한다는 그 일념만으로 그랬다.
그것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래야 되는 줄, 그렇게 교육해야만 되는 줄 알았다.
나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이승에서 인연이 되어 부모 자식으로 만난 아들과 딸들이여! 그때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
안부 전화를 했지만 늙은 부모가 걱정이 됐는지 일요일 오겠단다. 전화 받고 우리 부부는 부리나케 읍내 ‘밀양유통’으로 가서 오늘 먹을거리를 샀다. 거기서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비를 막 쏟아 붓는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그래도 아들과 손자를 본다는 생각에 하나도 귀찮지 않다. 아들이 오면서 늙은 애비 심심할 때 간식하라고 군것질거리를 한보따리 싸들고 왔다. 이런 시골에서는 참 귀한 것들이다.
밥 먹고 과일을 내어 놓으니 손자가 제 아비보고 같이 가서 먹자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면서 재촉한다. 효자 났다싶다. 과일 먹으면서 흥이 났는지 벌떡 일어서더니 허리춤에 손을 얹더니 가사도 분명하게 '이야 이야호'는 노래하면서 리듬을 탄다. 하기사 제 고조부님은 창을 잘 하셨고, 증조부님께서는 미성으로 유행가와 일본 노래를 잘 하셔서 콩쿨대회까지 나가셨고, 나도 노래 듣기와 부르기를 좋아해서 노래방에 가면 100점이 자주 나와서 기부한 돈이 꽤 된다. 제 아비 또한 노래에는 일가견이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우리 집안의 내림인가 보다.
마당에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제 아비도 덥고, 할머니도 덥고, 자기도 더워서 들어왔단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기저귀 풀어 주니 화장실을 가리켜서 데리고 가서 변기에 오줌을 누이니 곧장 눈다. 또 얼마 있다 제 할미가 변기 앞으로 데리고 가서 한참 들어 안고 있으니 미안한 듯이 '안 나오네.'라고 한다. 조금만 거들어 주면 소변도 쉬 가리겠다.
집으로 가면서 놓여있던 장난감처럼 생긴 ‘손풍기’를 집어 들고 가져가잔다. 손자가 갖겠다는데 무엇이 아까우랴. 쾌히 주었다. 카시트에 안전벨트 채워서 앉혀놓으니 ‘젖소’를 달라고 한다. ‘젖소’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손풍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늘 집에서 늘 보던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젖소’ 모양인지를 인지하지 못하였는데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녀석이 벌써 젖소 모양인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젖소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손풍기를 받더니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그러는지 카시트에 앉아있는 제 다리 사이에 꼭 끼워 넣는다.
이 녀석, 어느 별에서 살다 왔는지? 이 녀석, 이 지구에 오기 전에 지금은 어느 다른 별에서 살고 계실 제 증조모님을 한 번 뵙고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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