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서원 순례

2024. 4. 14. 11:56日記

2024년 4월 11일 금요일 구름

칠탄서원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조선후기 손기양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743년(영조 19)에 진암서당(眞巖書堂)으로 건립하였다가, 1844년(헌종 10)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기양(孫起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으로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손기양의 삶과 후한(동한)의 황제 광무제(유수)가 어릴 때에 동문수학했던 친구인 엄광(자릉)에게 간의대부의 벼슬을 내려도 부임하지 않고, 절강성 동려현의 부춘산 아래 '칠리탄'에서 낚시하며 은둔했던 엄자릉의 고사를 생각하면 칠탄서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1914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8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문루(門樓) · 내삼문(內三門) · 주사(厨舍)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손기양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다. 서재는 벽립재(壁立齋)로 현액되어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죽강재(竹江齋)로 현액되어 재원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주사(主祀)는 서원을 수호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과 9월 중정(中丁: 가운데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재산으로는 대지 400평, 논 1,200평, 임야 93정보 등이 있다.

단장천을 옆에 하고 이런 오솔길을 몇 모롱이를 돌아서 다리를 세 개 건너면 서원에 도착한다.
유허비각(遺墟碑閣) 비각에는 칠탄서원유허비(七灘書院遺墟碑)가 있다.
벽립재(壁立齋), '읍청당(挹淸堂)', 철종 때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지낸 권응기(權應夔) 씀
칠탄정(七灘亭),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 씀 지금 현판은 모사품이고, 원래 현판은 밀양시립박물관 소장
운강루(雲江樓)
담장 너머 금곡리
은행나무
맞은편 단장천에서

혜산서원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원1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 1994.07.04 지정)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에 세거하는 일직 손씨의 5현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1753년(영조 29)에 창건한 손조서의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손조서는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와 탁절로서 두문불출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 또는 ‘철운재’로 편액 하였다. 1971년에 서원의 영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 봉안되었던 일직 손씨 명현 다섯 분의 서원인, 정평공 손홍량의 안동 타양서원, 격재 손조서의 밀양 서산서원, 모당 손처눌의 대구 청호서원, 문탄 손린의 대구 봉산서원, 윤암 손우남의 영천 입암서원 등을 후손들의 집성촌인 이곳으로 옮겨 혜산서원으로 중건한 것이다.

혜산서원 본당 차나무와 광산고택
본당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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